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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불법 파업에 손해배상 안 물리겠다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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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202호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202호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주당, 정기국회에 ‘노란봉투법’ 입법 추진

여당 때엔 침묵 … 노조 면책특권 계급 만드나

노동조합이 불법 파업을 해도 그 손실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노란봉투법’이 이번 정기국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을 22개 핵심 민생입법 과제의 하나로 꼽은 데 이어 강행처리 의지까지 밝히면서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엊그제 인터뷰에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나 가압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노동 기본권을 넘어 노동자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것”이라며 “노란봉투법 입법이 아주 시급하다고 본다”고 했다. 대우조선이 최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청지회를 상대로 470억원대 손해배상소송을 낸 걸 명분으로 삼았다.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선 이미 손배 책임을 면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노동조합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경우 노조 또는 근로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여기서 무리하게 더 나간 것이다.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게 아니라면 불법 파업이라 하더라도 노조 또는 노조원에게 손실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고 했다. 폭력·파괴 행위가 있더라도 그것이 노조의 결정에 따른 것일 때 개인에 대한 손배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한마디로 노조·노조원의 불법행위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불법 파업이 만성화돼 있는데 면책이란 방탄(防彈)까지 둘러주는 셈이다.

과도한 입법이다. ‘고의·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노조만 면책하고 기업만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사실상 헌법이 금지한 ‘사회적 특수계급’을 만드는 꼴이기도 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사용자에게 불법으로 손해를 끼친 것까지 면책하게 하겠다는 건 헌법상 재산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입법”이라고 반발할 만하다.

노동 활동이 폭넓게 보장되는 외국에서도 노조의 불법행위까지 면책하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가 1982년 모든 단체행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가 곧바로 위헌 결정을 받은 일도 있다.

민주당이 이제 와 추진하겠다는 것도 속이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처리할 수 있었던 거대 집권당 시절엔 입도 뻥끗하지 않더니 야당이 되자마자 하겠다고 나섰다. 책임 있는 여당일 땐 안 하고 책임 없는 야당일 때 질러 보는 것 아닌가.

차제에 정당한 쟁의와 불법의 경계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노사가 모두 현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원청 기업의 결정 사항인 경우가 많지만,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하면 불법이다. 공론화가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이 특정 정파의 일방 처리가 아닌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