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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읽었다고 맹폭…걸그룹은 '페미니즘'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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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8). 끝 

음악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마지막 순서로 박희아(34) 평론가를 만났다. 박희아 평론가는 2015년부터 엔터테인먼트 전문 온라인 미디어 ‘뉴스엔’ 기자로, 2017년에는 K팝 웹진 IZE에서 취재팀장으로 일했다. 이후 평론가로 활동하며 『아이돌의 스튜디오』(2018) 『무대 위의 아이돌』(2019) 등 네 권의 책을 썼다.  

지난달 18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박희아 평론가를 만났다. 박상문 기자

지난달 18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박희아 평론가를 만났다. 박상문 기자

K팝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걸그룹에게는 더욱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걸그룹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페미니즘이다. 남성 팬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걸그룹은 더 조심한다. 박희아 평론가는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성 K팝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검열해야 한다”며 “책 하나만 잘못 읽어도 몇 년 동안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레드벨벳 리더 아이린은 2018년 책 『82년생 김지영』 읽었다고 답했다가 악플에 시달렸다. 뉴스1

레드벨벳 리더 아이린은 2018년 책 『82년생 김지영』 읽었다고 답했다가 악플에 시달렸다. 뉴스1

레드벨벳 아이린이 읽고 있는 책을 언급했다 악플에 시달린 게 그 예다. 2018년 3월 팬 미팅 중 한 팬이 아이린에게 최근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물었고, 아이린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답했다. 며칠 후 이 발언이 알려지고 아이린은 공격 대상이 됐다. 아이린의 포토 카드를 자르거나 불태우는 사진도 올라왔다. 원더걸스 예은으로 활동했던 가수 핫펠트도 2019년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박희아 평론가는 “기자로 일하면서 남성 아이돌이 자신감 넘치는 데 반해 여성 스타들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니는지 목격했다”며 “그들이 ‘여성 아이돌’이라는 이름 아래 더욱 갇혀가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왜 남성 아티스트보다 여성 아티스트들이 더 조심하나.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대두할수록 걸그룹은 페미니즘에서 멀어져야 남성 팬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남성 중에서도 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가 있을 수 있지만, 사회가 극단으로 나뉜 탓에 페미니즘에 대해서 논하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걸그룹 멤버들은 과도하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자기주장이 강하면 바로 낙인찍히고 안티 페미니스트인 남성 팬을 잃을 위험이 있다. 조금이라도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면 위험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걸그룹 멤버들이 놓인 현실은 그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남성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화된 여성의 모습에 더욱더 갇혀버리게 된다.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여성 K팝 멤버들도 실제로는 페미니스트일 수 있지만, 절대로 그걸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인터뷰 중 알게 모르게 티가 날 수 있어 애초에 걸그룹들은 보이그룹보다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다.  
가수 핫펠트는 2019년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혔다. 그가 받은 악플을 공개하고 있다. 핫펠트 소셜미디어 캡처

가수 핫펠트는 2019년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혔다. 그가 받은 악플을 공개하고 있다. 핫펠트 소셜미디어 캡처

걸그룹 멤버들에 대한 성 상품화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프로듀서들이 바뀌어야 한다. K팝 가수들은 매우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데뷔한다. 그들은 데뷔가 너무 간절하기 때문에 프로듀서가 시키는 건 뭐든 한다. 데뷔해서 멋있어 보이는 것만 신경 쓴다. 대부분 자신이 성 상품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문제는 어른인 프로듀서들도 모를 때도 있다는 거다. 아티스트들은 정말 세세한 영역까지 훈련된다. 어떻게 춤추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도 프로듀서들이 알려준다. 따라서 프로듀서들은 너무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어서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데뷔한 걸그룹 르세라핌에 대해 한국 팬들 사이에선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해외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올까.
어떤 공동체든 옳고 그름에 대한 정의나 사회적 합의가 다를 수 있다. 한국 팬들은 르세라핌의 영상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는 의견이 많았다. 르세라핌의 콘셉트는 남성 팬의 시각에 맞춰져 있고, 이런 모습을 ‘당당한 여성상’으로 위장했다. 하지만 사실은 주체적인 여성상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여자)아이들이나 아이브는 요즘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한편으론 팬들이 불편한 지점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팬들은 계속 의견을 제시해야 하고 기획사는 이를 들어야 한다.  
박희아 평론가는 "걸그룹 르세라핌 콘셉트가 남성팬의 시각에 맞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르세라핌이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2 K 글로벌 하트 드림 어워즈에 참석한 모습. 뉴스1

박희아 평론가는 "걸그룹 르세라핌 콘셉트가 남성팬의 시각에 맞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르세라핌이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2 K 글로벌 하트 드림 어워즈에 참석한 모습. 뉴스1

10~20대 젊은 팬들의 의견과 그 이후 세대 팬들의 의견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K팝의 주요 소비층은 10대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이 경시되는 면이 있다. 10대만 K팝을 좋아한다는 말로 K팝을 깎아내리고, K팝을 좋아하는 10대의 음악 취향을 유치하다며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30~40대 넘어가면 음악 취향은 대체로 변화를 멈춘다. 모두가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이 최고라고 믿으며 자신보다 어린 세대는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음악이 청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시각적 요소와 함께하는 새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했다. 본인들은 CD나 라디오를 통해서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어린 세대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눈과 귀 모두로 음악을 즐기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K팝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점은. 
K팝 아티스트들은 개인으로서의 주체와 K팝 콘텐트, 내지는 콘텐트 그 자체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소속사는 아티스트가 항상 ‘더’ 하기를 요구한다. 앨범도 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팬들과 소통도 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아무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은 기록되고 전 세계에 전파되고 또 오해를 산다. 특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으로 팬 미팅이 영상으로 대체되면서 이런 경향이 더 짙어졌다. 그들이 과도한,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받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모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매번 활동마다 지쳐가는 게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면 아티스트들이 실수했을 때 팬들은 실망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니다. 물론 팬들이 과할 때도 있지만, 스타 역시 자신이 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갔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스타들은 자신들이 선하고, 도덕적이고, 친근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믿길 바란다. 그렇게 믿길 바라며 행동했기 때문에 그걸 믿는 게 팬의 잘못은 아닌 거다.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친구나 애인으로 보이게끔 행동한다. 그렇게 해야 팬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걸 안다. 그런 모습을 믿게 해놓고 다른 모습을 보여줬을 때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들도 자신이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면, 본인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갔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들은 작곡 작사와 같은 새로운 능력을 계속 개발해야 할까.
아직도 K팝 아티스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기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작곡 작사를 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폄하한다. 그래서 많은 아이돌이 직접 프로듀싱을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돌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누군가 시키는 걸 잘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잊어선 안 된다. K팝 아티스트는 작곡과 프로듀싱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건 누구의 생각인가. 아이돌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런 잣대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주어진 걸 소화하고 표현하는 것도 재능이다. 뮤지션에 대해 협소한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K팝 아이돌은 다른 의미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다르게 다뤄져야 한다.  

* 이 기사는 코리아중앙데일리 8월 2일자 5면에 보도된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코리아중앙데일리 윤소연 기자 yoon.s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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