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레버리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금융에선 실제 가격 변동률보다 몇 배 많은 투자수익률이 발생하는 걸 레버리지(Leverage)라고 한다. 지렛대에 빗댄 표현이다. 레버리지의 마중물은 부채다. 빚을 많이 낼수록 레버리지 효과도 커진다. 부동산에선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 주식이라면 신용 매수가 그 예다.

부채 없이 레버리지 효과를 볼 방법도 있다.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다. 상품명에 2X 또는 레버리지라고 표기돼 있는데 추종하는 지수가 1% 상승할 때 수익률이 2% 상승하고, 지수가 1% 하락하면 수익률도 2% 하락하는 구조다. 같은 방식으로 3배, 4배짜리 상품도 만들 수 있다.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레버리지 ETF(곱버스)도 있다.

레버리지 ETF가 국내에 상륙한 건 2009년. 빚 없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매력 때문에 돈이 몰렸다. 인기는 여전하다. 한국은 전체 ETF 중 레버리지 비중이 10%를 차지하는 이례적인 나라다. 얼마나 열정적인지 태평양도 건넌다. 9월 한 달간 서학 개미의 거래액 상위 5개 종목 중 4개가 3배 레버리지 ETF(3X)였다.

레버리지든 곱버스든 한쪽으로 쭉 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복리 효과 때문이다. 예컨대 100으로 출발한 지수가 5일 연속 5%씩 상승할 경우 일반 ETF의 수익률은 27.6%지만 2X는 61.1%다. 그러나 지수가 그렇게만 움직일 리 없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당연하다. 첫날 5%, 다음날은 -5% 이렇게 열흘간 반복하면 일반 ETF의 수익률은 -1.2%지만 2X는 -4.9%다. 보통의 횡보장에선 손실만 커진다는 뜻이다.

굳이 한다면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단기적으로 치고 빠져야 그나마 이길 확률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떤가. 각국 중앙은행은 돈줄 죄기 바쁘다. 채권이고, 환율이고 하루 단위로 요동을 친다. 실물 경기가 꺾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도 여럿이다. 침체는 대세론이 됐고, 이젠 대형 경제위기설에 힘이 실린다. 한쪽에선 핵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이 불확실성 앞에 타이밍을 확신할 투자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주식투자를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못 참는 순간이 온다. 더 빠질 듯하니 인버스를 기웃거리고, 손실을 빨리 메우려 레버리지를 쳐다본다. 이때 냉정해지지 않으면 중독과 다르지 않다. 경우에 따라선 투자하지 않는 것도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