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환칼럼] 체육시간마다 1.6km씩 뛰는 초등 1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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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지금 마라톤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5일 중앙 서울마라톤도 열렸지만 거의 매주 마라톤 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마라톤 동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42.195km 풀코스를 뛰는 사람들이 대회마다 1만 명씩 신청한다. 벌써 100회 이상 완주를 한 사람이 80명(비공식 집계)이 넘는다고 하고, 이젠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 '서브 3(3시간 이내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30대 이상이라는 거다. 10대와 20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헬스클럽에도 30대 이상이고, 동네 근린공원이나 체육관에는 배드민턴을 하는 50대, 60대 아저씨, 아줌마들로 가득 차 있다.

한국에서 '운동'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뒤에 시작하는 것으로 돼버렸다. 그러다보니 '건강 비용'이 너무 많아진다.

이쯤에서 우리 애들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에 연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었던 두 딸은 미국에 가서 4학년과 2학년으로 하나씩 올려서 다녔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뒤 애들에게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을 물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둘째가 "PE(체육) 시간이 가장 싫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영문도 모르고 "왜 그래, PE 시간 재미있잖아"하고 흘려버렸는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체육시간에 애들을 1마일(1.6km)씩 뛰게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 1마일을 뛴다고 생각해보라. 힘들고 지치고, 재미도 없고. 그러니 싫어할 만도 하다.

그런데 1년이 지난 뒤 다시 깜짝 놀라야 했다. 여자애들인데도 팔다리가 단단해졌다. 손으로 눌러봐도 들어가지 않는다. 특별히 운동부를 하지 않았지만 평소 체육시간에 운동한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튼튼해 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왔다. 1년 뒤 결과는? 당연히(?) 다시 두부살이 됐다. 몇 년 전 중앙일보에서 학교체육에 관한 시리즈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의 체육선생님들이 스스로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 '아나공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공. 여기 있으니 너희들끼리 놀아라'라는 의미다.

한국에서 학교체육이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과외에, 학원에 시달리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다. 별도로 운동할 시간은 당연히 없고, 학교 체육시간에도 특별한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 일부 학부형은 너무 운동을 열심히 하면 공부에 지장을 준다며 운동 자체를 반대하기도 한다.

큰 애가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야자(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매일 밤 11시가 돼야 돌아온다. 녹초가 돼서 오지만 숙제를 한다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밤을 새는 적도 있다. 표정이 밝을 수가 없다.

지난달에 큰 결심을 했다. 학교 앞에 태권도장이 있는데 야자 시간에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요즘 얼굴이 밝다. 집에서 엄마와 얘기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미국 애들이 마약이다, 섹스다, 총기 사건이다 해서 험하고 나쁜 애들 같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건전하다. 운동 많이 하는 애들이 나쁜 생각할 시간이 없다.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해진다. 운동부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모든 젊은이들이 운동을 생활화할 때 우리 사회가 건전해지고,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손장환 스포츠부문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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