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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시각각

민주당은 안녕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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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Chief 에디터

신용호 Chief 에디터

 얼마 전 오랫동안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란 분위기 속에서 당헌 80조 개정 문제로 사당화 논란이 불거진 후였다. 당헌 80조는 대표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직무를 정지하는 조항이다. 결국 절충안을 택하긴 했지만 당시엔 이재명 후보의 기소를 우려한 강성 지지층인 '개혁의 딸'(개딸)을 중심으로 개정 요구가 빗발쳤다.
 다들 당 걱정이 깊었다. 한 인사가 "이 후보가 대표가 되면 개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텐데 아마 되자마자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의미의 비하어)들을 걷어내야 한다는 살생부가 당원 청원 시스템에 올라오지 않겠어요. 그럼 총선 앞두고 분당이겠네요. 분당"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인사는 "지금 당이 그 수순으로 가고 있잖아. 친문과 비명계가 그냥 당하기만 하겠어. 근데 이게 무슨 꼴인지…"라며 한탄했다. 과연 민주당이 거기까지 갈 것인가. 정당의 금기어 '분당'이 쉬운 건 아니라지만 이런 말이 어렵잖게 오가는 게 민주당의 현주소다.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169명 의원 중 절반 이상이 '이재명 체제'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는 게 여러 의원의 진단이다. 친문계의 한 재선 의원은 "우리 당 의원 100명 이상은 이 후보의 독주에 대해 걱정이 크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중진 인사는 "당권을 잡는다고 신이 난 의원들을 제외하면 다수의 절망감이 깊다"며 "그 절망감은 의원 수십 명이 의견을 모아도 개딸들의 주장에 밀리는 현실 때문에 나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저토록 독주하는 건 윤석열 정권의 난맥상이 개딸들을 더 뭉치게 자극하는 데다 비명계의 대안 부재로 쏠림 현상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투표율을 보면 일반 당원의 참여도 저조하다"고 설명한다.

일방으로 치닫는 이재명의 독주 #견제할 대안 없는 비명계의 무능 #초강성 정당의 미래가 위태로워

 이 후보의 독주가 낳을 민주당은 개딸들이 목소리를 내면 강성 지도부가 호응하는 구조가 일상화할 가능성이 크다. 개딸들은 이미 당원 청원 게시판을 점령해 이재명 시대에서의 득세를 예고하고 있다. 실제 지금도 게시판에는 '당헌 80조 개정' 요구 외에도 '대선 해당 행위자 처벌' '박용진 후보 자격 박탈' 등 강성 요구들이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 후보도 이에 호응하듯 주요 현안을 당원이 결정하는 '당원 투표 일상화' 방안을 내놨다. 욕하고 싶은 의원을 비난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도 만들 작정이다. 여기에 최고위원들까지 친명계가 대세를 이루게 되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강경파의 세상이 된다. 이 후보는 직접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개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그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 후보는 이미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와 전당대회 출마 과정에서 당보다 자신만을 위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인심을 크게 잃지 않았나.
 '이재명의 민주당'은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재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딸들을 비롯한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높을수록 합리적 선택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한술 더 떠 탄핵도, 특검도 당원 투표로 결정하겠다는데 그 대목에선 아연실색한다. 이미 조국 사태와 검수완박에서 보았듯 강경파의 득세로 당심이 민심과 멀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강경파의 득세는 곧 오만과 독선을 의미한다. 그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지 지난 세 차례의 패배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당내 한 소장파는 "이 후보의  직접민주주의는 위험해 보인다. 강경 지지층이 하겠다면 지도자가 거기에 편승하겠다는 건데, 윤 정권이 제대로 정비라도 하는 날엔 바로 당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민주당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초유의 분란으로 시선이 여권으로 쏠린 사이 민주당은 과연 안녕한 길로 가고 있는가. 일방으로 치닫는 '이재명의 독주'도 위태롭지만 이를 견제할 세력조차 없는 건 더 뼈아파 보인다. 어쩌다 이리 됐는가. 견제 없는 초강성은 언제나 위험하다. 미래가 뿌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