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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한·미·일 안보협력은 필연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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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디렉터

김정하 정치디렉터

요즘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푸틴 대통령이 진짜로 핵 버튼을 누른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 핵 부대의 동향을 정밀 감시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핵 공격의 대상으로 떠오른 국가는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지난달 북한이 핵무기 사용 조건을 법제화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적의 핵 공격이 없어도 곧 공격당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나아가 전쟁 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우에도 핵무기를 쓸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공격을 당했을 때 최후의 반격 수단이 아니라 선제공격용으로도 얼마든지 핵 미사일을 쏘겠다는 거다.

문재인 정부때도 3국 훈련 실시 #일본 한반도 침략 빌미된다는 건 #국제정세 무지이거나 정치선동

북한은 9월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국가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한 것은 국가방위수단으로서 전쟁 억제력을 법적으로 가지게 되었음을 내외에 선포한 특기할 사변″이라고 말했다. [뉴스1]

북한은 9월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국가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한 것은 국가방위수단으로서 전쟁 억제력을 법적으로 가지게 되었음을 내외에 선포한 특기할 사변″이라고 말했다. [뉴스1]

이건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자위용”이라고 비호하던 국내 친북 세력조차 당황케 할 내용이다. 2016년 핵무기 선제공격은 없다고 공언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을 180도 뒤집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최고인민위원회 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과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애초부터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손톱만큼도 없었고,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어 핵무기 고도화에 전념해 왔던 게 명확해졌다.

한미일 대잠전 훈련 참가전력들이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아래부터 위쪽으로 미국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DDG),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DDH-II), 미국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일본 구축함 아사히함(DD), 미국 순양함 첸슬러스빌함(CG). 대열 제일 앞쪽은 미국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해군 제공]

한미일 대잠전 훈련 참가전력들이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아래부터 위쪽으로 미국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DDG),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DDH-II), 미국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일본 구축함 아사히함(DD), 미국 순양함 첸슬러스빌함(CG). 대열 제일 앞쪽은 미국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해군 제공]

북한이 핵을 쓴다면 대상은 당연히 한국이 1순위고 일본이 2순위다. 김정은이 아무리 무모해도 워싱턴을 향해 핵 미사일을 날리는 순간 자신이 물리적으로 증발하리란 것쯤은 잘 안다.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핵 위협을 받기 시작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궁극적으론 독자적 핵무장이 해법일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다. 현실적으론 한국·미국·일본이 군사협력을 강화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낮추는 게 그나마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이는 북한의 후원자인 중국에 대한 압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 얘기만 나오면 무작정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미·일 3국이 동해에서 실시한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일본을 끌어들여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극단적 친일 행위로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했다. 이게 친일 국방이라고? 야당이 되면 여당 시절 기억은 자동 삭제되는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7월 4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하자 3일 뒤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3국 협력 수위를 격상시킨 내용이다. 그리고 세 달 뒤 동해에서 한·미·일 이지스함 4척이 미사일 경보 훈련을 벌였다. 그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에선 한·미·일 3국 훈련이 몇 차례 더 비공개로 실시됐다. 이번 동해 훈련도 민주당 집권 시절인 2017년 10월 3국 국방장관(방위대신)이 합의한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논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도 극단적 친일 국방을 한 셈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9월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 전투함이 인천항에 입항해 한국 해군과 친선 행사를 연 적도 있다.

2017년 7월 6일(현지시간) 한미일 3국 정상들이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2017년 7월 6일(현지시간) 한미일 3국 정상들이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한·미·일 군사훈련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빌미가 될 것이란 주장은 국제정세에 대한 심각한 무지이거나 정치적 목적의 선동에 불과하다. 마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2차대전의 전범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지원은 거부하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건 북한의 핵 미사일이지 일본 자위대가 아니다. 김정은의 핵 협박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은 필연적이며 앞으로 더욱 확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