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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인프라]"현 노동제도는 공장 근로시대 기득권 유지용, 디지털 시대와 MZ세대에 맞게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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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원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좌장(숙명여대 경영학 교수)은 "공장 근로 시대의 제도는 MZ세대와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다. 한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노동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권순원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좌장(숙명여대 경영학 교수)은 "공장 근로 시대의 제도는 MZ세대와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다. 한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노동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한국에 "무엇이 한국의 성장과 혁신을 지연시키고 있는지 깊이 진단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5일 자 8면)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장에 주목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물론 취임 이후에도 수시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정부 주도, 또는 협상 과정에서 갈등만 증폭되기에 십상이었던 노사 협상을 통한 노동개혁에는 고개를 저었다. 과거 전례로 볼 때 산업현장에 제대로 녹아드는 조치는 없고, 결국에는 노사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곤 해서다.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파를 초월한 전문적 식견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노동개혁 좌장 권순원 교수 단독 인터뷰

윤 대통령의 지시로 꾸려진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도 그 일환이다. 노동시장과 인사노무 전문가로 구성됐다. 유럽의 병자이던 독일을 단숨에 경제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하르츠 개혁도 전문가 주도의 노동개혁 덕분이었다. 사실상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에서 노동개혁의 과제와 추진 방향 등이 결정될 전망이다.

그런 연구회의 좌장으로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가 추대됐다. 많은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그는 꺼렸다. 이해당사자인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이 신경 쓰여서다. "개혁안이 나오기도 전에 괜한 논란이 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말을 아꼈다. 그래도 개혁의 방향과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거침없었다. "국민이 공감하고, 이대로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일각에서 연구회를 정부 지침이나 정책을 운반하는 수단(Vehicle)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에 알리바이를 주는 기구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연구회의 활동에 대해 개입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구회를 비판하는 쪽은 노사 협상으로 노동개혁을 진행하자고 주장을 한다. 개혁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노사 단체는 대표권을 가졌지만, 기본적으로 회원들의 대리인 역할밖에 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기주장을 반복할 뿐,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전문가 위원회다. 특정 세력의 간섭없이 독립적으로 시장구조와 상황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라는 말 위에 올라탄 기수다. 정부가 학자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의 전문성을 받아줄 수 있는 정부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일각의 오해와는 거꾸로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산적하다는 지적이 많다.
"풀어야 난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모든 국민이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시장 분절, 즉 양극화다. 기업 규모, 고용형태, 노조 유무, 성별 등에 따른 임금 등 근로조건 격차가 크다. 이는 단기 해결이 어려운 구조적 이슈다. 51일간 이어졌던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이 이중구조의 단면을 보여줬다. 노동시장의 고령화도 빼놓을 수 없다. 베이비붐 세대는 1680만명 수준이며 전체인구의 32.6%를 차지한다. 이들이 주된 직장에서 은퇴해 불완전 고용상태로 진입하고 있다. 이들의 고용 안정화와 지속성 또한 중요한 과제다. 고령화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사회문제다. 청년 실업과 고용률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과제다. 어려서부터 가혹한 토너먼트를 통과하며 살아온 청년에게 취직과 인사제도는 공정성 판단의 대상이다. 기준과 절차 공정성에 집착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기술의 혁신 및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또한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의 노동 대체와 노동과정의 혁신은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고 있다. 이상의 4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노동시장은 현재 상태로 화석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7월 18일 킥오프 이후 중소 사업장, 근로자 대표, 인사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집중 인터뷰를 하는 등 산업현장의 실태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사가 끝나는대로 분석과 개혁 방안을 담은 대안을 낼 계획이다. 우상조 기자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7월 18일 킥오프 이후 중소 사업장, 근로자 대표, 인사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집중 인터뷰를 하는 등 산업현장의 실태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사가 끝나는대로 분석과 개혁 방안을 담은 대안을 낼 계획이다. 우상조 기자

산적한 문제를 묶음으로 다루지 않고, 임금과 근로시간 문제만 파고든다는 비판이 있다.
"4가지 문제의 근저에 연공에 기반한 경직적 임금·인사제도와 근로시간 규제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에는 지금의 제도가 너무 무겁고 둔하다. 대부분의 대기업·공공기관은 여전히 연공형 임금체계를 인사제도의 근간으로 한다. 연공형 임금체계는 한 기업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타적 제도다.내부자 즉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조 조합원만 연공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다. 외부자인 중소기업, 하청, 비정규직, 무노조, 여성 근로자는 연공을 못 쌓는다. 격차가 구조화되고 공고화한다. 내부자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다 보니 내부자와 외부자를 갈라치기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수 노동력의 연차가 높아 임금 부담이 큰 기업의 경우 하청 협력사나 소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 일단이 대우조선 해양 하청지회 파업을 통해 드러났다."
숄즈 교수는 저출산을 지적하며 '은퇴연령 연장'을 한국에 권고했다.
"이 또한 임금체계 개편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임금수준이 올라가는 하방 경직의 구조 하에서 고령자에 대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초과비용이다. 기업 입장에선 명예퇴직처럼 돈을 주더라도 내보내려는 기조를 유지하게 돼 있다. 정년 60세가 법으로 보장돼 있는데도 주된 직장의 은퇴연령이 50세 안팎인 것은 이 때문이다. 계속 고용할 수 있는 인사체계로 바꾸지 않으면 이런 기조를 뒤집기 힘들다."
소위 MZ세대는 연공형 임금체계에 거부감을 표한다.
"연공형 임금제는 예외적 임금체계다. 이 체계가 공고하게 자리 잡은 이유는 한국의 성장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586 등 기성세대가 취업할 때는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았다. 기업이 계속 성장하니 장기근속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근로자도 기업의 성장에 기대 은퇴할 때까지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성장률이 2~3%대다. MZ세대는 '이 정도 성장하는 회사, 성장을 멈춘 회사에서 60세까지 동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대학에서 강의하다 학생들에게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거나 승진하려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면 거의 없다. 평생직장 체제의 중요한 인센티브였던 승진 사다리에 얽매이지 않으며, 가치관과 지향점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일에 종속돼 자기의 모든 것을 장기간 투자하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MZ세대에게 회사는 불확실한 미래다. 그런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양보하려 않는다. 대신 자기 삶의 균형에 가치를 둔다.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 유지가 가장 큰 목적인 연공형 임금체계가 MZ에게 불공정 체계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다."
MZ세대의 특성을 고려하면 현재의 근로시간 체계도 MZ세대에겐 속박이 될 수 있겠다.
"디지털에 익숙한 MZ에게 공장 근로 시대에 제정된 현행 근로시간제도가 부합할 리 만무하다. 근로시간이 생산성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재의 임금체계는 물론 시간 관리 시스템은 노동시장 양극화, 고령화, 디지털 혁신에 따른 노동과정 변화에 대응하기엔 순발력과 민첩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디지털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에 대응하기 어렵다. MZ세대가 지향하는 공정성 요구와 일·생활 균형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주52시간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다만 근로시간의 운용과 배분은 노사 자치에 맡기고, 정부는 일일이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근로자 건강권을 지키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상조 기자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주52시간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다만 근로시간의 운용과 배분은 노사 자치에 맡기고, 정부는 일일이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근로자 건강권을 지키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상조 기자

근로시간제의 개편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길다. OECD 평균보다 연간 43일을 더 일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력은 불가피하며, 현재 주 40시간+12시간 체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다만 어떤 방법이 총 근로시간 감소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지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포괄임금제(고정 OT)의 산정 기준을 주 12시간으로 정하는 경우 주당 52시간 노동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은 불필요한 잔업을 유인할 수 있다. 수당이 지불되지 않는 소위 서비스 잔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필요에 의해서만 초과근로를 사용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초과근로의 산정 주기를 주 또는 월 단위로 광역화하는 경우 불필요한 잔업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경기변동과 물량 수요 변화에 근로시간 조정으로 대응해 왔다. 수요 변화에 대응한 고용조정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장시간 초과근로를 유인했으며, 근로시간이 곧 임금이었던 제조업 핵심계층의 고임금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방식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지속하기 어렵다. 임금이 로봇설비 및 운용비용을 초과하는 경우 기계가 사람을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근로시간 운용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근로시간 보다는 노동의 결과에 기반해 임금을 산정할 수 있다면 장시간 노동의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 노사 간 합의가 필요한 일이나 근로자들의 자기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또한 모색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임금이든, 근로시간이든 정부가 미주알고주알 통제해왔다.
"정부가 노동시장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후견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역할을 조정해야 할 때다. 궁극적으로 근로시간 관련 규율과 관행은 사업, 업종 또는 직무 특성에 따라 노사가 자율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정부와 제도의 역할은 장시간, 야간 또는 위험 근로에 따르는 건강위험을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근로일 간 11시간 의무휴식제, 야간 연속근로 금지 및 위험 근로 시간 규제 등에 초점을 두어 규율하고, 나머지 시간 운용과 배분은 노사의 자치에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업종도 다양하고, 근로 형태도 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정부가 획일적으로 이를 관리하려 하는가. 그것은 불합리한 정부의 지배 개입이다."
연구회가 연구하고 제안한 내용이 입법화하려면 여소야대 국면에서 쉽지 않을 텐데.
"당장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야당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과제를 중심으로 차근차근히 해야 한다. 노동시장 관련 제도는 이해관계가 첨예하므로 공론화를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도 필수다. 제도 개선의 효과로 영향받는 계층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따라야 한다."
독일 하르츠 개혁은 20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노동개혁은 장시간,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단기 성과에 집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노동시장은 생물이다. 변화에 따라 계속 개혁작업이 지속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누적되어 온 구조적인 문제는 단번에 해결하기 어렵다. 이중구조 개선 특히, 비정규직, 불완전고용계층 등의 고용 지위 향상 및 근로조건 개선도 연계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연구 분야 연구진 보강과 연구 분야 확대도 고려할 수 있다. 연구회도 2기, 3기, 4기 등 계속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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