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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뭉쳐야 산다? 1등만 산다?” 투자 혹한기 스타트업들의 M&A

중앙일보

입력

tv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스타트업〉에는 극중 세계적인 대기업 투스토가 주인공 달미(배수지)와 도산(남주혁)이 이끄는 스타트업 삼산텍을 인재채용 목적으로 인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같은 M&A 방식은 기업인수(acquire)와 인재 채용(hire)의 합성어인 애크하이어라고 불린다. [사진 tvN]

tv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스타트업〉에는 극중 세계적인 대기업 투스토가 주인공 달미(배수지)와 도산(남주혁)이 이끄는 스타트업 삼산텍을 인재채용 목적으로 인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같은 M&A 방식은 기업인수(acquire)와 인재 채용(hire)의 합성어인 애크하이어라고 불린다. [사진 tvN]

‘이 추위, 버티려면 뭉쳐야 하나.’ 혹한기를 맞은 스타트업들이 합종연횡에 나섰다.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벤처투자(VC)업계가 돈줄을 조이자, 곳간에 여유가 있는 스타트업들은 체급이 더 낮은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무슨 일이야

31일 스타트업 민관협력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1~7월까지 총 79곳의 스타트업이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 절반은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한 경우였다. 후속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중소 규모 스타트업들이 체급이 더 큰 스타트업들에 흡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장승룡 카카오벤처스 이사는 “예전에는 스타트업이 어딘가에 인수되는 일 자체가 희귀했는데, 이젠 스타트업 간 M&A도 활발해진 걸 보면 국내 창업 생태계가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업종 1, 2위 스타트업들이 경쟁사를 흡수해 시장 우위를 확고히 했다. 유아동 교육·돌봄 매칭 서비스인 ‘자란다’는 이달 1일 비대면 육아상담 서비스를 운영하는 ‘그로잉맘’을 인수했다. 데이터 기반 아동 생애주기별 맞춤 솔루션을 강화해, 키즈테크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겠단 전략이다.

명함관리 앱 ‘리멤버’ 개발사 드라마앤컴퍼니는 경력직 채용 서비스를 키우기 위해 이안손앤컴퍼니(전문가 네트워크 기업)에 이어 슈퍼루키·자소설닷컴(신입·인턴 채용 전문)까지 끌어 안았다. 지난해 사모펀드 아크앤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금 1600억원을 유치한 자금력을 활용했다.

특히,인재 확보를 위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애크하이어(acqui-hire·인수 고용)’가 눈에 띈다. 세금환급 서비스 ‘삼쩜삼’ 운영사 자비스앤빌런즈는 지난 3월 영상통화 스타트업(스무디)을 인수해 모바일 앱 개발팀을 확충했다. 스무디 창업자였던 조현근 삼쩜삼 잡매칭 사업본부장은 “(스무디는) 코로나 초기 크게 성장해 투자도 잘 받았었지만 수익모델을 잘 구축하지 못해 인수처를 찾게 됐다”며 “수익모델 확실한 삼쩜삼과 앱 개발력을 갖춘 우리가 합쳤으니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는 어때

해외에서도 스타트업 인수합병이 활발하다. 인도에선 올 들어 벌써 200여건의 M&A가 이루어졌다. 인도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 조마토(Zomato)가 신속배달 스타트업 블링킷(Blinkit)을 인수한 게 대표적인 예. 이스라엘 핀테크 스타트업 이토로(eToro)는 옵션거래 플랫폼 개츠비를 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아마존 계열 자율주행 스타트업 죽스(Zoox)는 농업용 로봇 스타트업 스트리오닷에이아이를 품는 등 스타트업 합종연횡은 꾸준히 벌어지는 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게 왜 중요해

● 위기는 기회: 투자 혹한기는 자금 넉넉한 1등들에겐 큰 돈 들이지 않 스케일업(scale-up·규모 확장)할 절호의 기회다. 특히 유사 업종 스타트업을 삼키는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하면 ‘업계 1위’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장 이사는 “동종업계 M&A는 운영과 경영에 투입되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가성비’가 높다”며 “합종연횡을 통해 스타트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뿌리 같은 나무: 업계에선 스타트업·스타트업 인수가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에 비해 위험 요인이 적다고 입을 모은다. 빠른 성장에 몰두하는 스타트업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M&A 이후 기업 통합(PMI, Post-Merger Integration) 과정에서 갈등이 비교적 적다는 것.

앞으로는

당분간 VC들의 투자 기준은 성장보단 수익성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적자인 스타트업일지라도, 언젠가는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합리적인 미래를 제시해야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전망. 투자 유치 없이는 자립이 힘든 스타트업이라면 빠르게 피봇(pivot·사업방향 전환)하거나, 다른 회사의 품에 안기는 길 외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다만, 살림을 성급히 합쳤다간 독이 든 성배를 마시게 될 수도 있다. 권오형 퓨처플레이 투자 파트너는 “합병·인수가 잘못되는 경우도 너무 많다”며 “기대했던 사업적 성과가 저조할 수도, 예상치 못한 부채나 리스크가 함께 넘어올 수도 있으니 시너지를 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조건부 M&A를 검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안희철 법무법인디라이트 변호사는 “최근에는 인수할 스타트업의 주식을 51% 정도만 보수적으로 인수하고, 나머지 지분은 상대 기업이 매출이나 사용자 숫자 등에서 일정 수준의 목표를 충족하면 사기로 하는, 일명 언아웃(earn out) 방식의 M&A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