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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길] 확 변했네 … 요즘 삼청동 = 청담동 + 인사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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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 볼거리 100여 곳 … 출사 장소 1위

삼청동이 요리라면 경복궁 돌담길을 타고 들어오는 초입 길은 애피타이저죠. 광화문의 동십자각을 살짝 돌면 그림 같은 진입로가 펼쳐집니다. 왼쪽엔 푸른 하늘을 이고 달리는 돌담, 오른쪽에는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쭉 늘어서 있죠.그 사이로 가을이 바닥으로 한 움큼씩 떨어집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말이 있죠. 그래요. 삼청동 일대도 요즘이제철입니다.
5분만 걸으면 메인 코스가 나타나죠. 바로 요즘 삼청동 입니다. 승용차를 타고 돌며 삼청동을 다 훑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삼청동은 걸어봐야 제 맛입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속 길, 그곳에 오밀조밀한 볼거리가 숨어 있습니다.5년 전만 해도 삼청동은 젊은이의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비오는 날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에 더 어울리는 분위기였죠.요즘은 딴판입니다. 디지털카메라를 어깨에 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를 훑는 풍경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사진 동호회 회원이라는 김병진(25·대학생)씨를 만났습니다. 요즘 출사(사진을 찍으러 밖에 나가는 일) 대상지 인기 1위가삼청동이에요. 모던한 세련미와 세월의 흔적, 둘의 묘한 동거가 골목마다 박혀 있거든요. 그야말로 순식간에 떴지요.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에 들어선 가게, 공방, 갤러리, 음식점은 모두 몇 개일까요? 100군데가 훨씬 넘습니다. 골목 골목 빈곳이 없을 정도죠. 영토 확장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높은 언덕을 이에 두고 오랜 세월 그저 이웃 동네이던 삼청동과 가회동마저 마침내 한 핏줄이 됐습니다. 삼청동의 피가 가회동으로, 가회동의 피가 삼청동으로 막힘없이 흘러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삼청동은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강남 청담동+강북 인사동=요즘 삼청동이란 등식은 그래서 나온 거겠죠.

①동화 속 그림 같은 카페 ‘풍차’
②삼청동 초입 진입로.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운치있게 늘어서 있다.
③개성있는 액세서리·옷·핸드백 등을 파는 예쁜 가게 ‘MIA MONGER’.


■쇼핑의 거리

골목 자체가 개성 만점 갤러리

'나만의 물건'을 사고 싶다고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물건이라면 더욱 좋겠다고요? 그럼 삼청동으로 가세요. "몇 번이나 가봤는데" "별 게 없던데…." 그렇다면 당신은 큰 길만 다닌 게지요. 도로변에 골목이 보인다면 주저하지 말고 꺾어 들어가세요. 탄성이 터질 겁니다. "아니, 이런 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네." 이뿐만이 아니죠. 'ㄱ'자로, 혹은 'ㄷ'자로 이리저리 꺾이는 골목은 그 자체로 삼청동의 정수입니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또 어떤가요. 서울에서 기와 지붕이 늘어선 막다른 골목을 만난 적, 별로 없으시지요?

쇼핑을 원한다면 먼저 화개길부터 찾으세요. 삼청파출소를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가면 됩니다. 골목 자체가 갤러리예요. 개성을 뽐내는 가게의 윈도는 한편의 작품이고요. 밖에 서 진열대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맘에 드는 작품을 뜯어보듯 꼼꼼하게 살핍니다.

먼저 눈에 띄는 곳이 '루이엘'입니다. 5년 전 화개길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가게이기도 하죠. 프랑스 유학파인 천순임씨가 직접 디자인한 모자를 파는 곳입니다. 가격은 10만~20만원 정도. 좀 비싼 편이지요? 이세희 숍매니저는 "직접 만든 유럽풍 모자를 살 수 있어 단골 손님이 많다"며 "행인이 거의 없던 이 골목이 짧은 기간에 놀랍도록 발전했다"고 말합니다.

'HYYANG'은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구두 가게입니다. 흰 색으로 가득한 미니멀한 공간에서 진열한 구두만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가게 주인인 이정선(36)씨는 "위트가 있는 구두, 편하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구두"라고 설명합니다. 가격은 20만~30만원대고요.

그 옆에는 쌀집이 있어요. 작고 동그란 간판에 '쌀'이란 글자 하나만 빨갛게 박혀 있네요. 이 골목은 쌀집조차 개성 만점이죠. 주인 안길준(61)씨는 "골목이 너무 멋있게 바뀌니까 쌀집도 깔끔하게 단장을 했다"며 "이 가게도 세를 달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하지만 생업이라 그럴 수는 없는 처지"라고 말합니다. 골목과 접한 아이들 방은 벌써 세를 줬다고 하네요.

독특한 윈도라면 'MJ'S'도 빼놓을 수 없죠. 와인색 외벽 중간에 걸린 윈도가 꽤 이국적입니다. 각종 액세서리와 옷, 구두, 시계 등속을 파는 곳이에요. 주인 성명진(26)씨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직접 골라 온다"고 했습니다. "유럽의 작은 올드타운 같은 분위기가 좋아 삼청동에 가게를 차렸다"고 하네요. 작은 가게지만 주말이면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만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젊은 커플이 대부분이에요." 맞은편에 있는 'dress up at 12:'는 독특한 이름과 붉은 색상이 도발적인 옷가게입니다.

■삼청동이 아니라 사청동

산청·수청·인청 + 문청(산·물·인심 + 문화)

'산청. 수청.인청'. 삼청동이 '삼청동'인 이유를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다'는 뜻이죠. 요즘은 여기 '문청'을 곁들여야겠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중국제가 판치는 인사동에 질려버린 예술가와 문화계 인사들이 빠른 속도로 삼청동에 둥지를 틀고 있거든요.

삼청동 토박이인 신영부동산 김봉완(75) 사장은 "삼청동에서 조그마한 공방이나 손바닥만 한 갤러리를 연 사람도 알고 보면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이 많다"며 "이름난 대학교의 미대 학장이나 저명한 화백 등 소위 '예술가'란 명함을 가진 이들이 대거 이곳으로 옮겨오는 추세"라고 합니다. 오히려 매물이 바닥나 거래가 힘든 실정이랍니다. 큰길가는 평당 4000만원, 골목은 평당 2500만원, 한옥촌은 평당 1500만~2000만원까지 올랐다네요.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배 이상 값이 뛰어오른 셈이죠.

그래서일까요. 삼청동은 다릅니다. 맛만 있는 맛집, 멋만 있는 멋집이 아닙니다. 화개길의 천연 염색 옷가게 '목가' 앞에는 이런저런 꽃과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한지에 먹으로 쓴 쪽지 한 장이 화분에 걸려 있네요.

'후미진 골목- / 어수선한 시절에 / 그래도 작은 풀꽃 어우러지듯 /

정겹게 살아야지요 / 자꾸 슬쩍하는 꽃 도둑님! / 눈으로만…'

알고 보니 가게 앞 화분을 훔쳐가는 '꽃 도둑'에게 보내는 주인의 편지네요. 이런 운치가 바로 삼청동의 '혼'입니다.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국화차를 내놓는 주인 김남진씨는 "가게에서 옷뿐 아니라 문화적인 고집도 함께 팔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곳은 이미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됐습니다. 주인이 지리산으로 염색 재료를 구하러 갈 때도 열쇠를 놓고 갑니다. 누구든 사랑방을 이용하라는 거죠. 이런 '목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일본인 이시구로 기요미(石黑淸美.여.30)는 "일본 교토에도 전통 가옥은 있다. 그러나 삼청동처럼 모던한 아름다움과 고전미를 한곳에서 맛보긴 어렵다"고 말합니다. 삼청동에 둥지를 튼 이들의 이런 문화적인 고집이 동네를 떠받치고 있네요.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① 떡볶이집 먹쉬돈나

'먹고 쉬고 돈내고 나가라'. 정독도서관 입구 오래된 이발관 옆에 있는 즉석 떡볶이집. 1시간 이상 줄 서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오징어와 홍합 등이 푸짐하게 들어간 해물 떡볶이를 다 먹으면 김을 뿌리고 밥을 볶아준다. 2인분 이상만 주문 받는다. 떡볶이(1인분) 2500~3000원, 오전 11시~오후 8시, 02-723-8089.

② 프랑스풍 씨푸드 아 미디

산뜻한 건물이 인상적인 프랑스풍 씨푸드 전문점이다. 마르세유의 지방 음식인 부야베스(일종의 해물탕)를 맛볼 수 있다. 프로방스 풍의 인테리어도 매력적이다. 메뉴판은 따로 없다. 2주에 한 번씩 새로운 메뉴가 보드에 오른다. 메뉴는 주로 코스로 제공된다. 아미디 코스 3만원, 낮 12시~오후 3시30분 (주문은 2시30분까지), 오후 6시~10시30분 (주문은 9시까지), 02-736-8667.

③ 갤러리 레스토랑 쿡앤하임

한옥의 뼈대를 그대로 살린 갤러리의 구조가 정겹다. 자연주의 가정식 요리를 고집하는 갤러리 안의 레스토랑이다. 수제 햄버거가 일품이다. '웰빙 햄버거'란 말처럼 건강 빵인 포카치아를 직접 구워 사용한다. 햄버거 6500~1만5000원, 햄버거 스테이크 1만9000~2만1000원, 02-733-1109.

④ 주름옷 전문 매장 가회갤러리

이름은 갤러리지만 내부는 옷가게다. 명품 스타일을 카피한 주름옷 전문 매장. 독특한 색상에다 물세탁 등 옷관리도 편해 찾는 이들이 많다. 가게 구석에 손님 대접용으로 마련한 다기가 정겹다. 상의 티셔츠 6만~12만원, 롱재킷 32만원, 오전 10시30분~오후 7시, 02-741-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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