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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원전 3기 연장"…'완고한 탈원전' 독일 무너뜨린 이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단계적 탈핵’을 완성하려던 독일이 원자력발전소 3곳의 가동을 연장할 방침이라고 1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확고한 탈핵 기조를 유지해온 독일이 이를 벗어난 결정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WSJ은 전했다.

현재 독일에서 가동 중인 마지막 원전 3기의 모습.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자르 2호기,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엠스란트 원전. EPA‧AP=연합뉴스‧뉴시스

현재 독일에서 가동 중인 마지막 원전 3기의 모습.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자르 2호기,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엠스란트 원전. EPA‧AP=연합뉴스‧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연장 가동은 아직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내각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감축에 따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세부사항을 조정 중이다. 공식 발표는 몇 주 내로 나올 에너지 수요 평가 보고서 등이 발간된 이후에 이뤄질 수 있다고 WSJ은 전했다.

현재 독일에 남은 원전은 남부 바이에른주(州)에 위치한 이자르 2호기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네카르베스타임 2호기, 니더작센주의 엠슬란트로 독일 전체 전력의 약 6%를 생산한다.

독일의 ‘탈원전’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이 연립정부(연정) 구성에 성공하며 ‘탈원전’을 연정 합의서에 명시했으며, 이후 2000년부터 원전 사업자와 협상을 진행해 신규원전 건설 중단과 2022년까지 원전 운영 기간 제한에 합의했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전국적 원전 반대 집회가 이어지며, 탈핵은 독일의 사회 보편가치로 자리 잡았다. 도이치벨레는 “독일 내에서 원전 수명 연장을 주장하는 것의 정치적 대가는 거의 무한(almost infinity)에 가깝다”고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1주년을 맞아 지난 2012년 독일 잘츠기터 인근에서 원전 가동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 AP=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사태 1주년을 맞아 지난 2012년 독일 잘츠기터 인근에서 원전 가동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 AP=연합뉴스

그러나 WSJ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했던 유럽, 특히 독일의 정치 지형을 흔들어놨다고 보도했다. 독일 관리들은 WSJ에 “독일은 가스 부족에 직면했고 원자로는 올해 이후에도 안전하게 가동할 수 있다”며 “일시적 수명 연장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숄츠 총리도 이달 초 “(원전 3곳의) 가동을 연장하는 건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탈핵에 가장 적극적인 녹색당 일각에서도 원전 수명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녹색당 고위 인사인 루드비히 하르트만은 “전력 부족의 위기가 있다면 몇 개월 정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의 여론조사기관 포르자에 따르면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 국민의 여론이 꾸준히 돌아서 현재 국민 4분의 3이 원전 수명 연장에 찬성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한 추가 대책을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한 추가 대책을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연장 기간에 대해선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가동 연장은 몇 개월 수준일 것”이라고 했지만,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보수 성향의 자유민주당(FDP) 측은 “2024년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독일이 장기 계획에 따라 원전을 감축해온 만큼 새 연료봉 조달과 안전 관련 보험 문제, 의회를 통한 법 개정도 필요한 상황이다.

독일 경제부 대변인은 정부가 남은 원전 3곳의 수명 연장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부인했다. 또 이는 독일의 전력 수요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결과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환경단체는 정부가 원전 가동을 연장할 경우 법에 따른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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