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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혁신 외면하더니 택시대란 해법이 요금 인상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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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심야시간에 택시를 잡기 위해 벌어지는 '귀가전쟁'.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뒤 택시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연합뉴스]

심야시간에 택시를 잡기 위해 벌어지는 '귀가전쟁'.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뒤 택시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연합뉴스]

‘타다 금지’ ‘전액관리제’ 택시 부족 초래

기본요금 26% 인상 등 피해는 국민 몫

어제 서울시가 택시요금 인상 공청회를 열었다. 택시대란의 해법이라며 기본요금을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리고, 기본거리도 2㎞에서 1.6㎞로 단축하는 방안을 내놨다. 할증시간을 밤 10시로 앞당겨 최대 40%의 할증료를 부과하는 탄력요금제도 제시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뉴욕(2.5달러)보다 높은 기본요금에 런던(30%)과 도쿄(20%)의 할증률을 상회하는 인상안이 시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칫 ‘돈 있는 사람만 택시 타라는 거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해법은 결국 공급 부족의 문제를 수요 억제로 해결하겠다는 논리다. 심야 탄력요금제는 개인택시 기사의 70%가 야간운전을 꺼리는 60대 이상인 상황에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

요금을 인상하면 젊은 기사들이 유입될 거란 기대도 안이하다. 2020년부터 정부는 전액관리제를 도입했다. 기사들이 사납금을 채우고 남은 돈을 모두 가져가는 게 아니라 일정한 월급을 받는 방식이다. 젊은 기사들은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배달업계로 많이 떠났다.

실제로 서울의 법인택시 기사 수는 2019년 1월 3만1130명에서 2022년 5월 2만710명으로 급감했다. 민주노총 주도로 도입한 전액관리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많이 일하고 더 큰 수입을 얻고 싶어 하는 젊은 기사들을 유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질적인 해법은 모빌리티 산업의 혁신에 길을 터주는 데 있다. 유럽·미국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우버·그랩과 같은 서비스가 생활화된 지 10년이 돼 간다. 필요에 따라 오토바이부터 경차, 승합차까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2020년 3월 국회가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싹을 잘랐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였지만, 이 법으로 공유택시 기사 1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치권이 혁신을 가로막은 사이 국민은 편리한 서비스도 못 누리고, 택시대란을 겪으며 이젠 요금 인상 부담까지 떠안았다. 다른 나라라고 신구 산업 간에 갈등이 없겠는가. 혁신에 성공한 나라들은 산업계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상생의 해법을 찾았다.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는 우버 요금의 20%를 교통 인프라 기여금으로 거두는데, 이 중 5%를 택시업계에 지원한다. 싱가포르는 우버 기사에게 택시 기사에 준하는 자격을 요한다.

교통 문제는 신구 산업의 갈등 이전에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문제다. “규제를 혁신해 자유시장이 숨쉬게 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처럼 정부는 요금 인상으로 국민에게 부담만 전가하지 말고 혁신의 싹을 틔워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