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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인플레 귀환에 중앙은행은 긴축 중…'역환율전쟁'으로 확전

중앙일보

입력

이젠 긴축의 시대다. 코로나19가 열었던 제로금리의 시대는 고물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각국 중앙은행의 컨센서스는 '고통스러운 긴축'이 됐다.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 공식은 빅스텝(0.5%포인트)과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FP]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FP]

대세가 된 빅스텝 인상 

긴축의 흐름을 주도하는 건 미 연방준비제도(Fed)다. Fed는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2.25%포인트 인상(연 0~0.25%→2.25%~2.5%)했다. 인상 속도도 어느 때보다 빠르다. 6월과 7월에는 연달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렸다. Fed는 오는 20~21일(현지시각)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한 차례 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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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텝 등 큰 폭의 금리인상은 어느새 각국 중앙은행의 표준이 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8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연 0.5%→1.25%)했다. ECB의 자이언트스텝은 유로화가 탄생한 1999년 이래 두 번째다. ECB는 지난 7월에는 빅스텝을 밟았다. 영국 영란은행도 지난달 1995년 2월 이후 27년 만에 빅스텝 인상(연 1.25→1.75%)을 단행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더 나갔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인상했다. 1.0%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캐나다 중앙은행은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3%포인트(연 0.25%→3.25%) 인상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7월 사상 초유의 빅스텝 인상 등을 포함해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1.5%포인트(연 1%→2.5%) 인상했다. 한은은 8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빅스텝 인상을 하고 있다”며 “주요국의 빅스텝 인상은 2000년 대 초반 이후 20여년 만”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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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에, 경기 식히는 중앙은행

중앙은행들은 긴축은 치솟는 물가 탓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충격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이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과 수요 증가와 맞물리며 폭발력이 커졌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5% 상승했다. 지난 6월(9.1%)보다는 상승세가 꺾였지만, 여전히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지고 있다. 8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CPI는 1년 전보다 9.1% 오르며, 7월(8.9%)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고물가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7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부터 그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경제 주체가 가격과 임금을 서로 올리고 그 결과 다시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되면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이더라도 고물가 상황이 고착해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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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목표는 ‘계획된 침체’다.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둔화하면 수요가 줄고, 고용시장에 여유가 생겨 임금 인상 폭도 줄어든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달 26일 잭슨홀 미팅서 “높은 금리가 가계와 기업에도 일정 부분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며 “물가상승률 축소에 따른 불행한 비용이지만, 물가 안정 복원의 실패는 훨씬 더 큰 고통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정책 실패 우려에…강공 돌아선 중앙은행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섣불리 다시 완화했다 물가가 다시 뛸 경우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고 있다. 1970년대 경기와 물가 모두를 살피며, 금리 인상과 인하를 오갔던 ‘스톱앤고(stop and go)’의 실패 사례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다.

Fed가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오판한 영향도 긴축 폭과 속도를 키우는 요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4월 ‘Fed의 실패’라는 기획기사에서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었지만 제 때 사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물가는 더 올랐고, 금리 인상 폭도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돌발 변수도 영향을 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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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 시대에 신흥국은 '역환율 전쟁'  

달러 강세도 각국 중앙은행을 긴축으로 몰고 있다. 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는 어느 때보다 치솟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5일 110을 넘어서는 등 초강세다.

미국 입장에서 달러 강세는 일단 나쁠 것이 없다. 이른바 ‘킹 달러’는 미국의 수입 물가를 낮춰 인플레 압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WSJ은 5일(현지 시각) "달러 강세로 수입 가격이 낮아지며 미국인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반면 신흥국은 달러로 빌린 채무 상환 부담이 커지는 데다 석유 등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어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금리를 인상하고, 보유하던 달러를 풀어 자국 통화 가치를 올리는 '역환율 전쟁'에 나설 수 밖에 없다. 한은은 8일 “미국 이외 국가들에서 통화 가치 절하(환율 상승)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이 추가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빅스텝 인상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의 잭슨홀에서 지난달 25~27일 열린 잭슨홀 미팅에 참가한 제롬 파월 Fed 의장, 라엘 브레이너드 Fed 부의장,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오른쪽부터)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의 잭슨홀에서 지난달 25~27일 열린 잭슨홀 미팅에 참가한 제롬 파월 Fed 의장, 라엘 브레이너드 Fed 부의장,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오른쪽부터)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긴축의 끝은?…"내년에도 금리 인하 없다"

Fed 인사들은 연일 ‘높은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한다(higher for longer)’는 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7일 라엘 브레이너드 Fed 부의장은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낮출 때까지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것이고, 금리는 더 오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같은 날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4%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당분간 이를 유지해야 한다”며 “내년에 Fed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Fed가 긴축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는 한 한은도 통화정책 완화로 방향타를 돌리는 게 쉽지 않다. 이 총재는 지난달 27일 “한은의 통화정책은 Fed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다”며 “한은이 Fed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종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Fed의 움직임에 따라 올해 2번 남은 금리 결정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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