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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43) 추강(秋江) 밝은 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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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추강(秋江) 밝은 달에
김광욱(1579∼1656)

추강 밝은 달에 일엽주(一葉舟) 혼자 저어
낚대를 떨쳐드니 자는 백구(白鷗) 다 놀란다
어디서 일성어적(一聲漁笛)은 조차 흥(興)을 돕나니
-『청구영언』 진본(珍本)

운명을 좌우하는 인간 관계

가을의 정취가 함뿍 담겨 있는 시조다. 우조이수대엽(羽調二數大葉) 창(唱)으로도 즐겨 불렸다. 부귀공명을 모두 물리치고 강호에 묻혀 유유자적하던 산림학파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가을 강 밝은 달빛 아래 일엽편주를 혼자 저어나가, 낚싯대를 떨쳐 들어 올리니 잠들었던 갈매기가 모두 놀라 날아오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부의 한 줄기 피리소리가 더하여 흥을 돕는구나.’

김광욱(金光煜)은 충절을 세워 청사를 빛낸 김상용(金尙容)·김상헌(金尙憲) 형제의 재종질(再從姪)이다. 선조 39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형조판서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권신 정인홍이 성리학의 태두이던 이언적과 이황을 헐뜯자 단독으로 정인홍을 논척(論斥)했다.

그는 용모와 행동이 옥같이 맑고 단정하여 고아(高雅)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아쉽게도 교우가 깊지 못하였다. 예나 오늘이나 인간관계가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늘 자신과 주위를 되돌아보아야 할 이유이다. 어쩌면 현실이 그의 이상과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역사는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