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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 흑자 행진, 푸틴·시진핑 약점" 눈길 끄는 크루그먼 분석

중앙일보

입력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 2월 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에서 만나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 2월 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에서 만나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되는 러시아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내세우는 강력한 선전 무기이자, 서방의 대러 제재 효력에 의문을 갖게 하는 요소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서방의 제재는 실패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22일자 칼럼에서 러시아가 내세운 거시적 데이터에 대해 "(푸틴 대통령의) 독재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인가요"라며 반문하며, 그것은 오히려 "독재 정권의 약점의 징후"라고 했다. 러시아와 함께 강대국 '독재' 국가인 중국 역시 무역흑자 행진을 벌이고 있는데, 이도 오랫동안 비정상적으로 작동한 중국 경제의 허약한 체질이 드러난 결과라고 주장했다.

크루그먼은 예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러시아의 무역흑자가 급증한 것이야말로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한 결과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에 대해 금수 조치를 했지만, 러시아는 견고한 수출 실적을 유지했다. 또 수출처가 줄어 가격을 다소 할인해 팔았지만, 그보단 공급 부족으로 유가가 급등해 수출액은 급증했다.

반면 러시아의 수입 부문, 특히 주요 산업에 투입되는 부품·원재료 수급 능력은 크게 악화했다. 크루그먼은 최근 러시아에서 항공 부품이 부족해 멀쩡한 항공기를 뜯어 쓰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는 전체 여객기의 80%를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비 문제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러시아의 산업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부품 수입 차질은 모든 종류의 제조업에 타격을 입혔으며, 특히 상반기 자동차 생산은 지난해보다 62% 급감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최대 완성차업체 아브토바즈가 곧 대량 실업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전쟁 후 생산 라인이 멈춘 아브토바즈 이제프스크공장 근로자 3200명 중 대다수는 지난 3월 이후 '일시 해고' 상태였으며, 일부는 임시직으로 일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사측은 최근 모든 직원에게 퇴사를 제안했다. 앞서 막심 소콜로프 아브토바즈 사장은 "제재 압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고용 유지를 위한 포괄적인 조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벤 에니콜로포프 모스크바 신경제대학 교수는 "자동차 부문의 어려움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무기한 휴직으로 처리하는 '숨겨진 실업'에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러시아의 무역흑자는 내막을 들여다보면 푸틴 대통령에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크루그먼은 강조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사는 데 현금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했다.

"中 수요 감소, 전 세계에 이득"
크루그먼은 중국의 무역흑자도 사실은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의 문제는 러시아와 다르다. 크루그먼은 중국의 무역흑자에 대해 "정점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큰 내부 문제의 결과"라고 했다.

그는 중국 경제에서 국민소득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이 중 개인 소비자에 흘러간 부분은 너무 작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빠른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소비자 지출이 여전히 약세를 유지하게 된 이유다. 또 국가는 비생산적인 투자 지출을 늘려 완전 고용을 유지하려 했다. 특히 민간 부채로 뒷받침된 부풀려진 주택 시장에 과도하게 돈이 지출됐다.

일반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이 상황을 중국은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의 주택 시장은 폭락하고 소비자 수요는 더 감소 중이다. 이는 무역흑자가 증각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상은 "허약함의 징조"라고 크루그먼은 지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무역흑자는 공급망 차질을 겪고 있는 나머지 경제권에 이득이 됐다. 그는 중국의 수요 감소는 석유 등 주요 상품의 가격을 억제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덜어내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약점은 우리 모두에게 좋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크루그먼은 러시아·중국의 무역흑자, 즉 수입보다 수출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꼭 독재 국가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아무도 독재정권 지도자에게 그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때 문제는 더 커진다고 덧붙였다. 크루그먼은 러시아 군사력의 한계에 대해 푸틴 대통령에게 누구도 경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시진핑 주석에게 그의 '제로 코로나'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대응은 실패한 모델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은 독재가 행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보다 더 작동하기 때문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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