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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 '떡락' 거액 배상받나…대한전선 손배소 대법서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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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대한전선 소액주주 121명이 분식회계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회사와 임원들, 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원심이 원고에 불리하게 한 손해배상액 산정이 잘못됐다는 취지여서 거액의 배상금이 인정될 공산이 커졌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소액주주 121명이 대한전선과 임원들,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주주들에게 약 18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의 원고 패소 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2014년 종합 전선회사인 대한전선이 2011~2012년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공시해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대한전선에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한전선은 당시 회수가능성이 낮은 매출채권의 대손충당금 약 2300억원을 과소계상하고, 재고자산과 자기자본 및 당기순이익을 각각 390억원 부풀린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대한전선의 회계감사를 맡은 안진도 외부감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증선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안진은 2012~2013년 대한전선과 그 종속기업의 감사 결과 이들의 연결재무제표가 적정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부감사법 위반‧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대한전선 법인과 대표이사와 담당 임원들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들 형사재판에선 일제히 무죄가 선고됐다. 대한전선에 대한 회계 감사가 잘못됐다며 안진회계법인에 과징금을 부과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처분 역시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 121명은 2015년 3월 대한전선의 분식회계로 손해를 입었다며 이를 배상하라는 대규모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주주들은 2012년 3월 2011년도 연간 사업보고서 등이 분식회계로 인한 허위공시인 줄 모르고 주식을 샀다. 그해 11월 7000원 대까지 올랐던 주가는 약 1년 뒤 2013년 11월 3분기 보고서부터 대손충당금을 전액 반영해 정상 공시를 한 뒤 2400원 대까지 떨어졌고 이듬해 2014년 12월 증선위가 분식회계 사실을 공표하고 나서 매매거래정지 조치가 내려지고 해제된 직후에는 479원(2015년 12월 10일)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1심은 일부 보고서에 거짓 기재는 있었고, 중요사항의 거짓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감사회사가 일부 조작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분식회계를 실행할 경우 이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주주들에게 5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원심은 일부 보고서에 거짓 기재는 있었지만 중요사항은 아니었고, 2013년 3분기 보고서 공시 이후 주주들이 입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봐 배상액을 18억여원으로 대폭 줄였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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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정정에도 분식회계 공표 전…‘정상 주가’? 法 “입증해야”

대법원은 이를 수긍할 수 없다고 봤다. 중요사항의 거짓기재가 아니라는 점에는 수긍했지만 인과관계를 긍정한 취지다.

대법원은 증선위의 분식회계 사실이 아직 공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한전선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거나 그에 따른 재무상태가 나빠졌다는 사실을 공시했다는 사정만으로 직후에 곧바로 대한전선의 전반적 신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주식가격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음은 물론, 자본시장법에 따른 손해액의 추정이 깨진다고 볼 수도 없다고 봤다.

2013년 11월 3분기 보고서 중요사항에 설사 거짓 기재가 없었다 하더라도, 분식회계 사실이 아직 공표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분식회계 때문에 부양된 부분이 모두 제거된 정상 주가라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상 손해액 추정을 복멸할 정도로 증명되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보았어야 함에도 3분기 보고서 공시에 중요사항의 거짓 기재가 없다는 사정만을 중시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판단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자본시장법이 정한 손해의 인과관계 정상주가 형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분식회계 사건을 판단할 때 ‘회사가 정상 공시를 한 직후 형성된 주가’가 허위 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주가라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취지”라고 했다.

이어 “정상 공시 직후 형성된 주가를 정상주가라고 보려면 피고측에서 허위 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제거됐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명시적으로 판시한 첫 판결”이라며 “하급심에서 같은 유형의 손해배상사건을 심리할 때 지침이 되는 판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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