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는 9명, 노래는 단 3분"...이런 K팝 뮤비, 성공 공식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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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브프로덕션이 제작한 있지(ITZY) '달라달라' 뮤직비디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나이브프로덕션이 제작한 있지(ITZY) '달라달라' 뮤직비디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대중음악은 ‘오디오 비주얼 산업’이 아닌 ‘비주얼 오디오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중략) 그리고 그 산업의 정점에 K팝이 있다.

미국의 영상 제작자 조쉬 올루페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내놓은 분석이다. K팝이 어떻게 세계 대중음악 업계를 바꾸고 있는지 설명하는 한 교육 영상에서 그는 특히 뮤직비디오의 역할에 주목했다. 미국 팝 뮤직비디오보다 2~3배 높은 제작비, 영화 수준의 높은 완성도, 미학적으로 완벽한 구성을 갖춘 K팝 뮤직비디오가 언어의 장벽을 깨고 팬들을 매료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K팝의 가장 큰 강점인 아티스트들의 군무 등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 뮤직비디오만큼 최적화된 수단이 없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K팝의 글로벌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유튜브 조회 수 1억 회 이상 뮤직비디오가 257개에 달하는 K팝 업계에서 뮤비 만들기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뮤직비디오 제작사 나이브프로덕션의 김영조(38, 이하 김)·유승우(39, 이하 유) 프로듀서를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같은 대학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은 2011년 힙합그룹 투게더브라더스의 ‘한강하류’ 뮤직비디오로 데뷔했다. 이후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를 기점으로 트와이스(TWICE), 아이유(IU), 갓세븐(GOT7), 있지(ITZY)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특히 JYP와 자주 협업해 팬들 사이에선 ‘JYP 전담 제작사’로 통한다. 이들이 만든 트와이스의 ‘치어 업’(Cheer Up), ‘티티’(TT), 2PM의 ‘우리집’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의 비주얼과 콘셉트가 제대로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회자된다. 나이브는 평소 언론 노출을 꺼려 정식 인터뷰는 8년 만이라고 한다. 소셜미디어도 일절 사용하지 않아 알려진 정보가 희박한 상황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달 31일 사무실에서 만난 나이브프로덕션. 왼쪽부터 김영조·유승우 프로듀서. 사진 나이브프로덕션

지난달 31일 사무실에서 만난 나이브프로덕션. 왼쪽부터 김영조·유승우 프로듀서. 사진 나이브프로덕션

최근 부르는 곳이 많아 바빠졌을 것 같다.
김: 못해도 3개씩은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바쁠 때는 5개까지도 소화한다. 특히 7~8월에 아티스트들 컴백이 몰려 있다 보니 작업량이 많은 편이다. 예전엔 연말에 나오는 노래가 적어서 그때가 비수기였는데 최근엔 그런 구분이 사라졌다.
프로듀서로서 뮤직비디오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 노래가 먼저 나오면 우리가 그걸 듣고 떠오르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서 재미있다. 12년째 그 재미 때문에 일하고 있다.
유: 연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가령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뮤직비디오에 가미하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점점 수요가 다양해져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긴 어려워졌다. 우리의 연출 방식과 최근 트렌드 사이에서 계속 타협하고, 조율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좋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조건이 있나.
김: 노래를 딱 들었을 때 뮤직비디오 장면이 떠올라야 한다. 그러면 작업하기도 수월하고 결과물도 대체로 좋다.
유: 예를 들어 갓세븐의 ‘딱 좋아’는 멤버들이 소인이 되는 콘셉트를 바로 떠올렸는데 귀여운 콘셉트의 노래랑 영상이 잘 어울려서 팬들 사이에서 아직도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2PM ‘우리집’이나 트와이스 ‘치어 업’ 같은 경우에도 듣자마자 바로 결과물이 나온 케이스다. 특별히 힘들여서 만든 게 아닌데 반응이 좋아서 얼떨떨할 때가 많았다.
나이브프로덕션이 제작한 2PM '우리집' 뮤직비디오. 2015년 발표 후 얼마 전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나이브프로덕션이 제작한 2PM '우리집' 뮤직비디오. 2015년 발표 후 얼마 전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최근 K팝 뮤직비디오 트렌드는 무엇인가.
김: 안무를 얼마나 멋있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K팝이 잘된 게 퍼포먼스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니 뮤직비디오도 멤버들의 안무나 군무를 어떻게 보여줄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멤버들 얼굴이나 패션도 그에 못지않게 잘 보여줘야 한다. 예전엔 뮤직비디오의 역할이 곡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거였다면 지금은 비주얼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유: 멤버 각자의 매력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한다. 트와이스는 멤버 개개인을 관찰하면서 ‘저 친구는 이런 걸 잘하니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티티’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별 코스프레 같은 시도가 나온 거다.  
김: 트와이스 멤버가 9명인데 노래는 3분이다. 그럼 개개인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몇 초밖에 안 된다. 팀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멤버 한 명 한 명을 각인시키려면 각자의 매력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지난 2016년 발표돼 유튜브에서 6억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트와이스의 '티티'(TT) 뮤직비디오. 나이브프로덕션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지난 2016년 발표돼 유튜브에서 6억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트와이스의 '티티'(TT) 뮤직비디오. 나이브프로덕션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시장의 확장, 다양해진 수요

K팝 시장이 커지면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김: 수요가 정말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우리가 잘하는 스토리 위주 뮤직비디오를 의뢰하는 기획사가 많았다면 지금은 요구 사항과 방식이 제각각이다. 노래만 툭 던져주고 알아서 해달라는 곳도 있는가 하면 ‘영(young)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키워드만 주는 경우도 있다. 아예 시놉시스(줄거리)를 갖고 와서 이대로 만들어 달라는 회사도 있다.  
뮤직비디오 제작자의 의사는 충분히 반영되는 환경인가.
유: 기획사와 우리의 생각이 다른 경우가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 팀은 강인한 콘셉트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회사는 요즘 트렌드나 팬들의 요구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우리 생각에 확신이 있으면 최대한 회사를 설득하려고 하는 편이다.
김: 5년 전만 해도 제작자에게 훨씬 더 열려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K팝 인기가 너무 많아지면서, 회사도 팬들이 원하는 걸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가령 우리가 듣기에 이 노래는 힙합풍의 강렬한 노래인데, 그때 예쁘고 아기자기한 게 유행이거나 팬들이 어두운 콘셉트를 싫어하면 어정쩡하게 밝은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냈다 하면 조회 수 1억, 책임감 무거워

유튜브에서 45억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사진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캡처

유튜브에서 45억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사진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캡처

K팝 산업에서 뮤직비디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김: 싸이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로 월드 스타가 됐다. 이제 한 아이돌이 음반을 냈을 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는 콘텐트가 뮤직비디오다. BTS나 블랙핑크도 뮤직비디오가 알려지면서 대스타가 됐고, 우리가 잘 모르는 그룹도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넘게 찍는다. 이제 뮤직비디오가 한국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콘텐트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디테일하게 신경 쓸 부분이 많아져 책임감도 무겁다.
글로벌 팬덤의 기준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김: 팬들의 입김이 정말 세다. 뮤직비디오에서 특정 종교나 국가가 떠오르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멤버들의 노출이나 폭력성이 두드러지면 회사보다 팬들이 더 먼저 반응한다. 기획사 입장에선 팬들의 요구에 맞춰줄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한다. 그래서 논란이 될 만한 요소는 애초에 없애고 시작하는 분위기다.  
뮤직비디오 제작자의 위상도 높아지지 않았나.
김: 이제 팬들은 뮤직비디오 감독의 이름까지 다 외운다. 잘할 땐 찬양 받지만, 어느 한 결과물이 별로면 여론이 확 돌아선다. 그게 무서울 때도 있다. 팬들한테는 죽일 놈이 되는 거니까. 애초에 우리 둘 다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숨어서 조용히 일하고 싶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유: 내가 부족한 점을 계속 공부하면서 일에 몰두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에게 귀를 열고 더 많은 것들을 보면서 나도 즐겁고, 클라이언트도 즐겁고, 대중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것 같다.
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영화처럼 우리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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