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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벨상 숄즈 "경제정책, 파이 분배보다 파이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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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9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성균관대

199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성균관대

경제 상황이 심상찮다.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며 세계 경제를 움츠리게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탈글로벌화에 따른 경제안보, 인플레이션 확산과 경기침체 가능성, 금융·자본시장 불안정이 확산하고 있다. 국내에선 새 정부의 시장주의 경제정책과 민간 주도 경제의 안착 여부,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에 따른 부작용, 경제성장률 회복 지연, 저출산에 따른 인구문제와 노동력 공급 부족 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석학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스탠포드대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교수와 김준영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이사장)가 글로벌 경제 현안을 놓고 필담을 했다. 숄즈 교수는 재무금융(finance) 분야에서 유력 이론인 블랙-숄즈 모형(Black–Scholes model)의 창시자다.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경제학자로 꼽힌다. 김준영 명예교수는 한국 거시경제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 성균관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성균관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준영 성균관대 이사장(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 성균관대

김준영 성균관대 이사장(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 성균관대

우선 국제적인 이슈부터 다뤘다. 탈글로벌화(deglobalization)에 따른 경제안보문제다. 특히 산업의 쌀이자 한국 수출의 대동맥인 반도체와 관련,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생존할 것인가가 관심거리였다.

(김준영)"탈글로벌화로 국제간 경제협력이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미·중 갈등 등으로 공급 체인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로 개편되고 있다. 국제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기정학적 협력(technogeographical cooperation)이 가시화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여야가 합의해서 반도체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경제안보를 지키면서 글로벌 공급 체인(supply chain) 구축에 참여하려면 정부와 기업은 대응 전략을 어디에 둬야 할까."
(마이런 숄즈)"현 상황에서 미국은 대만을 비롯해 반도체 칩의 공급 측면에선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뒤져 있다. 반도체 공급 체인은 원료부터 생산까지 세계 각지에 분산돼 매우 복잡한 양상이다. 특히 대만과 중국은 반도체 공급 체인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대만은 생산 측면에서, 중국은 소재 측면에서다. 하나의 칩은 6주 내지 8주를 생산주기로 대개 1200단계를 거쳐 생산된다. 칩 부품은 5만㎞, 70개국 이상의 국경을 이동하면서 조달된다. 여기서 중국은 희토류를 포함해 소재를 공급하고, 여러 칩 공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선 칩 자급자족의 경주에서 앞에 자리한다. 대만은 세계 칩(시스템 반도체) 수요의 거의 3분의 2를 충당하고 있고, 고급 반도체의 90% 이상을 공급한다. 대만 칩 생산의 50% 이상을 점하는 TSMC는 3나노미터 칩을 제조할 수 있는 회사다. 칩 시장은 대만이 64%, 한국이 18%, 중국이 9%, 미국이 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칩의 자급자족 필요성이 대두했고, 여기에 대만을 둘러싼 불안이 겹쳤다. 향후 칩과 관련해서 글로벌 대규모 자본 투자 붐이 일어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최근 미국의 칩 투자지출 관련 법안은 상당히 소극적인, 적은 규모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60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임을 고려할 때 그렇다. 그래서 향후 더 많은 민간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미국 역시 내부조달을 원활하게 시행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소요될 것이다. 한국도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공급망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기업뿐 아니라 자본 제공자들과 파트너가 돼야 한다. 소재 등 내부조달은 매우 자본 집약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투입해온 원자재, 소재에 의존하지 않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종전 기술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생산에 사용되는 광물 역시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로부터 쉽게 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소재 대체까지 염두에 두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인플레이션 확산과 경기침체 가능성 또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덮치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무엇이고, 미국 연방은행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이어질까.

(김)"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기후위기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 주요 소재·부품 공급 불안정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처하려 금리를 지속해서 인상 중이다. 이에 따른 강(强) 달러로 경기침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신흥국에서 우려가 크다. 다행히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을 시작으로 인플레이션 상승세는 다소 둔화하고 있으나, 향후 1년은 인플레이션 국면을 피하기 어렵지 않나 예상된다. 현재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이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가능성은?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숄즈)"인플레이션은 화폐 현상이다. 많은 국가에서 지난 수년 동안 중앙은행을 대출기관의 마지막 수단이 아닌, 소비자에게 돈을 뿌려 발생한 재정적자를 책임지는 기관으로 활용했다. 중앙은행을 이용하는 현대통화론(modern monetary theory; MMT) 방식을 쓴 것이다. 이것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그에 반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과 제재로 인한 공급 충격은 생산과 공급을 위축시켰다.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은 줄어드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럴 땐 중앙은행이 공급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수요를 감소시켜 유동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강한 달러가 부상했다. 강한 달러는 신흥국의 부채상환을 어렵게 한다. 그러다 채무가 과다하게 되면 신흥국의 소비를 감소시키게 되고, 헐값에 수출을 늘리게 된다. 신흥국은 미국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한편으론 여러 신흥국이 부채를 갚지 못하거나 심각할 정도로 소비를 제약해 사회적 불안이나 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연방은행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도록 이자율 인상을 중단하거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도록 인플레이션과 낮은 이자율을 용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연방은행이 우려하는 것은 글로벌 경착륙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동성을 축소시켜 수요를 극적으로 감소시켜야 한다."
김준영 성균관대 이사장(경제학과 명예교수)

김준영 성균관대 이사장(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숄즈 교수는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지난 5월 출범한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장주의 경제정책과 민간주도 경제(private sector-led economy)의 안착 여부부터 얘기했다.

(김)"윤석렬 정부는 규제 완화와 기업 친화적인 시장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정부 주도의 정책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앞으로 새 정부가 어떤 측면에 역점을 둬야 할까?"
(숄즈)"한국 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혁신을 통한 좋은 성장(good growth)과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동력을 이해하는 데 있을 것이다. 우선 어떤 정책들이 한국의 성장과 혁신을 지연시키고 있는지 깊이 진단해 봐야 한다. 많은 정부가 파이의 성장(사회적 부(富)의 증가, 물적·인적 자본의 성장)은 고민하지 않은 채 파이의 분배에 관심이 많다. 무엇이 파이를 더 크게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열쇠가 될 것이다."

한국을 음습하고 있는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199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Myron Scholes 교수

199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Myron Scholes 교수

(김)"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기업과 민간 부채 문제가 우려된다. 이에 따른 한계 기업과 한계 가계의 증가가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한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야기되는 부작용과 대처 방안은."
(숄즈)"미국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으며, 고민거리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분배와 성장은 서로 상충하기도 한다. 재분배가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방식이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현재 겪고 있는 글로벌 충격과 인플레이션 억제 필요성에 따라 어떤 계층은 다른 계층보다 더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중앙은행의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종식시키는 측면, 경기침체를 불러일으키는 문제, 경제의 특정계층(주택보유자, 임대자, 은퇴자, 저임금 근로자)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를 동시에 야기함으로써 상호 상충하는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충격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는 계층도 있기 때문에, 관련되는 부작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측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각국의 사정을 감안해 대처 방안이 달라질 수 있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하지만 노조의 투쟁 기조는 변화가 없다. 한국 노조의 투쟁적 성향은 전 세계에 알려져 투자 유치의 걸림돌이 되곤 한다.

(김)"지난 정부에선 정부 위주 내지 주도의 경제체제를 꾸려왔다. 이런 기조에서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대외 경제 상황이 맞물려 수출마저 둔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경제회복은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경직적인 노동 시장 제도와 강성노조도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숄즈)"노동공급이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노동조합은 힘이 강해진다. 반면, 노동공급이 증가하거나, (로봇, 원격근무, 자동화 등의)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노동조합의 역할이 줄어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개선된다. 정부 정책이 가치 증대(value enhancing)에 초점을 두고 충분한 기간 지속한다면, 시장에서 이러한 가치 변화가 자산에 자연스레 반영될 것이다." (주:국가의 경쟁력 강화(가치 증대)를 위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개혁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 등과 맞물려 오랜 기간 지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노동개혁을 통한 경쟁력 배양이 자산이 되고, 경제의 체질도 자연스럽게 강화된다는 뜻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 인구 구조 변화,  노동력 공급 문제도 화두였다.

(김)"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가장 낮다. 2021년 말부터 자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적절한 노동력 공급 부족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수급문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교육, 연금 등 각종 사회보험, 정부 재정 상황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득 3만 달러를 넘긴 한국이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공급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숄즈)"지난해 합계 출산율 0.81명을 기록하는 등 한국의 낮은 출산율 문제가 두드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낮은 출산율의 일반적 원인으로는 육아비용의 증가와 자녀 대신 경력을 선택하는 여성이 증가한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낮은 출산율은 곧 GDP의 저성장을 의미한다. 이럴 땐 고령 인구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근로자의 은퇴연령을 늦출 필요가 있다. 은퇴하는 인구의 재취업 및 노동시장 재진입에 관한 고민 역시 동행돼야 한다. 또한 노년층의 사회보장과 연금 혜택을 받는 연령 변화에 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나아가 여성인력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더 많은 여성 근로자가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계속해서 남는 것 역시 노동공급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숄즈 교수는 오는 7일 오전 10시 '미래의 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특별 강연을 한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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