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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체험한 것만 쓴다” 노벨문학상에 아니 에르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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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   [로이터=연합뉴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의 2018년 미투 파문으로 실추된 명예를 정치적 올바름으로 극복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한 번 여성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2020년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이후 2년 만이다.

6일(현지시간) 전세계에 스트리밍 생중계된 유튜브 발표에서 한림원은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있게, 임상적 예리함으로 탐구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에르노는 한 스웨덴 언론과 인터뷰에서 “큰 영예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 『탐닉』.

아니 에르노의 소설 『탐닉』.

수상자 발표 직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한림원 관계자는 에르노가 “좁은 의미의 허구(fiction)를 넘어 문학의 경계를 넓히는 야심적인 기억 프로젝트를 선보였다”고 소개했다. 파격적인 소설 세계가 작가의 체험과 관련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에르노의 문학은 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체험을 고스란히 옮기는 오토 픽션 작가로 분류될 정도다.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 소도시에서 태어난 에르노는 대학 졸업 뒤 교직생활을 하던 중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으로 등단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한 번도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기 규정처럼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1960년대 낙태 체험을 소재로 2000년 『사건』을 썼고, 2016년작 『소녀의 기억』에서는 열여덟 살 때 숲속 여름학교에서의 첫 성경험을 “다른 어떤 기억보다 훨씬 선명하고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는 수치스러운 기억”이라고 표현하며 60년 세월을 건너 뛰어 재현하기도 했다.

1988년 만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 연인과의 이야기는 1991년 『단순한 열정』과 2001년 『탐닉』으로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자리』(1984)는 그에게 첫 상인 르도노상을 안겨줬다. 2008년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작품은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48쪽 분량의 『젊은이』이다. 작가가 30대 시절로 돌아가서 사랑을 하는 이야기지만, 사회학적 시선과 계급문제에 대한 고찰도 스며들어 있는 작품이다.

숭실대 불문과 이재룡 교수는 “통상 소설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에르노는 내가 겪은 진실 외에는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장르로 문학의 범위를 확장했다”며 “일상의 이야기를 쓰는 것 같지만 계급에 대한 통찰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그가 1960~70년대에 겪고 90년대에 쓴 작품들은 2020년대에 영화로 살아날 정도로 현재의 인류에게도 생명력을 갖는 이야기다. 1991년작 『단순한 열정』은 2020년 영화화됐고, 2000년 작품 『사건』을 영화화한 ‘레벤느망’은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1972~1981년에 걸쳐 가족과 찍은 홈비디오를 엮은 다큐멘터리 ‘슈퍼 에이트 시절’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이드 앵글’ 섹션에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전 남편 필립 에르노가 슈퍼 8 카메라로 찍고, 아들 다비드 에르노 브리오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고, 그가 내레이션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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