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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여당 '전효숙 카드'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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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벌써 90일째다. 노무현 대통령은 석 달 전인 8월 16일 전효숙(사진) 재판관을 새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전효숙 헌재 소장 임명 동의안'은 아직까지도 국회에 발이 꽁꽁 묶여 있다.

처음에는 절차가 문제였다. 임기 6년을 보장해주기 위해 청와대가 전 재판관을 사퇴하게 한 뒤 다시 재판관에 임명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차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코드 인사'를 이유로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실력 저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한길.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16일 회동에서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30일 이후 미루기로 합의했다. 장관 인사청문회 등 시급한 사안 때문에 미룬다는 것이지, 30일 이후에 처리한다고 합의한 게 아닌 만큼 '전효숙 헌재소장 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청와대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답답하다"며 "더 큰 문제는 마땅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선 "청와대고 열린우리당이고 제 코가 석 자인데 누가 '전효숙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총대를 메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대로 놔두면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논리적으로 몇 가지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등의 협조를 얻어 한나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력으로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 봐선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열린우리당 내부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의 양보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전효숙 소장 카드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 일부에선 이런 카드를 거론하고 있다.

레임덕에 시달리는 노 대통령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9월 29일 MBC 100분토론에서 전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인기가 없어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는 노무현답게 인사를 하라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래서 노무현답게 인사했다"고 말했었다.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 스스로 그만두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7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으로 출국한다.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전효숙 헌재 소장 카드를 풀지 못한 무거운 마음으로.

박승희.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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