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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 성폭행 당해 출산, 남편은 "사기 당했다"…혼인 취소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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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아내가 고등학교 시절 성폭행 피해를 입어 임신 및 출산을 한 사실을 결혼 후 알게 된 남편이 “사기를 당했다”며 혼인 취소소송을 제기한 사연이 알려졌다.

최근 YTN 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여성 A씨가 보낸 이런 내용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에 따르면,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7세에 아는 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됐다. 아이가 태어나자 성폭행 가해자이자 아이 아버지는 연락이 끊겼고, 도저히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A씨는 아이를 입양기관에 보냈다. 현재 A씨는 아이와 소식이 끊긴 상황이다.

10년 후 A씨는 현재의 남편 B씨와 만나 결혼했다. A씨는 “부부가 된 이상 서로에게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과거의 아픔을 남편에게 털어놨다”고 말했다.

남편 B씨는 처음에는 깜짝 놀라며 A씨를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A씨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졌고, A씨를 멀리했다.

A씨는 “남편이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당했던 아픔을 얘기하며 나를 문란한 여자로 매도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며, 아예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B씨는 아내 A씨를 상대로 혼인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성폭행‧출산‧교류 단절, 개인 사생활 영역…고지 안 해도 비난 대상이라고 단정 못 해”  

사기로 인한 혼인이란 ‘상대방으로부터 위법한 수단으로 기망을 당했고, 착오에 빠져서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를 말한다.

원칙적으로 혼인 및 출산 경력, 자녀 유무와 수 등은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사전에 고지해야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고지하지 않거나(불고지) 침묵했다고 해서 법원이 모두 ‘사기로 인한 혼인’이라고 판단하고 혼인 취소사유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지난 2016년 판례에 따르면, 대법원은 A씨와 유사한 사례에 대해 “혼인 취소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성년자 시절 아동 성폭력 범죄 피해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 및 출산을 했고, 아이를 입양 보낸 뒤 교류가 단절된 경우에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으로 간주, 반드시 고지를 해야 하는 부분도 아니고, 기망을 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해당 판례를 보면, 대법원은 “당사자가 성장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 성폭력범죄 등의 피해를 당해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하였으나 이후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한 기간 양육이나 교류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면, 출산의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며,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사회 통념상 당사자나 제3자에게 그에 대한 고지를 기대할 수 있다거나 이를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 신의성실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단순히 출산의 경력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민법 제816조 제3호에서 정한 혼인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A씨가 자신의 과거 성폭행 피해 사실과 임신 및 출산, 입양 사실 등을 남편 B씨에게 사전에 밝히지 않은 것은 B씨가 주장하는 혼인 취소사유가 될 수 없다.

안미현 변호사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혼인 취소 사유로써 법적인 부분의 사기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실제 혼인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신뢰관계 속에서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의 과거 경험이 혼인 취소사유가 될 수는 없지만, 더는 혼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부분도 있다”며 “이 부분은 법률 상담을 통해서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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