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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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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성공한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을 말하는 걸까. “진정한 지도자라면 필요한 일을 관철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권력을 잃더라도 필요한 일을 해야 하고, 이를 관철한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필자는 지난 201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대담한 적이 있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말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슈뢰더는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다양한 정치인이 모두 좋아한다. 노조가 지지 기반인 사회주의 성향의 독일 사회민주당 수장이 유연한 노동시장을 지향하는 노동개혁, 특히 노조가 강하게 반대하는 정책을 담은 개혁 프로그램 ‘어젠다 2010’을 추진했다.

‘유럽의 병자’ 독일 개혁한 슈뢰더
지지율 집착하면 남미처럼 전락
진정한 지도자는 국익 관철해야

독특한 이력과 철학을 갖춘 슈뢰더의 강한 의지 덕분인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그가 총리에 재임한 기간에 독일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에 빠진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의 체질을 환골탈태하듯 확 바꾸고 제2의 경제 부흥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뢰더는 정치인으로서 재임에 실패하면서 그의 말처럼 정권을 잃었다. 정치인의 인기와 국민의 삶이 늘 한 방향은 아닌 듯하다.

남미엔 다양한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및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부부 대통령,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등이다. 이들이 쫓는 것은 늘 대중적 인기, 즉 지지율이었다.

2000년대 초반 집권했던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퇴임할 때 지지율은 50%로 아르헨티나 역대 퇴임 대통령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의 부인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가 그다음 대통령에 선출됐는데, 부부가 집권한 10여 년은 그야말로 최저임금 연평균 10% 인상, 공무원 수 2배 증가, 큰 폭의 연금 인상, 보편적 자녀수당 신설 등 포퓰리즘의 시대였다.

대통령 지지율과 함께 재정적자 비율도 고공 행진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지출 비율이 2003년 23.5%에서 44.0%로 2배 가까이 높아졌다. 국가 경제를 담보로 대통령의 지지율 욕심만 채운 셈이다. 포퓰리즘 정책의 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에 세금 부담을 지우고, 국유화도 단행했다. 질 좋은 일자리는 사라졌고, 외국인투자도 급감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이런 특징은 아르헨티나만이 아니었고 대부분 포퓰리즘 정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겠지만, 최근까지 한국도 남미 국가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왔다. 급증하는 공무원 수, 낭비적 재정 일자리와 복지 지출 증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이 이뤄졌다. 지난해 말 기준 공무원 수는 115만7000명을 넘어 2016년 말보다 12만7000명이 증가했다. 중앙정부 공무원 인건비는 사상 처음 40조원을 넘겼다. 공공기관 임직원 수도 5년간 10만 명가량 늘었다.

국립대학의 빈 강의실을 돌며 전등불을 끄고 다니는 등 재정으로 만든 어이없는 일자리 사례도 부지기수다. 코로나19가 심각하게 확산하던 상황에서 강성노조가 탈법적 시위를 강행해도 정부는 지지층을 의식한 듯 수수방관하며 탈법적 노사관계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법인세 등 기업의 부담을 늘려 기업환경을 악화시키는 바람에 2017년부터 최근 5년간 한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2944억 달러)가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745억 달러)의 4배를 넘었다. 퇴임하는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기는 기현상을 보면서 남미가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성공한 대통령의 척도가 지지율은 아닐 것이다. 인기에 도움은 안 되더라도 국익을 위해 개혁을 추진하는 용기 있는 리더를 역사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도록 힘을 모을 때다.

안보가 튼튼하고, 세계적인 기업이 앞다퉈 투자하는 나라. 재정을 풀어 만든 임시 일자리가 아닌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국민이 잘사는 나라. 단순하지만 이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성공한 대통령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 매겨질 대통령의 진짜 성적표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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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