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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국 ‘반도체 육성법’ 유탄 맞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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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미국의 대응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반도체 산업 육성법’ 제정과 ‘칩4 동맹’ 결성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만 미국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충분히 지어서 미국의 제조 역량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업 유치가 미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칩4 동맹은 미국에 반도체 제조 거점이 어느 정도 안착하기까지 미국이 중심에 서서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는 협의체 성격이 강하다. 아직 칩4 동맹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고, 앞으로 미국 주도로 관련국들과 정부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미 보조금 받으면 중국 투자 막혀
중국공장 비중 큰 삼성·SK 타격
‘칩4 동맹’ 협업 정신으로 풀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미국은 지난 9일 반도체 산업 육성법을 확정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반도체 칩과 과학 법’이다. 반도체 관련 내용만 보면 미국 국내에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에 390억 달러, 연구 및 노동력 개발에 110억 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 모두 520억 달러(약 68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기업에는 25% 세액 공제 혜택을 적용한다.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만의 TSMC·UMC 등이 수혜 대상이다.

그렇지만 문제 조항이 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에서 10년간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을 증설하거나 공장을 신규 건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보조금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분야에서 28나노 미만의 첨단 기술을 중국에서 신규 투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만의 TSMC와 UMC 등의 중국 현지 사업이 해당한다. TSMC는 중국 난징에 16나노미터 공정의 12인치 웨이퍼 파운드리를 운영 중인데 당장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미국 기업 인텔과 마이크론도 각각 청두와 시안에 후공정 공장을 갖고 있어서 마찬가지로 영향받을 상황이다.

한국 기업과 관련된 메모리 반도체와 패키징(후공정)의 중국 투자 규제는 미국 상무부가 향후 별도 기준을 마련한다. 어떤 규제가 담기는가에 따라 한국 기업은 대만기업보다 향후에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만기업들과 달리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많은 메모리 물량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2014년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쑤저우에 반도체 후공정(테스트·패키징) 공장을 보유했다. 세계 낸드플래시의 15%(삼성 생산량의 약 40%)를 생산하고, SK하이닉스는 2006년부터 우시에서 전 세계 D램 생산량의 15%(하이닉스 생산량의 약 50%)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수한 인텔의 낸드 공장은 다롄에 있다. 충칭에는 후공정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은 반도체 소재부터 생산·후공정까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최근까지 설비 증설 및 노후 장비 교체 등 추가 투자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만약 중국에 진출한 한국 반도체 공장의 첨단 장비들을 지속해서 교체하지 못하면 공정의 미세화 진행, 안정적인 램프업(생산력 확대)을 통해 수율을 올리기가 어려워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저사양 제품만 만들게 될 테니 제품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 말은 중국 내 반도체 공장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애플(폭스콘), HP·델(PC) 등 미국 완성품 업체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간단치 않은 문제다.

한국의 칩4 동맹 참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원천기술을 갖고 반도체 설계·제조를 통해 전 세계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중국도 혜택을 받고 있다. 중국은 큰 시장을 무기로 한국의 칩4 동맹 참여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같은 논리로 중국에 있는 반도체공장들의 증설과 신규 투자를 미국이 반대해서도 안 된다. 훌륭한 기술은 산업발전을 통해서 전 세계에 기여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칩4 동맹 참여 예비회담 논의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강력하게 미국에 의견을 전달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칩4 동맹의 협업 정신을 발휘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석 반도체공학회부회장·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