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문제를 디파인(define.규정)하고 어젠다를 만드는 사람이다."(나종일 주일 대사)
6일 오후 일본 도쿄 남서쪽 가나가와현의 지가사키시에 있는 '마쓰시타 정경숙' 대강의실.
강의실엔 한국의 지방 지도자 14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청년 목민관(牧民官.조선시대 때 지방 수령)이란 뜻의 '청목회(靑牧會.회장 엄태영 제천시장)' 회원이다. 청목회는 한국의 현직 시장.군수.구청장 가운데 30~40대에 첫 당선한 기초자치단체장 48명의 모임. 이 가운데 14명이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찾았다.
한·일 교류회가 열린 일본 아비코시 주오학원 대학 뜰에서 한국 방문단이 즉석 토론을 하고 있다. [대덕넷 제공]
◆ "성장의 원천을 찾아라"=한국의 지방 지도자들은 일본의 정치인 양성 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토론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경쟁과 세계화로 먹고사는 문제를 풀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전남의 기초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 성공한 군수로 뜬 서삼석 무안군수의 말.
"전국 230개 시.군.구청이 먹고살기 위해 불꽃 튀는 광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린 기업도시를 유치했다. 노인들에게는 목욕탕에서 때 씻어 주고 빨래해 주는 수준으로 서비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첫째, 경쟁이다. 둘째, 해외로 눈을 돌렸다. 셋째,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공무원들을 쥐어 짰다. 시장.군수들이 살아남으려면 이런 모험을 해야 한다."
이튿날 도쿄와 인접한 지바현 아비코시의 주오(中央)학원대학 대형 강의실.
한국 방문단은 '일본전국청년시장회(회장 요코 도시히코 사가현 다구시 시장) 소속 40대 시장 14명과 함께 지방 발전을 위한 공동 사례 발표를 했다.
두 나라 자치단체장들의 관심사는 다르지 않았다. ①인구 감소를 막고 ②성장 원천을 찾아내며 ③예산 낭비를 막고 ④지방을 국제화해 ⑤주민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나비 축제'로 주민 삶의 질을 바꿔낸 이석형 함평군수의 사례 발표에 관심을 쏟았다.
▶3선의 이 군수의 발표 요지="1998년 취임 때 함평은 천연 자원, 관광 자원, 산업 자원이 하나도 없는 3무(無) 지역이었다. 취임 뒤 몇 개월간 잠도 안 왔다. 그러다 함평천에 유채꽃과 자운영을 심어 나비를 키우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준비한 게 나비 축제였다. 2008년엔 세계 나비 엑스포를 연다."
◆ 일본인 감동시킨 한국의 시장.군수.구청장=일본의 개혁파 지방자치 리더인 가타야마 요시히로 돗토리현 지사는 이 군수에게 조언을 했다. 돗토리현의 어떤 시골 도시에서도 엑스포 같은 '세계 수박 서밋(Summit.정상회의)'을 열었는데 아프리카를 포함해 세계 1500여 개 종의 수박 유전자를 모으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2선의 이학재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발표의 결론="보통 공무원들은 임기.예산.권한이 없으면 일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리더는 반대다. 부족한 게 무엇인지 파악해 그걸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는 게 지도자의 미션이다. 창조성과 상상력.생각의 힘으로 결핍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한국 청년 단체장들의 사례는 일본인을 감동시켰다. 이날 만찬에서 일본 중의원 의원이자 총무대신(행정자치부 장관)의 정무관(차관급)인 쓰치야 마사타다는 "한국은 문화적으로 일본의 형님 나라"라고 말했다.
양국의 시장.군수.구청장의 토론은 매우 생활적이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었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핏대 높여 외치는 이념 과잉, 관념 과잉의 추상적인 주장들에 지친 기자는 오랜만에 신선한 생각을 주입받았다. 한.일 청년 시장.군수.구청장 교류회는 내년엔 한국에서 열린다.
◆ 한국 방문단=엄태영 제천시장, 이학재 인천 서구청장, 전갑길 광주 광산구청장, 이장우 대전 동구청장, 정용기 대전 대덕구청장, 박선규 영월군수, 정구복 영동군수, 임정엽 완주군수, 노관규 순천시장, 신정훈 나주시장, 서삼석 무안군수, 이석형 함평군수, 박승호 포항시장, 이병학 부안군수.
아비코시=전영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