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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글로벌 유니콘 60조→500조 될 동안…멈춰버린 韓 ‘규제 시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데스 밸리(Death Valley)'는 3~7년차 스타트업들이 겪는 위기를 뜻한다. 사진 셔터스톡

'데스 밸리(Death Valley)'는 3~7년차 스타트업들이 겪는 위기를 뜻한다. 사진 셔터스톡

‘타다를 금지한 결과가 택시 기본요금 4800원이냐?’ 지난 5일 서울시의 택시요금 인상 공청회를 보도한 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타다 이후에도 모빌리티, 원격의료, 공유숙박, 리걸테크 등 다양한 국내 스타트업들은 낡은 잣대와 싸우고 있다. ‘자율규제’를 강조하는 이번 정부는 어떻게 제도를 정비해야 할까.

무슨 일이야

글로벌 유니콘 100개사 중 55개는 한국에서 규제로 사업 불가능한 모델이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글로벌 유니콘 100개사 중 55개는 한국에서 규제로 사업 불가능한 모델이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지난 2017년,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국내에서는 규제 때문에 사업을 하기 어려운 기업이 56개에 달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조사 결과 55개는 여전히 국내 사업이 불가능한 모델이었다. 그 사이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23개사는 상장사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23개사의 전체 기업가치는 60조원에서 500조원으로 뛰었다.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스타트업 단체들은 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를 열고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를 맡은 박경수 삼정KPMG 상무는 “국내는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법률이 아직도 새로운 산업을 규제하고 있다”며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한걸음 모델 등 다양한 규제혁신 제도를 내놨지만 스타트업이 체감하기엔 모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수 삼정KPMG 상무가 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박경수 삼정KPMG 상무가 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뭐가 문제야

반복되는 ‘노룩 패싱’ : 규제 영향이 강한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은 이해관계자 간 협의나 대화가 어려운 시장으로 꼽힌다. 지난 5년간 규제 챌린지, 규제혁신 해커톤, 한걸음 모델, 규제 샌드박스 등 ‘규제 예외’ 대상으로 수차례 상정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택시업계, 의사협회, 숙박업계 등이 협의 테이블에 앉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 대표적인 국내 규제 산업은 다양한 규제혁신 제도의 안건으로 선정됐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 대표적인 국내 규제 산업은 다양한 규제혁신 제도의 안건으로 선정됐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 답이 없는 ‘부처 충돌’ : 정부 내 여러 부처가 얽힌 사안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농어촌 빈집 활용 공유숙박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는 “너무 오랫동안 갈등의 중심에 있다 보니 (회사가) 사망할듯 말듯 병상에 누워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모두 ‘나라가 할 일을 스타트업이 해준다’며 환영하면서도, 농어촌 지역은 농림축산식품부 관할이다 보니 부처의 벽을 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자율주행 분야도 과기정통부와 국토부 사이 통신 표준에 대한 의견 차가 뚜렷해, 업계 전반이 눈치 싸움을 해야 했다(2024년 이후 단일 표준화 추진 예정).

● 눈물나는 ‘뒷북 허용’ : 뒤늦게 규제가 풀려도, 시장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친 경우도 빈번했다. 카드결제 단말기를 스마트폰 앱으로 대체한 ‘페이콕’의 권해원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진입에만 5년이 걸렸다”며 “지난해 정부 허가를 받아 중개 플랫폼 없이도 단골 식당에서 배달시킬 수 있는 B2C(기업 소비자 간) 서비스에 진출했지만, 기존 금융사는 절대 스타트업 손을 안 잡아주더라”고 토로했다.

이게 왜 중요해

해묵은 문제다. 신산업을 옥죄는 규제는 ‘기요틴(김대중 정부)’, ‘전봇대(이명박 정부)’, ‘손톱 밑 가시(박근혜 정부)’, ‘애로(문재인 정부)’ 등 다양한 비유를 거치며 뿌리 뽑아야 할 대상에 꼽혔지만, 규제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안 되는 것만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대전환은 20여년째 공회전 중이다.

와중에 스타트업들은 겨울을 맞고 있다.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자금줄이 마르면서다. 이름난 스타트업들조차 문을 닫거나 매물로 나오는 형편이다. 수산물 당일배송 스타트업 ‘오늘회’는 문을 닫았고, 시리즈D 유치에 실패한 ‘스푼라디오’는 직원 30%에 권고 사직을 통보했다. 토종 OTT ‘왓챠’도 매각 추진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유치 규모는 약 1085억 달러. 지난 분기보다 23% 감소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기업 규제철폐”를 외쳐온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이 규제 혁신 필요성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남성준 다자요 대표, 권해원 페이콕 대표, 김광섭 피엠그로우 대표. 사진 아산나눔재단

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이 규제 혁신 필요성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남성준 다자요 대표, 권해원 페이콕 대표, 김광섭 피엠그로우 대표. 사진 아산나눔재단

해외에선

● 일대일 규제 과외 : 2016년 세계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영국은 지난해 선도적인 보완 제도를 내놨다. 규제를 관할하는 정부 담당자와 스타트업을 일대일(1:1)로 매칭해주는 ‘이노베이션 패스웨이’다. 사업모델 확정 전의 스타트업에 정부의 전담 관리자가 붙어 규제 관련 사항을 점검하는 프로그램.

이보다 한 해 먼저 도입된 ‘디지털 샌드박스’는 기업이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온라인으로 입력하면 정부가 타당성을 입증해주는 제품 테스트 제도다. 토스·컬리 등 이미 크게 성장한 스타트업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어떤 부처에 규제를 물을 지도 불분명하고, 최장 2년이면 담당 공무원이 바뀌는” 국내 스타트업 현장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된다.

● 철저한 사후 관리 : 싱가포르는 올해 규제 샌드박스 종료 시점에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샌드박스 플러스’ 제도를 도입했다. 업계 선도 기업들에게 최대 5억원을 제공한다. 또 모든 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정부 주최 투자 유치 프로그램 참가 자격을 제공한다. 샌드박스 기간이 끝나더라도 기업이 고사하지 않게 방지턱을 깔아주는 셈.

삼정KPMG는 정부의 전주기적 스타트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삼정KPMG는 정부의 전주기적 스타트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앞으로는

박경수 삼정KPMG 상무는 “규제 샌드박스 등 기존 제도에서 예측가능성을 대폭 늘려주는 것이 지금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일 것”이라며 “소통 채널을 일원화하고, 사업모델 수립 과정부터 규제 여부를 고지해주는 시스템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정부·국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스타트업들의 요구는 규제를 아예 없애달라는 게 아닌,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혁신과 성장에 맞게 합리화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양석 전 국회의원(전 국민의힘 사무총장), 윤명오 정부 경제규제혁신TF 민간위원(서울시립대 교수),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 등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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