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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시작된 장학퀴즈, 지금도 유지되는 이유 [SKI 혁신성장 연구]

중앙일보

입력

SK이노베이션 혁신성장 연구  

⑧ 한 발 앞선 ESG 비전 설계
다음 달 창립 60주년을 맞는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했다. 1980년 선경(SK의 전신)에 인수된 이후 석유화학, 종합에너지, 바이오, 배터리와 그린에너지까지 섭렵하면서 지난 60년간 변신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오늘날 SK를 재계 2위 대그룹으로 만든 토대가 된 SK이노베이션의 혁신성장 10가지 성공비결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달 30일 기업가정신학회 주최로 열렸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영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된 내용과 연구결과를 정리해 연재한다. 여덟 번째 혁신성장 스토리는 일찌감치 100년을 내다보고 차곡차곡 설계한 ESG 경영.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 발표를 토대로 정리했다.

앞선 혁신, ESG 경영 씨앗은 일찌감치 뿌려졌다

지난해 국내 산업계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뜨겁게 불었다. 준비 없이 변화를 맞은 기업들에 ESG는 다소 버거운 과제였다. 그러나 일찍이 재무적 성과에만 치중하지 않고 사회·경제적 책임을 경영 전략에 내재화한 기업들은 한 걸음 성장하는 중요한 기폭제가 됐다. 1980년 선경(SK의 전신)이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라는 큰 그림의 서막을 알릴 때부터 ESG 경영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렸다.

E: 환경법 준수 넘어 환경 보존하는 기업으로 

단순히 환경법을 준수하는 기업을 넘어 환경 보존에까지 기여하는 기업이 되자는 게 당시 목표였다. 중장기 환경 마스터플랜을 구축해 차곡차곡 포부를 실현해 갔다. 1992년 5월 완공, 그해 6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울산 콤플렉스(CLX) 내 종합폐수시설이 대표적 예다. 모든 폐수를 수집, 물리·화학·생물학적인 고도의 처리 과정을 거쳐 정부 규제치보다 10배 이상 깨끗한 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농·공업 용수는 물론 생활용수로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같은 시설을 완비한 건 당시 국내 정유회사로는 최초였다.

환경에 대한 고민은 신사업 확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일찌감치 정유 산업을 둘러싼 환경 문제를 자각하며 대체 에너지 개발을 강조했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변화되는 산업구조, 시장 요구에 맞게 선도적으로 혁신한 셈이다.

1988년 공사를 시작해 1992년 5월 11일 완공된 울산 종합폐수시설 전경. 당시 정부 규제보다 10배 이상 깨끗한 물로 변환할 수 있는 획기적인 환경 설비로 평가 받았다. 사진=SK이노베이션

1988년 공사를 시작해 1992년 5월 11일 완공된 울산 종합폐수시설 전경. 당시 정부 규제보다 10배 이상 깨끗한 물로 변환할 수 있는 획기적인 환경 설비로 평가 받았다. 사진=SK이노베이션

S: 인재 양성, 지역 환원은 지속가능 성장의 밑바탕 

197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 눈을 감을 때까지 최종현 회장이 힘쓴 두 가지가 있다. 인재 양성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이다. 이 두 가지가 지속가능한 기업 성장 밑바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방송프로그램 '장학퀴즈' 후원을 비롯해 지금껏 800여 명에 가까운 세계 최고 대학 박사학위자를 배출한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의 자신이 있게 한 지역에 대한 환원도 잊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수출 주도 산업화를 통한 압축 경제 성장 과정에서 여러 기업은 산업단지가 조성된 지역을 중심으로 핵심 사업을 펼쳤다. 지역사회 고용창출 등의 효과도 있었지만 환경 문제 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의 터전인 울산 지역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잊지 않았다.

울산은 빠르게 공업 도시로 변모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문화, 휴식 공간이 충분치 못했다. 공해 문제까지 더해 삶의 질 또한 좋지 못했다. SK는 ‘울산 시민 한 사람에게 1평의 녹색 땅을 갖게 해주자’는 취지로 울산대공원 건립에 나섰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약 1050억원을 들여 녹지공간을 선물했다.

1973년 2월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후원으로 처음 시작된 '장학퀴즈' 방송 모습. 사진=SK이노베이션

1973년 2월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후원으로 처음 시작된 '장학퀴즈' 방송 모습. 사진=SK이노베이션

G: 이사회를 집단 지성의 꽃으로

2000년대는 SK의 위기이자 지배구조(거버넌스)에 새 시작을 알린 시기이기도 하다. 압축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대기업들을 향한 당시 세간의 시선은 매서웠다. 대기업 오너 경영자들이 기업 간 순환출자를 통해 다수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제왕적 통치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반(反)기업 정서가 극에 달할 때 일부 글로벌 자산운용사나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소수 지분에 투자한 뒤 그룹 경영진을 압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2003년 'SK-소버린' 사태다. SK그룹 지배구조의 문제점과 취약점이 동시에 드러나면서 소버린의 공격은 더욱 강해졌고, SK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위기는 SK가 새롭게 태어나는 씨앗이 됐다. 건강한 기업 지배구조를 수립하는 구심점으로 삼은 것이다.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은 이후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사외이사 비중을 키웠다. SK그룹은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을 70% 이상으로 확보하고 투명거래위원회 등을 신설하는 등 이사회 역할을 실질적으로 강화해 왔다.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일반적 통념을 뒤집을 수 있도록, 사외이사의 집단 지성이 기업 성장에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이사회 중심 경영을 조금씩 고도화시켜 나갔다. 최고경영자(CEO)를 평가·보상하고, 대표이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중장기 성장 전략을 검토하는 등 실질적 권한을 부여한 것이 대표적 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SK 등 계열사 13곳의 사내이사, 사외이사와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을 열고 지배구조 혁신을 위한 토의를 진행하고 있다.

ESG 성과는 명확한 지표로 

SK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추진해 왔다. 사회에 대한 기업의 공헌, 기여 등이 곧 기업 경영의 핵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DBL(Double Bottom Line) 접근이다. 일부 사회적 기업을 제외하고 SK와 같은 대기업이 시도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경우다.

경영학 대가 피터 드러커는 "측정하지 못하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ESG 경영에 그대로 대입해도 무방하다. 의미 있는 일이라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면 ‘착한 일’에 머물 뿐이다. SK는 지난 2018년부터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를 화폐로 환산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사회적 가치 측정 산식까지 투명하게 공개했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혁신성장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계기, 연구 의의가 궁금합니다.

"SK가 ESG 경영을 잘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걸 제대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었죠. 혁신이라고 하면 대개 기술혁신 등 단선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 혁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 혁신의 여정을 살펴보면 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바꿔 놓는 모멘트(moment·순간)가 많습니다. 단순히 기업의 이윤추구에서 나아가 생각의 틀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줬죠. 외부 압력 때문에 ESG를 추구하는 것과 다른, ESG 경영을 일찌감치 선도했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ESG 경영을 선도했다고 얘기할 수 있나요. 

"우선 역사가 오래됐죠. 종합에너지 회사로 발돋움하면서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앞장서 줄여나갔습니다. 정유 사업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대안 에너지 모색을 통해 일찌감치 배터리와 신소재 등에 투자해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 면에서도 앞서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ESG 요구에 뒤늦게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SK이노베이션은 ESG를 통해 미래 신규 비즈니스 모델까지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시도했던 혁신은 정부나 공공기관 보다 앞선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유학 장학제도를 도입한 건데요. 이후 정부에서도 국비유학생 제도를 만들었죠. 2010년대 SK가 먼저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육성하겠다고 나선 이후 정부에서도 사회적기업 진흥법을 제정하고 사회적기업진흥원을 만들었어요."

SK이노베이션이 꽤 오래도록 사회적 가치 경영을 이끌어가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사회의 공동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생태계의 발전 원리는 균형과 혁신을 통한 '공진화(coevolution)'입니다. 균형은 생태계를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 어느 하나가 다른 요소들을 지배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용하거나 약탈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활동은 경제적으로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고, 사회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하고 생존과 번영에 기여하는 활동은 경제적으로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가치 경영의 핵심입니다. 더 늦기 전에, 생태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지기 이전에 기업이 사회, 환경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SK이노베이션의 사회적 가치 경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미래를 학자적 관점에서 전망하신다면?  

"요즘의 ESG는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죠. (국제사회나 정부가 요구하는) 법적인 것뿐 아니라 시장이 요구하는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내부통제)를 충족해야 합니다. SK이노베이션은 일찌감치 정유 산업을 둘러싼 환경 문제를 자각하며 대체 에너지 개발을 강조했습니다. 그 뜻을 이어나가며 결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 기업으로 변신했죠. 변화되는 산업구조, 시장 요구에 맞게 선도적으로 혁신을 이어온 겁니다. 또 어떻게 새로운 에너지의 장(場)을 열어가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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