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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오더? 해야지" 조회수 수십만 '조폭 유튜브'…부모들 철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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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례식장에 도열한 조직폭력배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장례식장에 도열한 조직폭력배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조폭이 뭐야. 명령 하나에 죽고 사는 거 아니야”

조직폭력배(조폭)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인터넷방송 진행자 A씨는 지난 8월 방송에서 “살인 오더(명령) 떨어졌으면 움직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유튜브에서만 3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조폭 관련 콘텐트를 주로 올리는 A씨는 인터넷에서 1990년대 ‘마약왕’으로 불린다.

썰만 풀어도 수억…조폭 유튜버 전성시대? 

유튜브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유튜브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에서 A씨처럼 조폭 시절 일화 등을 떠드는 이른바 ‘조폭 유튜버’가 성행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마약 판매·성추행 등 범죄 전과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범죄 미화나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11일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전국 각 시·도 경찰청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0명이던 조폭 유튜버는 올해 9명으로 늘어났다. 경찰은 유튜브 외 각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인터넷방송 진행자도 살펴보고 있다.

전·현직 조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일반인이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범죄 관련 경험 등을 마치 ‘썰’처럼 풀어놓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11일 유튜브 집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7년 동안 조폭 유튜버 ▶명천가족TV ▶창기TV ▶박훈TV 등은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을 각각 5억3000만원, 3억5000만원, 1억8000만원 받았다.

조폭들이 유튜브 등에 뛰어드는 배경으로는 우선 금전적 이유가 꼽힌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트다 보니 범죄 연루 이야기만 해도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십만에 이르는 조회 수가 나온다. 다른 조폭과 싸움으로 신체에 칼자국이 난 모습 등을 공개한 50대 유튜버 B씨는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면서도 “배운 것도 없고 나이 먹고 할 것도 없어 유튜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폭 연령대가 어려지면서 이들의 유튜브 유입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4~7월 100일 특별단속을 통해 조폭 범죄 관련 1630명을 검거했다. 이들 중 약 69%는 MZ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층)인 30대 이하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젊은 조폭들이 활동 무대를 개인 인터넷 방송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우려를 숨기지 못한다. 17세 아들을 둔 직장인 엄모(49)씨는 “초등학생만 돼도 유튜브를 쉽게 접하는데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종의 일탈처럼 가볍게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최모씨는 “아이들이 조폭을 범죄자가 아니라 인기 유튜버로 생각해 부러워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전신 문신을 한 뒤 본인을 건달이라고 소개하는 한 유튜버는 “‘범죄를 통해 비싼 외제차나 좋은 집에서 산다’는 식으로 말하는 일부 조폭 유튜버들이 자극적으로 영상을 만드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경찰, 조폭 유튜버 전수조사

부산 한 장례식장 앞 조직폭력배 보복폭행 장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부산 한 장례식장 앞 조직폭력배 보복폭행 장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조폭 유튜버의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모니터링을 통해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폭 유튜버가 청소년에게 미칠 악영향 등이 지적된 데 따른 대답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7일 전국 전·현직 조폭들의 개인 방송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모방 범죄나 범죄 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고 있다”며 “모니터링을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라 관리하는 진행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의 사각지대로 꼽히는 유튜브 환경에서 범죄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단순 콘텐트 내용만으로 이들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 6월 출소했다고 알려진 한 30대 유튜버는 지난달 26일 영상에서 “사람을 쥑(죽)인 것도 아니고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 보는 유튜브인데 부모들이 제재하라”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경험을 추억팔이처럼 청소년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폭 유튜버는 심각성이 크다”며 “폭행·협박 등 실질적인 불법행위가 발견돼야 처벌이 가능한 만큼 유튜브 측이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일정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제재가 사실상 어려운 유튜브 특성상 조폭 유튜버는 무방비 상태”라며 “미디어에 대한 모니터링과 감시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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