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는 오보였다, 그럼에도 대단한 이유 [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입력 2022.08.14 05:00

업데이트 2022.08.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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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국산 전투기인 KF-21 보라매가 최초 비행에 성공했다. 당시 모든 매체는 ‘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이라고 소개했다. 기자 역시 그렇게 썼다.

국산 4.5세대 이상 초음속 첨단 전투기 KF-21 보라매가 2022년 7월19일 경남 사천 소재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이날 최초 비행에 성공했다. 방위사업청

국산 4.5세대 이상 초음속 첨단 전투기 KF-21 보라매가 2022년 7월19일 경남 사천 소재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이날 최초 비행에 성공했다. 방위사업청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이라는 기사, 사실일까?’란 블로그를 보고 ‘아차’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티즌이 제기한 내용이 맞다. KF-21은 세계에서 8번째 초음속 전투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KF-21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초음속기는 140종

자기반성부터 해보자.

2021년 4월 1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 출고식. 청와대사진기자단

2021년 4월 1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 출고식. 청와대사진기자단

7월 19일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오후 3시 41분 ‘국산 전투기 ‘KF-21’ 처음 날아올랐다’라는 연합뉴스 속보가 떴다. 당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상 상황 때문에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날이 좋아지면서 비행이 결정됐다고 한다.

바로 기사 준비에 들어갔다. 첫 시험비행 성공에 대한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전 보도자료 중 틀린 것을 참고한 게 패착이었다. 문제의 보도자료는 지난해 4월 9일 열린 KF-21 시제 1호기 출고식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방위사업청은 보도자료에서 KF-21에 대해 “세계에서 8번째로 개발 중인 4.5세대 이상 첨단 초음속 전투기”라면서 “(현재 4.5세대 이상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스웨덴, (유럽) 공동개발(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스페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도 우리 손으로 만든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갖게 됐다”며 “세계 여덟 번째 쾌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KF-21의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 독자 개발 국가가 될 전망”이라고 적었다.

‘8번째 4.5세대 이상 첨단 초음속 전투기’(방사청)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며, ‘세계 8번째 첨단 초음속 전투기’(문 전 대통령)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4.5세대 이상’이나 ‘첨단’을 빼고 ‘초음속’이라던 KAI는 틀렸다.

그리고 기자는 하필 KAI 보도자료를 참고했다.

소리의 속도(마하 1=시속 약 1224㎞)보다 빨리 나는 항공기는 지금까지 140종이 나왔다. 전투기 외 공격기ㆍ폭격기ㆍ여객기ㆍ정찰기ㆍ실험기를 합한 숫자며, 다른 나라의 기종을 라이선스 생산한 것도 포함됐다.

개발 국가만 하더라도,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미국ㆍ러시아(소련)ㆍ중국ㆍ프랑스ㆍ영국 등 강대국들 외에도 더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ㆍ대만ㆍ이란ㆍ이스라엘ㆍ이집트ㆍ인도ㆍ캐나다 등 ‘마이너리그’ 7개국(가나다순)이다.

자주국방 꿈꾸며 초음속 전투기 개발한 이집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트기의 시대가 열렸다. 빠른 속도는 전투기에겐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대국들은 초음속 전투기 개발 경쟁에 들어섰다. 미국의 F-100 수퍼세이버(시속 1390㎞)가 1953년 5월 25일 음속을 처음 넘었다.

이집트의 국산 초음속 전투기인 HA-300이 피라미드 위를 날고 있다.

이집트의 국산 초음속 전투기인 HA-300이 피라미드 위를 날고 있다.

그런데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도 초음속 전투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집트는 64년 초음속 전투기 HA-300의 최초 비행에 성공했다. 최고 속도는 마하 1.7. 스페인의 히스파노가 개발 중인 HA-300이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자 이집트가 프로젝트를 인수했다. 인도도 자금을 지원하면서 개발에 동참했다.

빌리 메서슈미트 등 독일(당시 서독) 기술진이 HA-300 개발을 주도했다. 메서슈미트는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명작 전투기인 Bf 109를 만든 거장이었다.

김민석 에비에이션 위크 한국 특파원은 “이집트는 자주국방과 항공 산업 발전이라는 목표를 갖고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HA-300은 시제기 3대만 만드는 데 그쳤다. 69년 5월 프로젝트가 종료했다. 이스라엘의 정보부인 모사드가 독일 기술진을 위협해 이집트를 떠나게 한 영향도 있었다.

김민석 특파원은 “이집트는 기술과 자금이 달려 HA-300의 개발을 끝내고 생산할 수 없었다. 이집트군 지휘부는 마냥 기다릴 수 없었고, 더군다나 소련이 초음속 전투기인 미그-21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33년 만에 실전배치한 인도 테자스

자금ㆍ기술 부족, 참을성 없는 리더십, 값싼 강대국 전투기 등 세 가지 요소는 다른 마이너리그 국가의 초음속 전투기 도전사에서 자주 나온다. 마이너리그 국가는 이들 요소 때문에 상당수 실전배치를 하지 못했다.

대만의 초음속 전투기 F-CK-1 징궈의 비행 모습. 위키피디아

대만의 초음속 전투기 F-CK-1 징궈의 비행 모습. 위키피디아

캐나다의 CF-105 애로(최초 비행 58년ㆍ최고 속도 마하 1.98)와 이스라엘의 라비(86년ㆍ마하 1.6)도 이집트의 HA-300 길을 걸었다.

2022년 자체 개발 초음속 전투기가 현역으로 뛰고 있는 나라는 인도ㆍ대만ㆍ이란이다.

인도의 테자스(마하 1.6)는 자금ㆍ기술 부족으로 개발이 더뎠다. 인도 정부는 국산 초음속 전투기인 테자스의 개발을 83년 결정했지만, 2001년 최초 비행에 성공했고, 2016년에서야 실전배치에 들어갔다.

대만의 F-CK-1 징궈(經國ㆍ89년ㆍ마하 1.8)은 자주국방의 상징이다. 중국의 방해로 최신 전투기 수입이 어려워지자 대만은 국산 초음속 전투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징궈에 다는 공대공ㆍ공대함ㆍ공대지 미사일은 모두 대만이 만들었다. KF-21이 따라가야 할 모델이다.

실제로 한국이 T-50 골든 이글 훈련기를 만들 때 대만의 징궈 프로젝트를 많이 참조했다고 한다.

이란은 아자라흐샤(97년)와 사에케(2007년)을 내놨는데, 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미국으로부터 사 온 F-5E 타이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최고 속도 마하 2 이상으로 하늘을 가르는 남아공의 치타는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미라주 3에 이스라엘의 크피르 개조 키트를 달고 미라주 F1의 엔진으로 갈아 끼운 ‘하이브리드’ 전투기다. 남아공은 치타를 도태하고, 일부를 에콰도르에 팔았다.

KF-21은 4.5세대 이상 첨단 초음속 전투기

마이너리그 국가의 초음속 전투기 도전사를 살펴보면 KAI가 틀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틀린 보도자료를 별생각 없이 인용한 기자도 잘 못 했다.

한ㆍ미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 선더에 참가한 미국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가 2018년 5월 16일 광주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

한ㆍ미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 선더에 참가한 미국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가 2018년 5월 16일 광주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

또 하나. 초음속만으로 보자면 한국은 T-50 훈련기를 바탕으로 한 FA-50 경전투기(공격기ㆍ마하 1.5)를 운용하고 있으니 이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가다.

그렇다면 방사청의 ‘4.5세대 이상’이나 대통령실의 ‘첨단’은 맞는 표현일까. 엄밀히 말하면 맞지 않다.

전투기에도 세대가 있다. 제트기가 처음 나왔을 때가 1세대(40~50년대), 초음속의 2세대(50~60년대), 발전한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해 가시거리 너머의 전투가 가능한 3세대(60~70년대), 플라이바이와이어(FBW) 비행 제어 시스템과 다목적 전투기가 등장한 4세대(70~90년대) 등이다.

스텔스 전투기의 5세대에 앞서 AESA(능동전자 위상배열) 레이더ㆍIRST(적외선 추적 장비)ㆍ복합소재 등을 적용한 전투기를 4.5세대라 한다. 해외에선 세대 구분을 안하고 ‘advanced(첨단)’으로 묶어 부르기도 한다.

방사청 보도자료에서 나온 7개국은 지금도 하늘을 날고 있는 4.5세대 전투기의 생산 국가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스페인의 합작사인 유로파이터 유한회사에서 제작한다.

그런데 애매한 게 있다. 파키스탄 공군의 JF-17이다. 4.5세대로 인정받은 이 전투기는 중국의 청두항공기공업그룹(CAC)과 파키스탄 항공 집단(PAC)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물론 중국이 주도했지만, 파키스탄이 개발자인 건 사실이다.

그래서 방사청아니 대통령실 모두 100% 맞는 게 아니다. CNN 등 외신은 ‘한국이 첨단 초음속 국가 클럽에 가입했다’고 전하면서 굳이 몇 번 째라고 밝히진 않았다.

세계에서 8번째가 아니더라도 대단

언제부터인가 국산 무기를 내놓으면 ‘세계 최초’라거나 ‘세계에서 O번째’라는 수식어로 포장하곤 했다. 국산 무기 개발의 의미를 높이려는 의도에서다. ‘세계에서 8번째’라는 KF-21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용인시 한화시스템 연구소 연구진이 KF-21 보라매에서 달 AESA 레이더 점검하고 있다. 연합

경기도 용인시 한화시스템 연구소 연구진이 KF-21 보라매에서 달 AESA 레이더 점검하고 있다. 연합

그런데 ‘세계에서 8번째’는 전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나 8번째가 아니더라고 해도 KF-21이 가진 의미가 깎이는 전 절대 아니다.

6ㆍ25전쟁 때 전투기 한 대도 없이 싸우던 한국이 91년 프로펠러 훈련기인 KT-1 웅비를 시작으로 기술력을 차곡차곡 쌓아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스스로 만드는 건 대단한 일이다.

특히 미국이 AESA 레이더, IRST, EO TGP(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 EW Suite(통합 전자전 체계) 등의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해도 자체 개발로 이를 돌파한 뚝심은 대단하다. KF-21 개발진의 피와 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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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특파원은 “많은 나라들이 개발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자체 생산을 포기한 지 수십 년이 된 상태에서 수출이 가능한 첨단 전투기를 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7월 19일자 인터넷 기사와 20일자 지면 기사에서 ‘세계에서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 국가’란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외국팀으론 세계 최초 피라미드 곡예비행?
공군의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는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이집트에서 열린 ‘피라미드 에어쇼 2022’에 참가했다. 이날 기자 대(大)피라미드 위에서 태극 문양을 수놓는 등 멋진 비행을 선보였다.

2003년 영국 공군의 특수비행팀 레드 애로스가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 위로 날고 있다. BAe

2003년 영국 공군의 특수비행팀 레드 애로스가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 위로 날고 있다. BAe

이집트 공군 특수비행팀인 실버 스타스와의 합동 비행으로 우정을 자랑했다.

그런데 블랙이글스의 항공기인 T-50B(T-50의 특수비행형)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보도자료에서 “공중곡예팀으로는 세계 최초로 이집트 피라미드 상공을 열었다”고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 매체는 ‘외국 공군 특수비행팀의 피라미드 상공 에어쇼는 이번이 세계 최초’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또한 틀렸다. 영국 공군의 특수비행팀인 레드 애로스는 2003년 10월 22일(현지시간) 이집트 피라미드 위에서 날았다. 장소는 기자 대피라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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