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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화목 되찾을 줄 알았다" 코인으로 3억 날린 30대 후회 [2030 '빚투코인' 블랙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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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①코인·주식 폭망, 2030에게 물었다

“가족의 화목을 되찾는 길인 줄 알았다.”
가상자산 붐을 타고 손에 잡힐 듯 했던 대기업 직원 김모(35)씨의 꿈은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부친이 실직한 이후 어두워진 집안 분위기를 살려보고 싶었다”는 김씨는 지난달 26일 서울회생법원(이하 회생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개시 결정을 받았다. 김씨가 신고한 빚은 3억700만원. 법원의 조정에도 김씨는 36개월간 월 400만원씩 갚아내야 지난 5년간 뒷걸음질 친 삶을 출발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

2017년 10월 ‘마통(마이너스통장ㆍ한도대출)’ 1000만원으로 시작한 빚은 은행에서 캐피탈 및 투자증권사로 이어지며 억대로 불어났고 마지막엔 결국 가족들에게도 손을 벌렸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10개 이상의 가상자산에 분산 투자했지만 대세 하락 앞에서 위험은 분산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억원까지 수익이 난 적도 있다는 김씨는 “‘1BTC=1억원’이 될 거라는 말에 현혹돼 처분할 생각을 못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결국 다 털리고 나서야 손절했다”며 “모든 게 잘못됐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28일 회생법원이 ‘개인회생「주식 또는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준칙(이하 준칙)’을 마련한 데 이어 지난 7월14일 금융위원회가 ‘청년 신속채무조정 특례(이하 청년특례)’ 신설을 발표하자 “왜 국가가 빚투(빚 내서 투자)를 책임지느냐” “세대 차별 아니냐”는 등의 반발 여론이 비등했다. 김씨와 같은 개인 회생 신청자의 재산 상태를 가상자산이나 주식의 취득가액이 아닌 시세를 기준으로 파악하겠다는 준칙과 최대 50% 이자 감면 등 청년특례의 골자가 2030세대 빚투족에 대한 특혜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코인ㆍ주식 투자 후 개인회생 신청 사례 54건 분석 

중앙일보는 논란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회생법원이 준칙 마련 과정에서 검토한 코인ㆍ주식 투자와 관련된 2030세대 개인회생 신청 사례 54건을 입수해 분석하고 빚투 끝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2030세대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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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54명의 총 채무액은 ▶5000만원 이하 5명 ▶5000만원~1억원 19명 ▶1억원~1억5000만원 10명 ▶1억5000만원~2억원 8명 ▶2억원 이상 12명으로 나타났다. 총 채무액의 최소는 3300만원, 최다는 4억6880만원이었고, 54명의 채무액 평균은 1억4947만원이었다. 이들은 최근 1년간 평균 7510만원을 빌려 이 중 평균 4863만원(약 64%)을 가상자산ㆍ주식에 투자했다. 이들의 종잣돈 마련 창구는 은행 신용대출에서 시작해 제2금융권, 카드사 대출 등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은 가족ㆍ지인의 쌈짓돈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빚을 더 이상 갚을 수 없을 때 찾게 되는 법원은 빚투의 종착점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6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4만1772건의 개인회생 신청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5.1%(1만8840건)였다. 20대가 6364건(15.2%), 30대는 1만2476건(29.9%)이었다. 가상자산 붐 이전인 2013년 전체(10만5884건)의 44.2%(4만6883건)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개인회생 신청자 중 2030세대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법원이 체감하는 신청 이유가 달라졌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절차 실무를 맡는 회생위원들뿐만 아니라 판사들도 최근 주식과 가상자산 투자 실패가 개인회생 신청의 직접적인 이유인 2030의 수가 크게 늘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의 신분과 투자 동기는 지극히 평범했다. 54명 중 중소기업 회사원이 34명으로 가장 많았고, 비정규직 7명, 대기업 회사원 6명, 공무원 6명, 자영업자 1명 등이었다. 평균 나이는 31.7세였고, 남성이 44명(81.5%)으로 여성 10명(18.5%)보다 많았다.

“본전 찾아야지” “언젠간 오르겠지” 늪 빠진 이유

2급 시각ㆍ청각 장애인인 남모씨(31)씨는 “차별 없는 투자 영역에서 사회의 벽을 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씨는 “장애를 이겨내고 성공하고 싶다”는 결심으로 고교 졸업 후 대구에서 상경해 대기업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한계가 뚜렷했다고 한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해 옮긴 직장에선 승진 문턱에서 미끌어지며 우울증까지 겪었다. 지인의 권유로 2019년 12월 500만원으로 시작한 첫 가상자산 투자는 한때 그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5000만원을 쏟아부은 결과는 이자가 붙어 불어난 8600만원의 빚 뿐이었다.

1억4000만원대 빚을 지고 법원을 찾은 중견기업 직원 이모(25)씨는 “집을 사고 싶었지만 알아볼수록 답이 안 나왔다”며 “가상자산에 올인(all-in)한 사람 대부분의 최종 목표는 ‘내 집 마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빚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 건 “본전은 찾아야지”라는 생각과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는 기대였다. 가상자산에 전재산을 걸었다가 1억원 이상의 빚을 지고 개인회생을 신청한 장모(31)씨는 “(돈을) 잃기만 했으면 안 했을 텐데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하니까 제어가 안됐다”며 “개인회생을 안 했다면 사채에 손을 댔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가상자산이 급상승할 땐 주위에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투자 경험도 없고, 지식도 부족했지만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언젠간 오르겠지’ 싶어 대출을 받아 올인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이 곤두박질 칠 땐 ‘물타기’의 유혹에 빠졌다. ‘물타기’란 구매한 가상자산이나 주식 시세가 하락할 때 평균 매수 단가를 낮추고 손실률을 줄이려는 심리에 따르는 추가 매수 행위다. 6000만원대 빚을 진 중소기업 직원 박모(25)씨는 “곧 오르겠지 싶어서 물을 타고 또 타고 하다가 빚만 계속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정성화 법무법인 대웅 대표변호사는 “코인빚투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생활인”이라며 “주위의 권유나 한순간의 충동적인 판단에서 시작하지만 대출 받아 투자했다가 본전을 잃으면 상실감ㆍ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빚더미에 오르게 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인회생이란

개인회생이란 채무 부담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월급 등 일정 소득이 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제도다. 빚이 재산보다 많고, 정기·지속적 수입이 있다면 회생 절차를 거친 뒤 3~5년간 약속한 금액만큼을 수입 일부로 갚아나가면 나머지 채무는 면책토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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