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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김학의 사건에서 더 봐야 할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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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김학의’란 세 글자는 대부분에게 이렇게 각인돼 있을 것이다. 성 접대를 받은 그를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차원에서 제대로 수사를 안 해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성찰할 게 적지 않다. 박근혜·문재인 정권의 다양한 인물의 동기, 그에 따른 행위로 인해 대단히 복잡미묘하게 전개되어서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만 아닌 #검증 실패에 검경 갈등도 맞물려 #대통령들의 의지가 사건 뒤틀기도

우선 박근혜 정권 시기의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차관을 법무차관으로 낙점했을 때 민정수석실에선 부정적이었다. 동영상 소문도 있었다. 이 정도면 안 시켜야 했다고 여기겠지만 ‘사후 확신’일 수 있다. 대통령실에서 인사 업무를 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평소 음해성 정보가 워낙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아예 보지 않았다”던 사람도 있다. 그저 소문 정도론 대통령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을 것이다. 민정수석실에선 동영상을 구하려 뛰었으나 실패했다. 결국 차관으로 임명됐다.

묘한 건 당시 경찰을 관장하던 정무수석실에선 알았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선의 몇몇 경찰은 내용을 알고 있었고 언제든 동영상도 확보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하던 경찰에게도 보고됐다는 진술도 있다.

그래서 이런 가설이 있다. 혹여 검경 갈등과 경쟁심이 검찰 고위직의 일탈 정도일 수 있는 사건을 정권 차원의 스캔들로 키운 게 아니냐고 말이다. 실제 당시 민정수석은 “일부 경찰대 출신들끼리 김 전 차관 정보를 입수,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살벌한 관계를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도 아닌 듯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그리 보진 않은 것 같다. 민정수석실만 풍비박산 났다. 그중 한 명은 아예 진영을 갈아탔다(조응천 민주당 의원). 보고받은 사실을 부인하는 정무수석실의 경찰은 승진을 거듭했고 나중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11월 1심 재판애서 무죄 선고를 받고 귀가하는 모습. [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11월 1심 재판애서 무죄 선고를 받고 귀가하는 모습. [뉴스1]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귀를 더 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입증 시간을 더 줬더라면, 경찰에게도 물었더라면, 검경의 미묘한 갈등이 정보에 미치는 영향을 감지했더라면…. 정권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결국 리더의 판단과 결정, 고집이 참모의 제대로 된 조력을 막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김학의 사건이 극적이어서 그렇지, 다른 권력자들에게도 얼마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오류를 줄이기 위해선 반론에 열려 있고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아는 리더를 찾는 편이 더 좋다. 그런 리더가 결단력 있게 판단을 내린다면, 그 시점은 판단 과정의 처음이 아니라 끝”(『노이즈』)이란 조언이 가능하겠다.

또 다른 생각거리는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인물은 어떻게 해서든 단죄해야 하는가”다. 이른바 '적법 절차(due process)' 논란이다.

김학의 사건은 여러 번 출렁였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과거사위의 일원이었던 박준영 변호사는 이렇게 정리했다. “고위공직자의 일탈을 제때 단죄하지 못한 법 집행의 불공정성이 본질이다. 동시에 정치권과 시민단체, 언론이 입맛대로 사건을 이용했다. 윤중천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는 미흡했다. 유력 인사로 이어지는 데 대한 부담을 느꼈던 듯하다. 여성들에 대한 성 착취가 있었다. 하지만 성폭력 진술에는 문제가 있었다. 경찰이 성폭력 진술을 성급하게 믿은 건 잘못이다. 수사를 안 해 뇌물로 처벌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직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았을 수 있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알다시피 문재인 정권은 이 사건을 불쏘시개로 삼아 검찰 개혁, 더 나아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의 명분으로 삼았다. 문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가 있었고 일부 검찰에 의한 ‘불법 출국금지’ ‘허위 면담 보고서 작성’ 등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있었다. 검찰이 잘못했지만, 검찰만 잘못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권력의 개입은 사건을 크게 뒤틀었다.

지금 보면 성찰해야 할 당사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검찰의 흑역사’로 소비된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교훈을 얻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