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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문화산업, 무분별한 인종 차별 콘텐트 삼가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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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27면

이현석의 ‘소설의 곁’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아 ‘수리남’을 시청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앨버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경제·국제협력 담당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나라를 마약이나 거래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형편없이 묘사했다”고 분노를 표하며 후속 조치를 예고했을 정도니 모르는 게 이상하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인구 60만 규모의 남미 국가가 극동의 한 분단국가에서 만든 드라마에 배경으로 나온다고 해서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나. 우리는 실제 수리남이 어떠한 지를 두고 왈가불가하는 대신, ‘수리남’과 같은 한국 드라마를 이제는 전 세계가 동시에 시청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매체가 다변화되고 접속이 쉬워지면서 한국문화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문제도 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한국 코미디·예능 프로그램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던 흑인 분장(블랙페이스)이 흑인 커뮤니티에서 도마에 올랐다.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응하고자 동남아시아 K팝 팬덤 사이에서는 #리사를 존중하라(#RespectLisa)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국내 포털사이트 기사에 베스트 댓글로 고정된 “화장 했을 땐 러시아 엘프 같았는데 화장 지우니 그냥 태국 여자네”라는 한 네티즌이 작성한 글에서 비롯됐다.

한국문화산업의 산물은 기술혁신으로 인해 더 이상 국경 내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국내 제작자와 소비자의 인식은 여전히 국경 내에서 안일하게 소구하던 시절에 대부분 머물러 있다. 그런데 문화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인구집단의 대오각성만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이러저러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면 “뭐? ‘내’가 문제라고?”라며 멱살부터 쥐고 보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랜 시간 이미 다인종과 접촉해온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이제서야 동시적 접속을 체감하기 시작한 국내거주자에게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유색인종 간의 반목을 피부로 느껴야 했던 한국계 미국인의 소설에 주목해본다. 스테프 차의 장편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이나경 옮김, 황금가지, 2021)는 라타샤 할린스 살해사건, 일명 ‘두순자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1992년 LA폭동 직전과 2020년 조지 플루이드 사망사건 추모시위 직전을 교차 서술한다.

소설은 1991년 3월,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가게에서 시작한다. 15세 흑인여성 에이바 메슈스는 우유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남동생 숀과 함께 그곳에 왔다. 에이바는 자신을 주시하는 중년 한인여성 한정자의 의심어린 시선이 못마땅하다. 보란 듯이 셔츠 안에 우유를 감추는 장난을 치자 계산대에 있던 한정자는 에이바의 멱살을 움켜쥔다. 이에 에이바가 한정자의 얼굴을 수차례 때린 후 가게를 떠나려는데 계산대 뒤에 쓰려져있던 한정자가 총기를 쥐고 일어나 에이바의 뒤통수를 쏜다. 에이바는 숀이 지켜보는 앞에서 즉사한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2019년 8월, ‘이본’으로 이름을 바꾼 채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던 한정자는 둘째 딸 그레이스가 운영하는 약국 앞에서 괴한에게 총격을 당한다. 에이바 살해사건 이후 태어난 그레이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과거 흑인사회의 공분을 샀던 그 사건의 범인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한정자를 저격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레이스는 에이바의 동생 숀을 뒤늦게 찾아간다. 의심을 해서가 아니라, 사과하기 위해서다. 그레이스를 탐탁지 않게 맞는 숀은 이제 중년남성이 되었다. 누나를 눈앞에서 잃고 방황하다 갱단 일원이 되어 감옥에도 다녀왔다. 이제는 이삿짐센터 직원이 되어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로서는 그레이스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 병실에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그레이스의 행위가 기만적인 자기 위안에 불과해보일 뿐이다.

그레이스와 숀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 소설은 한정자 저격범을 추적하는 한편, 한정자를 집행유예로 풀어준 미국 사법체계의 모순을 파고든다. 또한 유색인종 사이의 갈등과 더불어 한인 가족과 흑인 가족의 문화적 면모를 세밀하게 조망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미덕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애환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범소수자’로 정체성을 구축해온 한인 사회가 얼마든지 가해 집단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외려 이 사실을 엄정하게 드러냄으로써 소설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는 화해의 단초를 제공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작가가 쉬운 길로 가지 않기 위해, 즉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창작의 자유를 저해하는 족쇄로 치부하는 경향이 거세어지는 요즘, 나는 브라질 도시계획가 제이미 레르네르를 자주 떠올린다. 레르네르는 1970년대부터 구리찌바 시장을 역임하면서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우리도 지금 이용하는 버스환승제다. 레르네르와 시정개발자들은 ‘버스환승’이라는 획기적인 개념을 생각해냈지만 우리나라처럼 전자 단말기 등을 보급하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철제 튜브형 버스정류장을 통한 물리적 환승 시스템이었다. 레르네르는 한 강연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산 끝자리에서 0을 지워보라. 상상력은 10배가 될 것이다. 거기서 0을 한 번 더 지워보라. 상상력은 100배가 될 것이다.” 어떤 제약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족쇄이기는커녕 상상력의 배지가 된다. 그런 배지에서 나온 상상력이야 말로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데려가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현석 소설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 장편소설 『덕다이브』 등을 썼다.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본업은 의사로 사업장 보건관리 및 업무관련성 질환을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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