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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석탄’ 탓 생계 잃은 탄광촌·발전소 주민들 배려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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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23면

이현석의 ‘소설의 곁’

이현석 칼럼

이현석 칼럼

광물자원통계포털 기준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탄광은 네 곳이다. 탄광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중이지만 일터의 위험인자인 탄분진, 결정형 유리규산, 디젤엔진연소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이 남긴 병은 오늘도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폐암으로, 탄광에서 오래 일했던 노인이 진단 이후 업무관련성 상담을 받으러 오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들이 탄광에서 일했던 부서도 다양하다. ‘광부’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습, 즉 선산부와 후산부로 조를 짜서 석탄을 캐는 채탄부부터, 바위를 뚫는 착암기술자, 다이너마이트로 암석을 부수는 발파기술자, 탄맥을 찾아 들어가는 굴진부, 석탄을 갱도에서 가지고 나오는 운반부, 동발목 등 갱목을 조달하는 임무부 등 여러 직군의 직업력을 청취하다보면 그 시절 탄광촌의 모습이 선연히 눈에 그려진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직군은 선탄부다. 선탄 작업이란 갱내에서 석탄이 나오면 저탄장으로 보내기 전에 괴탄과 분탄을 분류하고 폐석 등 이물질을 솎아내는 작업이다. 갱 바로 바깥에 있는 선탄작업장은 ‘부정 탄다’는 이유로 여성을 갱내에 들이지 않는 미신이 팽배했던 탄광촌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일터였다. 그만큼 여성들 간의 취업 경쟁도 치열했는데 이런 경쟁률을 뚫고 선탄부가 되기 위해선 중요한 조건이 요구되었다. 그것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갱내에서 재해를 당해 사망하거나 노동능력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가족의 죽음과 중대재해가 취업 조건이 되었던 산업화 초기를 되새김질해야만 할 때, 암 진단을 받고 이 자리까지 온 사람들만큼이나 결코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었을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경험해보지 못한 살풍경이 이런 식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나면 하나의 소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강의 첫 번째 장편소설 『검은 사슴』(문학동네, 1998)은 잡지사 기자인 ‘인영’에게 후배 ‘명윤’이 사라진 ‘의선’을 찾으러 가자고 부탁하면서 시작한다. 사라진 의선은 인영이 일했던 잡지사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있던 회사의 말단 사원이었다. 우연히 인영을 지하철에서 만난 의선은 갈 곳이 없다 하고, 인영은 그런 의선을 자취집에 재워준다. 얼마 후 의선이 벌거벗은 채 거리를 질주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날 밤, 인영은 자취집 앞에 서있는 의선을 발견하면서 둘의 동거가 시작된다. 인영의 후배 명윤은 한때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지금은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 그가 인영의 집에 잠시 들렀다가 의선을 보고는 사랑에 빠지게 되나 어느 날 의선은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의선을 찾으며 의선이 했던 말을 곱씹던 명윤은 의선의 고향이 탄광촌인 황곡이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명윤의 추적에 동행하기로 한 인영은 황곡의 광부를 찍어 사진첩을 펴낸 적이 있는 사진작가 ‘장’을 인터뷰한다는 명분으로 회사에서 출장을 허가받는다.

소설 제목인 ‘검은 사슴’은 황곡에서 구전되는 전설이다. 작가가 중국 설화를 변용했다고 밝힌 이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갱도 안에는 검은 사슴이 산다. 개체 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만 이 동물은 늘 혼자 지낸다. 검은 사슴에게는 공통적으로 한 번이라도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갱내에서 마주한 광부들에게 소원을 말하지만 광부들은 동물을 희롱하며 뿔을 자르고 이빨을 뽑는다. 결국 캄캄한 암반 사이를 기어 다니면서 흐느끼다가 숨이 넘어갈 때가 되면 피와 눈물로 살이 다 빠져나가 들쥐 새끼만한 크기로 쭈그러든다. 운 좋게 갱도 밖으로 나간 개체 또한 햇빛을 보는 즉시 녹아내려 살쾡이의 먹이가 되고 만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검은 사슴’은 고통 받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일텐데 소설을 통해 차츰차츰 밝혀지는 인영과 명윤, 의선과 장, 이 네 등장인물의 운명 또한 전설 속 검은 사슴과 다르지 않다. 애초에 상처 입은 검은 사슴인 의선을 찾아 떠난 길 위에서 또 다른 검은 사슴인 장을 만나고, 그와 부딪히며 헤매는 가운데 인영과 명윤도 내밀히 감춰두었던 각자의 깊은 상실을 직면하게 된다.

제 고통만으로도 버거운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어떻게 헤아릴 수 있는가. 소설이 집요하게 던지는 이 질문은 전설과 설화와 탄광촌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맞물린다. 구시대의 유물로 잊혀져가는 배경 탓인지, 네 사람이 품은 내력이 고스란히 육박해오는 탓인지, 소설은 처음 발간된 1990년대 후반보다 더욱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명윤이 유년을 보낸 서인천의 공장에서 메케하게 뿜어져 나와 창틀에 검게 쌓였던 탄분진을 마주하고 나면 이것이 2022년 현재에도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게 된다. 비의와 비감으로 가득한 소설 속에 녹아들었던 마음은 그렇게 스산하게 깨어난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업무상 이유로 충청남도의 몇몇 석탄화력발전소를 오갔다. 국내 화력발전소 59기 중 절반인 29기가 충남 지역에 있는데, 이들 발전소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가급’ 보안시설로 충남 전역 전기사용량의 226%를 생산한다. 기후위기 충남행동의 ‘비수도권 지역에 발전소를 집중해 생산지와 소비자를 나누는 수도권 중심의 기후 부정의’라는 표현은 이러한 지리적 편재와 그에 따른 불공정을 정확히 지적한다. 석탄화력의 환경 영향도 만만치 않아, 현재 발전소 옥외시설을 실내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임에도 여전히 검댕이 묻을까봐 창밖에 빨래를 널지 못한다는 지역주민의 말을 들은 적도 여러 번 있다.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지금, 탈석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여야 정치권이 친원전과 탈원전으로 나뉘어 정쟁을 하고 있음에도 두 세력 공히 전제로 삼는 것 역시 탈석탄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난 수십 년간 석탄화력을 중심으로 지역경제가 재편된 상황에서 적지 않은 지역민이 생계와 고용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지난 2020년 7월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탄소배출 감축에 따른 위험도가 가장 큰 지자체는 충남 당진, 충남 보령, 충남 태안 순이었다. 반대로 탈석탄 기조의 영향을 가장 받지 않을 지자체는 서울 서초구, 서울 강남구, 서울 중구 순이었다. 산업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지속되는 불평등을 두고도 “꼬우면 서울 살든가” 같은 조롱조 반응이 온라인에 팽배하는 지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의로운 이행을 유도함과 동시에 지금껏 발전 산업을 지탱해온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정치권이 중지를 모아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현석 소설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데뷔했다.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집으로 『다른 세계에서도』가 있다. 본업은 의사로 현재 공업도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산업재해 및 업무관련성 질환을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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