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려불화 기법과 애니메이션 그림체의 결합, 김훈규 작가 누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훈규, Fitting Room No.7, Pigment on silk, 45X40CM, 2022. [사진 High Art]

김훈규, Fitting Room No.7, Pigment on silk, 45X40CM, 2022. [사진 High Art]

김훈규의 'Fitting Room No.7'의 일부를 확대한 모습, 2022[사진 High Art]

김훈규의 'Fitting Room No.7'의 일부를 확대한 모습, 2022[사진 High Art]

김훈규, 불편한 행진(Uncomfortable Parade), Pigment on silk, 120X95cm, 2022.[사진 HighArt]

김훈규, 불편한 행진(Uncomfortable Parade), Pigment on silk, 120X95cm, 2022.[사진 HighArt]

런던에서 작업 중인 김훈규 작가. 서울대 동양화를 졸업하고 영국 RCA 대학원을 졸업했다. [사진 High Art]

런던에서 작업 중인 김훈규 작가. 서울대 동양화를 졸업하고 영국 RCA 대학원을 졸업했다. [사진 High Art]

지난 6일 폐막된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갤러리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화랑 '하이 아트(High Art)'였다. 부스엔 단 두 작가의 작품이 걸렸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Hun Kyu Kim' 작가의 것이었다. 갤러리 관계자는 "화가 이름은 김훈규"라며 "부스에 전시한 9점이 모두 판매됐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런던에서 작업하며, 유럽과 미국 컬렉터에게 먼저 주목받은 김훈규(36)의 그림이 국내에 소개되는 자리였다.

서울대 동양화,영국 RCA 석사 #파리 하이아트 갤러리 소속 # 프리즈 서울서 작품 완판 #"해외 컬렉터들 대기하는 작가"

가까이 다가가서 본 그림은 평범하지 않다. 화면엔 토끼, 돼지, 호랑이, 원숭이, 물고기 등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가 와글와글하다. 색채도 현란하다. 언뜻 귀여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마주하기 불편한 요지경 세상이 보인다. 한곳에선 미친 듯이 쇼핑에 몰두하고, 또다른 곳에선 탱크가 전진하는 풍경, 나란히 앉아 각자 휴대폰에 정신 팔린 동물들이 딱 요즘 우리네 모습인 듯하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김씨는 현재 런던에서 작업하고 있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김훈규, Too Cool for Shopping, Pigment on silk, 175X115cm, 2022. [사진 High Art]

김훈규, Too Cool for Shopping, Pigment on silk, 175X115cm, 2022. [사진 High Art]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지금도 전통적인 기법으로 비단에 채색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제가 지금 그리는 그림은 고려불화 기법이랑 거의 90% 이상 일치한다. 전통적인 제작 기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왜 고려불화 기법인가.  
불화의 섬세한 선과 화려한 색채가 주는 힘이 남다르다. 어릴 때 박물관에서 14세기에 그려진 고려 불화를 보고 압도돼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었다. 국내 단색화가들이 조선시대의 절제된 아름다움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찾았다면, 나는 고려의 불화가 지닌 아름다움을 화면에 구현해보고 싶었다. 

지난해 5월 파이낸셜 타임스와 뉴욕타임스는 아트바젤 홍콩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그를 나란히 소개했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는 "의인화된 동물로 가득한 김훈규 작품은 고려 불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의 요소를 담고 있다"며 "웃기면서도 어두운 그의 그림에선 초현실적인 세계가 무한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김훈규는 2017년 왕립예술학교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갤러리 전시를 할 정도로 굉장히 일찍 주목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총을 휘두르는 개, 휴대폰을 물어뜯는 용 등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재미있고 긴장감이 넘친다"고 덧붙였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주목받았다. 
운이 좋았다. 졸업전시에서 제 작품을 본 영국 갤러리(더 어프로치)가 제안해 일찍 개인전을 열었다. 2017년 프리즈 런던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후 프랑스 하이 아트 갤러리와 함께 해오고 있다." 
동물 캐릭터가 넘쳐난다.  
현실을 동물 캐릭터로 표현하는 게 내겐 더 친근하고 편하다. 어릴 때 '모노노케 히메'와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다. 내가 흡수한 문화의 흔적이 화면에서 모두 섞이고 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판타지와 현실이 한데 섞여 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건가.  
지금 내 화두는 '시점(視點)'이다. 미술사적인 용어이기도 한데 저는 이것을 정치·사회적 맥락으로도 표현해보고 싶다. 국가마다, 사람마다, 각기 처한 위치마다 같은 사건이나 상황을 보는 관점이 모두 달라지지 않나. 내 화면엔  위, 아래, 정면 등 각기 다른 시점에서 본 상황이 다층적으로 등장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한 화면에 표현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내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유리 스크린이 많이 등장한다"며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데올로기 감옥에 갇혀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점으로 그리다 보니 전체 화면에 중심이 사라지고 주변부를 맴도는 그림이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요즘엔 화면에서 어떻게 공간을 중첩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미술사적인 개념의 '공간'을 넘어서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공간이라는 개념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층 구조의 심화, 역사와 이데올로기 등 우리 사회에서 불편해하고 터부시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달콤하게 내 방식으로 건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