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류영재의 ESG인사이트] 환경·사회(ES)가 먼저냐? 거버넌스(G)가 먼저냐

중앙일보

입력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SG에 대한 한국 기관투자자들의 생각은 대동소이하다. ESG를 적극 표방한 투자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이나 모두 ‘ESG'라 쓰고, ’G'라고만 읽는다. 그들 머릿속에는 그간 이 땅의 소수주주로서 겪었던 불편 부당한 대우에 대한 울분이 가득한 까닭이다. “내 돈 갖고 기업과 지배주주가 ‘E와 S’로 공치사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는 태세다. 그들에게는 소수주주와 지배주주간 최소한의 주주평등 원칙이 지켜지는 'G(거버넌스)'가 최우선이고, 'E(환경), S(사회)'는 나중 문제다.

그들 주장에 일리가 있다. 그간 국내에서는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소수주주 이익이 훼손된 사례들이 허다하다. 그 방식도 다양하게 진화 발전해 왔다. 우선 ‘기업합병’을 통해서다. 2015년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시가(時價)를 계산해 양사 간 합병 비율을 결정했다. 외형적으로는 법을 따랐지만, 내용상으로는 다툼의 여지가 많았다. 당시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았던 제일모직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으나, 지배주주 지분율은 낮고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을 4%나 보유한 삼성물산의 주가는 역사적 저점 상태였다. 제일모직의 주가는 평가절상, 삼성물산의 그것은 평가절하됨으로써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합병 조건이 마련되었다. 그 시점에서 합병이 추진되었다. 지배주주가 챙긴 이익만큼 국민연금을 비롯한 소수주주들은 손해를 봤다.

둘째로 ‘기업분할’ 방식이다. 2020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LG화학의 배터리부문 물적분할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적분할은 회사의 특정 사업 부문을 100% 자회사로 떼어 내는 것이다. 이론상 기업가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국내에서는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의 시가총액 감소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당시 서스틴베스트는 36개 해당 표본 중 최대 75%인 27개 표본에서 모회사 디스카운트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의결권자문사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예상대로 배터리 부문이 ‘LG에너지솔루션’으로 상장되고 모회사 LG화학의 시총 하락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이 방식은 전범(典範)이 되어 여러 회사로 번졌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사업을 ‘SK온’으로, 포스코도 ‘포스코홀딩스’와 철강부문인 ‘포스코’를 물적분할했다. 한국조선해양의 ‘현대중공업’, SK케미칼의 ‘SK바이오사이언스’도 물적분할에 이어 상장됐다. 최근까지 소수주주들의 물적분할 반대 집회와 국민청원까지 이어졌다.

셋째 ‘일감 몰아주기’라는 고전적 방식이다. 이 방식은 과거 대기업집단에서 주로 활용되었지만 최근 총자산 5조원 미만의 공시 사각지대에 있는 중견·중소기업들에서 자주 발견된다. SM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SM은 K-팝과 아이돌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한 국내 대표 연예기획사다. 이들은 S.E.S,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EXO, 레드벨벳 등 많은 아이돌을 길러내 K-웨이브와 K-소프트파워 확대에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최근 SM 설립자이자 지배주주(19% 지분 보유)인 이수만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사업체인 라이크기획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 규모만 해도 지난 22년간 약 1500억원이나 된다. 이러한 이유로 SM은 JYP 등 3개 동종업체의 지난 3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24.2% 비해 3.3%로 턱없이 낮고, 지난 5년간 EV/EBITDA도 7.5배로 동종업체 평균 22.3배보다 매우 낮은 배수를 적용받아왔다. 이 역시 지배주주에게 돌아간 이익으로 인해 시장의 외면을 받아 소수주주들이 손해를 본 셈이다.

이상 세 가지 방식의 여러 사례만 놓고 봐도 소수주주들의 ‘G 먼저, ES 다음’ 주장에 일견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 주장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즉 기업은 ‘계속기업’이란 가정에 따라 자본을 어떻게 배분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느냐의 관점을 간과한다. 즉 ‘파이 나누기’와 ‘파이 키우기’를 위한 균형 있는 자본 배분(Capital Allocation) 문제가 그것이다. 전자는 앞서 언급했듯 ‘주주평등의 원칙’ 하에 공평하게 기업의 자원을 나누는 문제다. 예컨대 공정한 합병 및 분할, 투명한 내부거래, 적정 배당,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이 이와 관련된 이슈들이다.

하지만 후자의 ‘파이 키우기’는 ‘성장하지 못하면 쇠퇴한다.’는 명제 하에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차원의 문제다. 연구개발(R&D), 설비 증설 및 고도화, 인재 육성,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 브랜드가치 제고, 디지털 및 에너지 전환,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 관계 관리 등의 이슈들이 그것들이다. 기업경영이란 이러한 자본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을 만큼 이들 이슈 관리는 매우 중대하다.

자동차 섹터를 예로 들어 보자. EU와 영국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저지 등 10개 주가 2030년 혹은 2035년부터 그렇다. 중국도 2035년부터 화석연료 자동차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 이처럼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차의 판매는 시한부다. 따라서 기아나 현대차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향후 전기차, 수소차와 같은 미래형 모빌리티 부문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마케팅 등에 달려 있다. 때문에 차의 구동원리를 기존 ‘엔진과 변속기’에서 ‘모터와 감속기’로, 에너지원은 ‘석유’에서 ‘전기 배터리’로 대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본투자는 필수 불가결하다. 동시에 기존 내연기관 위주의 임직원과 협력사들도 친환경 중심의 그것으로 재편하고 재조정해야 한다. 이 대전환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의 친환경, 탄소중립, 인적 자원 관리, 협력사와의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등 ES의 모든 이슈들이 녹아 있으니 이는 곧 ‘자동차 회사의 진짜 ESG경영’이라 할 수 있다.

‘G’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공평한 파이 나누기’에 가깝다. ‘ES’는 ‘미래 지향적 파이 키우기’에 더 가깝다. 중단기 투자자들이나 주식보유자(Shareholder)들은 오로지 전자의 문제에만 골몰할지 모른다. 파이를 보다 균등하게 자르는 순간 자신들의 몫이 그만큼 즉각적이며 기계적으로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더 챙겨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주식보유자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 투자자들이나 기업오너(Shareowner)라면 ‘당장 나눠 챙기는 이슈’에는 무관심할뿐더러 일희일비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나누기’와 ‘키우기’를 선후(先後)가 아닌 경중(輕重)의 차원에서 균형 있게 따져 나갈 것이다. 부연컨대 뜨내기 주주라면 나누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나, 주인 의식을 갖는 장기 주주라면 ‘공정한 나누기’와 ‘장기적 키우기’ 둘 다 관심을 갖는다. 이 두 개의 공을 저글링(Juggling)하며 장기적 기업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명실상부한 ‘ESG투자’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