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그대로 보고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이 영상으로 학교에서 다른 애들이 수군댈 생각 하면 숨이 막힌다.”
자녀 개인정보 노출하는 ‘미성년자 육아프로그램’
한 종합편성 채널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영상 클립에 달린 댓글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주로 미성년자의 임신·출산·육아를 다룬다. 암묵적으로 쉬쉬하던 청소년 성 문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낸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고등학생 부모를 둔 자녀의 실제 가정환경이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다.
예컨대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4남매 중 첫째인 A군(10) 은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동생 3명을 돌보는 데 일과 시간 대부분을 할애한다. 24세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울 때도 A군은 동생들을 돌본다. A군은 방송 중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이유로 “엄마가 동생을 낳고 화장실에 누워있는 장면이 기억에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둘째를 임신한 줄 몰랐다가 화장실에서 출산한 일을 떠올린 것이다.
미성년자의 어두운 사생활이 방송은 물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노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의 사생활이나 개인 정보가 방송이나 SNS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의 과거사가 방송 등을 통해 일단 노출되면 평생 지우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중학생이 포경수술 하는 장면이나 부모가 싸우는 동안 어린아이가 방치되는 장면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이들 사생활을 다룬 방송을 본 네티즌은 ‘애들 얼굴이랑 이름은 가려달라’거나 ‘방송 출연 동의하면 다 보여줘도 되는 거냐’는 식의 댓글을 단다. 고교생 부모를 주제로 한 해당 종편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에도 이런 댓글이 3000개 이상 올랐다. 방송 출연자를 ‘없는 집안 자식들’이라고 표현한 댓글도 있다.
A군처럼 방송을 통해 미디어에 노출된 뒤 온라인 재생산 방식으로 상업적 이득을 취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방송 출연 아동·청소년의 권익 보호를 위한 표준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아동 출연자 개인정보 노출이나 온라인상 상업적 이용 기준은 정하지 않았다.
방송 영상, 온라인서 반복 재생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미디어 매체에 출연한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노출에 대해 (보호자가 동의했다면) 제재할 방법은 없다”며 “다만 해당 아동이 추후에 ‘잊힐 권리’를 주장한다면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라 온라인상에 퍼진 글·사진·영상을 삭제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출연자 개인정보 보호 기준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매니저는 “방송과 같은 미디어 매체는 온라인상에서 장기간 재확산한다는 점에서 SNS보다 파급력이 크다”며 “아이들이 방송 출연할 때 노출할 수 있는 개인정보 보호 범위를 규정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아동·청소년은 과거 본인이 의사결정 내릴 수 없었던 미디어 노출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개인정보 침해를 당할 수 있다”며 “방송 출연 시 아이 자기결정권에 대해 사회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