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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역사적 혼란 속 약탈·분실…고국 떠나게 된 우리 문화재를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2011년, 프랑스에서 먼 길을 떠나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이가 있습니다. 약 145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외규장각 의궤’죠. 외규장각이란 강화도 행궁에 설치한 조선왕실의 서고이며, 의궤란 나라에서 치른 온갖 행사에 관한 정보를 보고서처럼 기록한 서책이에요.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죠. 이런 귀한 물건이 왜 프랑스에 있었을까요. 또 어떻게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된 걸까요. 이처럼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는 얼마나 될까요. 국외 소재 문화재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출동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만나는 곳은 보통 국내 박물관·유적지 등이죠. 이와 달리 해외에 나간 우리 문화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토 밖으로 나가 있는 문화재를 국외 소재 문화재라고 해요. 소중한 문화재가 나라를 떠나게 된 사연은 다양한데요. 보통 문화 교류나 구입·교환·기증 등 합법적인 경로를 통합니다. 이와 달리 약탈과 분실, 도난 등 불법적인 수단에 의한 경우도 있어요. 특히 임진왜란·한국전쟁 같은 큰 전쟁이나 외세침략·일제강점 등 우리 민족에게 수난이 이어졌던 19세기 말부터는 우리도 모르는 새 많은 문화재가 불법 반출됐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야외에 있는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의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무찌른 것을 기념하는 승전비다.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됐던 것을 각종 민간단체들의 노력 끝에 남북한 공동으로 반환사업에 나서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6년 원래 있던 함경도 길주로 되돌아갔으며, 이를 기념해 만든 복제비가 세워졌다. 북관대첩비와 포즈를 취한 신소이 학생모델·김예람·홍예원 학생기자(왼쪽부터).

국립고궁박물관 야외에 있는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의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무찌른 것을 기념하는 승전비다.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됐던 것을 각종 민간단체들의 노력 끝에 남북한 공동으로 반환사업에 나서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6년 원래 있던 함경도 길주로 되돌아갔으며, 이를 기념해 만든 복제비가 세워졌다. 북관대첩비와 포즈를 취한 신소이 학생모델·김예람·홍예원 학생기자(왼쪽부터).

그중에는 외규장각 의궤처럼 고국에 돌아온 문화재도 있어요. 이를 환수 문화재라고 하죠.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을 살피기 위해 김예람 학생기자·신소이 학생모델·홍예원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환수 문화재의 여정을 궁금해하는 소중 학생기자단의 가이드는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이 맡았죠.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연구, 환수와 활용을 맡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2년 문화재청 산하 기관으로 설립돼 올해 10주년이 됐습니다. 이에 그동안 많은 노력 끝에 환수한 문화재 중 일부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아 기획전시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으로 선보였어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2022년 1월 1일 기준 국외 소재 문화재는 25개국 769개처 21만4208점에 이릅니다. 일본·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국·캐나다 등 북미 대륙, 유럽·호주 등에 흩어져 있죠. 이는 실태 조사를 통해 박물관·미술관 등에서 공식 확인된 것으로 개인 소장품처럼 미공개된 경우도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가장 많은 문화재 유출 경위는 무엇인지 묻자 “기본적으로는 문화 교류”란 답이 돌아왔죠.

강임산(맨 왼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현재 21만여 점에 달하는 국외 소재 문화재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강임산(맨 왼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현재 21만여 점에 달하는 국외 소재 문화재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옛날 삼국시대에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는 것 배웠을 거예요. 불교를 전해주면서 불상·그림 같은 관련 문화재도 같이 갔죠. 이처럼 오랜 세월 나라 간 교류를 통해 문화재가 오갔습니다. 외국인과의 상거래나 수집·선물·기증을 통해 나라 밖으로 나가기도 했고요. 반면 조선 말기엔 서구 열강이 침략하거나 하면서 그곳에 있는 문화재를 약탈하기도 했어요.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처럼요.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문화재를 빼앗겼죠. 문화 교류와 달리 불법적으로 문화재가 반출된 것으로 확인되면 환수 대상이 됩니다.”
나라 밖 문화재가 전부 환수 대상은 아니라는 설명이에요. 적법한 절차로 정당하게 해외에 나갔다면 현지에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활용합니다. 유출 경위에 따라 불법·부당하게 유출된 것은 돌려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요. 국제법상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고 나라 간 정치·경제·문화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물려 있어 환수하기 쉽지는 않아요.

겸재 정선의 작품 21점이 실린 ‘겸재정선화첩’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2005년 영구대여 방식으로 왜관수도원에 반환했다. 사진은 화첩에 실린 금강내산전도.

겸재 정선의 작품 21점이 실린 ‘겸재정선화첩’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2005년 영구대여 방식으로 왜관수도원에 반환했다. 사진은 화첩에 실린 금강내산전도.

지난 10년간 환수된 우리 문화재는 46건 784점(22년 5월 15일 기준)에 달해요. 이를 포함해 그동안 국내로 돌아온 40여 점의 문화재를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죠. 가장 먼저 소중 학생기자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겸재정선화첩’입니다. 금강내산전도 등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고사인물화 등 21점이 실려 있죠.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초대 총아빠스(대수도원장)였던 노르베르트 베버가 20세기 초 선교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수집한 건데요. 1976년 유준영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독일 유학 시절 수도원의 선교박물관에 전시된 걸 발견하면서 알려졌죠. 이후 왜관수도원의 노력과 두 수도원의 오랜 신뢰 관계에 힘입어 2005년 영구대여 방식으로 반환했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위탁 관리 중이죠.
조선시대에는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은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해 여러 의궤를 만들었습니다. 체계적으로 기록물을 관리했지만,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각종 기록물이 제자리를 잃고 일제의 필요에 따라 불법적으로 반출됐어요. 이를 되찾기 위해 정부와 국회·민간단체 등이 노력해 2010년 한일도서협정이 맺어졌죠.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 및 이토 히로부미가 반출한 의궤 및 규장각 도서 등 총 150종 1205책이 2011년부터 순차적으로 귀환했어요. 그중 보물로 지정된 『영정모사도감의궤』와 『대례의궤』를 전시에서 볼 수 있죠. 2006년 일본에서 돌아온 국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도 함께예요.

영정모사도감의궤(앞쪽)와 대례의궤. 2011년 한일도서협정에 따라 국내로 돌아온 조선왕조의궤 중 일부다.

영정모사도감의궤(앞쪽)와 대례의궤. 2011년 한일도서협정에 따라 국내로 돌아온 조선왕조의궤 중 일부다.

흔히 보는 책과 달리 긴 나뭇조각을 엮은 것도 시선을 끌었습니다.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효명세자빈책봉 죽책)이에요. 대나무를 6장 엮은 6면을 위아래 각각 금동 변철을 달아 이었죠. 글자는 음각으로 파고 금으로 칠했어요. 원래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불탄 것으로 추정됐는데요. 2017년 프랑스에서 경매에 나온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확인해 민간 기부금(라이엇 게임즈 후원)으로 되찾았죠. 라이엇 게임즈가 환수 과정에 도움을 준 ‘백자 이동궁명사각호’‘중화궁인’도 함께 출품됐어요.
“라이엇 게임즈는 외국 게임사인데도 10년째 ‘한국문화유산보호 및 지원’프로젝트를 진행해 약 68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아요. 이런 민간 프로젝트가 많은가요?” 예원 학생기자의 질문에 강 부장은 “문화재를 지키려는 뜻을 세운 단체가 꽤 있다”고 답했죠. “장마·태풍 등 재난 복구할 때 정부에서도 노력하지만 기업·민간단체들도 지원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뜻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화재 환수에 나서고 있어요. 성금 모금도 하고 개인 소장자를 설득해 기증받기도 하죠. 민간에서 함께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기업이나 기관의 후원도 받고요. 재단에선 부족한 예산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민간단체 활동을 뒷받침합니다.”

‘덕혜옹주 당의와 스란치마’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왕실 복식이자 당대 최고 수준의 복식 유물이라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덕혜옹주 당의와 스란치마’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왕실 복식이자 당대 최고 수준의 복식 유물이라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한쪽에는 작은 녹색 상의와 붉은 치마가 걸려있었는데요. 고종의 늦둥이 고명딸 덕혜옹주가 어릴 때 입었던 당의와 스란치마입니다. 당의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예복 상의고 스란치마는 스란이라는 장식용 금박·금직의 단을 단 예복 하의죠. 소규모 국가 의식 때 착용하는 소례복으로,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왕실복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기증했어요. 강 부장이 “12~14세 때 입은 옷”이라며 옆의 사진을 가리키자 예람 학생기자가 “제 또래인데 이렇게 작은 옷을 입었냐”며 깜짝 놀랐죠.
이번 전시로 처음 일반 시민들을 만나는 문화재도 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경매에서 낙찰받은 ‘독서당계회도’죠. 조선시대에는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관료에게 휴가를 줘 독서에 전념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독서당은 이를 위해 중종 12년(1517) 한강 연안 두모포(현재 서울 옥수동)에 세운 건물이죠. 1531년 무렵 한강 동호(東湖·뚝섬에서 옥수동에 이르는 곳) 일대에서 사가제도에 선발된 선비들이 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계회란 문인들의 모임을 뜻해요. 즉 독서당에서 한 모임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죠. 맨 위에 제목, 가운데 그림, 아래엔 참가자 명단으로 3단 구성이 특이하죠. 배경으로 응봉(매봉산)·남산·북한산·도봉산 등도 보이는 등 당시 옥수동 일대 한강 모습이 어땠는지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어요.”

2022년 환수한 ‘독서당계회도’는 16세기 전반 시대양식을 보여주는 실경산수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독서당계회도를 자세히 들여다본 소중 학생기자단.

2022년 환수한 ‘독서당계회도’는 16세기 전반 시대양식을 보여주는 실경산수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독서당계회도를 자세히 들여다본 소중 학생기자단.

돌아온 문화재, 현지에 남은 문화재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즐비한 지금의 한강 모습과 달리 고즈넉한 16세기의 한강을 살펴보던 소이 학생모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문화재를 환수하나요”라고 질문했죠. 강 부장이 전시장 한쪽 벽으로 소중 학생기자단을 이끌었어요. 벽면에는 문화재 환수 과정을 기증과 매입, 국가공조의 세 가지로 나눠 알기 쉽게 풀어놨죠. 빛나는 부분을 손으로 터치하면 영상효과와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국외 문화재는 그 성격과 반출 경위가 복잡한 만큼 환수를 위해서는 문화재의 가치, 소장 국가나 기관의 제도 등 여러 맥락을 고려해 상황에 맞는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먼저 해외 어디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조사하고, 진품 여부와 가치·중요도를 파악하죠. 이후 반출 경위를 확인해요. 소장 기관이나 개인과 협상을 통해 조건을 따져보고 매입·기증 등 환수 방법을 정하게 됩니다. 방금 본 독서당계회도는 경매에서 매입했죠. 함께 전시 중인 나전국화넝쿨무늬합처럼 개인 소장자로부터 매입할 수도 있어요. 덕혜옹주의 당의와 스란치마는 기증받았어요. 개인 혹은 기관이 소장한 것을 윤리적 판단이나 선의를 바탕으로 보내주는 거죠. 불법 반출인 경우에는 관계 당국과 공조해 환수를 추진해요.”

중종계비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오른쪽)와 현종 왕세자책봉 옥인은 2017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반환이 이루어졌다.

중종계비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오른쪽)와 현종 왕세자책봉 옥인은 2017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반환이 이루어졌다.

국가 간 수사공조로 돌아온 문화재의 예로는 어보(御寶)인 중종계비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와 현종 왕세자책봉 옥인이 있습니다. 어보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죠. 금보는 조선 명종 9년(1554) 문정왕후에게 대왕대비로서 ‘성렬(聖烈)’이란 존호를 올리며 만든 것이고 옥인은 효종 2년(1651) 현종을 왕세자로 책봉하며 만든 거예요. 금보는 금속으로 만든 것, 옥인은 옥으로 만든 것입니다.
조선왕실의 의례용 어보는 종묘에 영구 보관되는데요. 200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실태조사 중 금보를 발견하고, 2013년엔 한 미국인이 옥인을 소장한 것을 파악했죠. 그 후 종묘에서 문정왕후 금보와 현종 옥인을 찾아보니 없어 불법 반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청은 미국에 이와 관련한 수사를 요청했고, 2017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반환됐어요. 강 부장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4년간 공조를 통해 환수한 것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전용기에 실려 운반됐다”며 “환수 문화재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돌아온 최초 사례”라고 덧붙였죠.

국외 소재 문화재의 환수 과정을 크게 기증과 매입, 수사의 3가지로 나눠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국외 소재 문화재의 환수 과정을 크게 기증과 매입, 수사의 3가지로 나눠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예람 학생기자가 “어떤 문화재가 외국으로 나갔는지 어떻게 알고 어디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내는지” 궁금해했죠. “외국 박물관·미술관 소장품·전시·책자·논문 등을 비롯해 학자들의 연구 결과,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자료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요. 그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유물을 발견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할 당시 직원들의 얘기에서 힌트를 얻어 서고를 뒤져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냈죠. 계속 조사 범위를 넓혀가다 보니 매년 파악하는 국외 소재 문화재 수가 늘어나고 있어요. 이후 알게 된 사실을 토대로 해당 박물관·미술관에 정식으로 조사를 요청합니다. 허락을 받으면 가서 구체적으로 어떤 유물이 있는지, 어떻게 입수했는지 밝혀내죠. 대부분은 자기들이 소장한 유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조사에 응답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안 된다고 하면 조사를 강제할 순 없어요. 잘 준비해서 설득하려고 노력하죠. 지난 10년간 재단이 조사한 게 4만7000점이 좀 넘습니다.”
전시장에서는 문정왕후 금보와 현종 옥인 외에도 다양한 어보를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죽책 옆에는 덕종 상존호 금보가 놓여 있는데요. 성종 2년(1471) 아버지 덕종에 존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로 1924년 종묘에서 분실된 것을 순종이 다시 제작했는데,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됐죠. 2013년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조사를 통해 고 토마스 스팀슨 여사가 구입해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한 것이 확인됐어요. 문화재청과 우호적인 협력 및 반환을 논의한 미술관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2014년 반환을 결정했습니다. 효종 추상존호 금보도 재미교포 소장자가 도난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고 2019년 대군주보와 함께 기증하면서 2019년 국내로 돌아왔어요.

주요 환수 문화재 소개

주요 환수 문화재 소개

2019년 돌아온 대군주보는 국새입니다. 국새는 왕의 명으로 제작해 법률 및 칙령, 관원 임명문서 등에 사용한 도장이죠. 대군주보는 고종이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벗어나 위상을 높이고자 대군주란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한국전쟁 때 불법 반출됐어요. 한쪽에 과거 소장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W.B. Tom’이 새겨진 채지만 대한제국 이전 고종대 만들어진 국새 중 유일한 유물로,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문화재는 다 중요하겠지만 반드시 환수해야 할 국외 소재 문화재가 따로 있을까요” 소이 학생모델이 질문하자 강 부장은 “구체적으로 뭐다라고 꼽긴 어렵지만 불법 유출된 문화재는 무조건 환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죠. “환수 작업에선 해당 문화재의 가치·중요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판단해요. 특히 어보 등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재는 꼭 환수하려고 노력합니다. 가격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가격 때문에 포기한 유물도 있기는 해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한 예죠. 1950년대 당시 전쟁 직후 나라가 가난한 시기라 구입할 수 없었어요.”

주요 환수 문화재 소개

주요 환수 문화재 소개

왕실 관련 유물이 즐비한 전시장 한쪽에는 작은 책 한 권이 놓여있는데요. 카니시우스 퀴겔겐(한국 이름 구걸근) 신부가 쓴 근대 서양 양봉기술 교재인 『양봉요지』입니다. 서울 성베네딕도회수도원에서 벌을 키우는 구걸근 신부의 사진이 함께 전시됐죠. 강 부장은 “100여 년 전 서양 양봉기술이 국내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는 근대산업 관련 유물”이라며 “한국과 독일의 교류 역사를 보여준다”고 했어요. 『양봉요지』는 한글로 쓰였지만, 소중 학생기자단은 “지렁이 같은 글씨”라며 읽기 어려워했죠. 이러한 감상은 덕온공주가 한글로 쓴 규훈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름다운 궁서체로 쓰였지만 눈에 익지 않아 요즘 글씨체처럼 빠르게 읽지는 못했죠.
전시장 중앙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면피갑 역시 독일에서 환수한 문화재입니다.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서 2017년 확인한 뒤 보존처리 등 지원 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인정한 수도원이 기증한 거예요. 면피갑은 조선 후기 보병들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복이라 흔했을 것 같지만 국내외 소장 사례가 많지 않아 희소성이 높습니다. 옷 안쪽에 가죽을 겹쳐 만든 갑찰을 이어붙이고 바깥엔 금속 조각으로 장식했죠. 복제품을 함께 전시해 그 형태와 기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조선 후기 보병들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면피갑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 측이 기증하며 돌아왔다.

조선 후기 보병들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면피갑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 측이 기증하며 돌아왔다.

예원 학생기자가 “현지에서 우리 문화재가 어떻게 관리되는지도 살피는지” 궁금해하며 “우리나라가 도움을 주는지”도 물어봤어요. “앞서 말했듯 불법 반출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로 해외로 나간 우리 문화재도 많아요. 그런 경우 환수할 수 없죠. 이럴 경우 현지에서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한국의 고유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데 활용합니다. 여러 나라에 우리나라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있을 텐데, 현지에서 우리 문화재를 보다 잘 전시하고 홍보해서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 거죠. 홍보물이나 음성가이드를 만들고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을 꾸미는 것 등 여러 활동을 지원하고, 훼손된 경우 보존 및 복원처리도 돕죠.”
나라 밖 문화재들이 어떻게 나가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사연을 알아보고, 또 현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나라 밖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 “역사를 지키는 일”(소이)이자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예원)이며 “아주 중요한 일”(예람)이라고 했죠. 강 부장은 “여러분 말대로 문화재를 지키는 건 우리의 역사와 미래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며 “국외 소재 문화재뿐 아니라 문화재에 계속 관심을 갖길” 강조했어요. “관심을 가지면 궁금한 게 생기고 궁금증을 풀고 싶어지죠. 인터넷도 찾아보고, 책도 보고, 오늘처럼 문화재 관련 전시도 보고 공감하며 관심을 이어가는 게 중요해요. 문화재 환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 잠깐만이 아니라 계속 소중하게 여기고 잊지 않고 기억해서 함께 지키고 가꾸려 노력하는 사람이 문화재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존한 역사를 미래 후손에게 물려주는 거예요.”

주요 환수 문화재 소개

주요 환수 문화재 소개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잘 몰랐던 국외 소재 문화재에 알게 된 취재였어요. 과거 문화재들의 종류도 많이 배워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덕혜옹주의 옷과 어보, 멋진 그림들과 해시계 등 여러 문화재를 보는 것도 신기했죠.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불법적으로 가지고 간 이야기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앞으로 국외 소재 문화재에 더 관심을 가지고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김예람(경기도 광성드림학교 5) 학생기자

고궁박물관에서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전시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유물은 덕혜옹주의 옷이었어요. 저와 비슷한 나이에 입었던 건데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죠. 당시 제 또래 조상들이 살아온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부장님과 인터뷰하며 문화재 환수 과정에서 무엇보다 반환 작업을 하는 그때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았어요. 우리가 살펴본 환수문화재도 그러한 취지에서 전시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 보여주고요. 이처럼 우리 조상님들의 흔적을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신소이(서울 일원초 4) 학생모델

이번 취재를 통해 해외로 유출된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유출 경위는 다양하지만 특히 전쟁 등 국가적 혼란기에 부당하게 반출된 우리 문화재들은 수난을 겪은 우리 역사만큼이나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유산을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침략의 아픔을 겪지 않도록 국력과 외교력을 키우면 반출된 문화재 환수 추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특히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외국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들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에 감명을 받았어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국외 소재 문화재와 다시 돌아온 우리 문화재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홍예원(경기도 신리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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