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설치 중 2명이 6m 추락사…뒤얽힌 하청·재하청 책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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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1월 6일 오후 3시 반쯤의 한 신축 공장의 설비공사 현장. 높이 6m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인부들이 밟고 있던 패널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삽시간에 인부 5명은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당시 현장의 인부들은 안전모를 지급받지 않았고, 현장에 작업 발판이나 추락 방호망을 설치하거나 안전대를 착용하거나 부착 설비가 설치돼있지도 않았다. 이들이 밟고 있던 천장 패널에 대한 안전진단 등 안전성 평가 역시 실시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에어컨 설치공사 이미지. LG시스템에어컨 ※ 본 기사와는 무관한 자료사진임.

에어컨 설치공사 이미지. LG시스템에어컨 ※ 본 기사와는 무관한 자료사진임.

이로 인해 에어컨 설치 공사를 맡은(하도급) 업체의 대표와 직원 1명이 약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나머지 직원 2명은 약 6개월 동안 치료해야 할 정도로 크게 다쳤고 1명은 석달간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다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신축 공장의 포장기계 설치 및 에어컨 설비를 맡았다가 이 중 에어컨 설치 공사를 떼어 하청을 준 도급업체 대표 김모씨가 업무상과실치사, 업무상과실치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김씨는 “업무상 주의 의무위반이 인정되더라도 피해자들이 사고로부터 약 한 달 뒤에 숨졌기 때문에 사고와 죽음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김씨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으로 일관하며 이 사건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다”며 “이 사건 판결 선고시까지 일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하면서 유족과 합의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다.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들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한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청·재하청 뒤섞인 ‘에어컨 설치공사’ 사고…누가·얼마나 책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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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는 김씨와 이들의 근로관계가 새롭게 쟁점으로 떠올랐다. 원심과 달리 일부 피해 근로자는 에어컨 설치공사를 하도급 받은 업체에게 다시 재하청(하수급) 받은 업체 직원들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사업의 일부를 도급한 사업주가 아니라 사업(에어콘 설치공사)의 전부를 도급한 자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을 펼쳤다.

법원은 김씨가 ‘에어컨 설치공사’는 전부 하도급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상 일부 도급사업주인지 전부 도급사업주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도급계약 대상이 된 사업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도급인이 같은 장소 내에서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김씨는 이 사건 사업장 내에서 포장기계 제작·설치공사를 수행하는 자로서 사업장 내에서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지위에 있으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일부 도급사업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항소심은 피해자 가운데 하청(하수급)인 본인과 재하청(재하수급)인 본인에 대해서는 일부 무죄로 보고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을 낮췄다. 법원은 “이들은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 이 사건 에어컨 설치공사를 의뢰받은 수급인으로서 이 사건 에어컨 설치공사를 시행하게 된 것이고, 그 시공은 자신의 업무로서 그 책임으로 하는 것이며 도급인의 지위에 있는 김씨가 이들을 구체적으로 지시, 감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아니한다”고 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보고 이 판결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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