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대선 최대 승부처…"SGR 재협상" VS "중국인 내쫓겠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9 16:42

업데이트 2022.08.10 15:24

9일 오전 6시(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12시) 케냐에서 대선 투표가 시작됐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이번 케냐 대선에서 ‘중국 이슈’가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케냐 대통령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오른쪽)와 러닝메이트 마사 카루아가 지난 6일 나이로비에서 열린 마지막 선거 유세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케냐 대통령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오른쪽)와 러닝메이트 마사 카루아가 지난 6일 나이로비에서 열린 마지막 선거 유세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정부 손 잡은 야권 후보 지지율 1위

가디언· 도이체벨레(DW) 등은 이날 진행되는 케냐 대선에서 제1 야당 ‘아지미오 라 우모자(통일의맹세)’의 전 대표인 라일라 오딩가(77) 후보와 현직 부통령인 윌리엄 루토(55) ‘케냐콴자 정당 연합(케냐콴자)’ 후보가 팽팽한 양자 대결을 벌일 것으로 전망했다. 공식 결과는 일주일 이내 발표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30일 이내 1·2위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대선 직전 입소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딩가 후보는 47%의 지지율로 루토 후보(41%)를 앞섰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은 루토 후보는 ‘선동적인 포퓰리스트’로 상승세가 만만치 않다”며 박빙을 예상했다. 법학자 출신 조지 와잭코야 뿌리당 후보는 3위, 사회운동가 출신 데이비드 음와레 아가노당 후보가 4위로 조사됐다.

케냐의 현직 부통령이자 대선 후보인 윌리엄 루토가 9일 투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케냐의 현직 부통령이자 대선 후보인 윌리엄 루토가 9일 투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케냐 대선에선 여·야 후보가 뒤엉킨 상태다. 현직 대통령인 우후루 케냐타(2013년·2017년 당선)는 2017년 대선에서 같은 당 소속 루토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지목해 ‘우루토(우후루+루토)’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어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집권당인 희년당(Jubilee Party)을 이끌고 오딩가 후보가 이끄는 통일의맹세 연합에 합류한 뒤, 오딩가를 자신의 후임자로 공식 지지했다. 희년당 소속이던 루토 후보는 탈당한 뒤 통일민주동맹당에 들어가 여러 정당 동맹인 케냐콴자를 조직해 대선에 출마했다.

'골칫덩이'된 새 철도 해법 놓고 후보 격돌

뉴욕타임스(NYT)는 유력 대선 후보인 두 사람이 선거 기간 내내 2017년 개통한 표준궤도열차(SGR) 처리를 두고 첨예하게 맞붙었다고 전했다. SGR은 남부 항구도시 몸바사에서 수도 나이로비로 이어지는 총연장 578㎞, 시속 74마일(119㎞/h)의 철도다. 케냐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00년 전 건설된 ‘루나틱 익스프레스’ 노선 노후화 문제 해결을 놓고 고민하다 새 철도인 SGR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세계은행 등은 기존 철도를 개보수할 것을 권했지만, 케냐 정부는 SGR 건설비 총 36억 달러(약 4조7000억 원) 중 30억 달러(약 4조원)를 중국수출입은행의 차관으로 조달해 새 철도를 놓기로 했다. 당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던 중국과 공공부문 대규모 공사로 ‘치적 쌓기’를 하려던 케냐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몸바사~나이로비를 연결하는 철로 SGR의 첫번째 기관차. 연합뉴스

몸바사~나이로비를 연결하는 철로 SGR의 첫번째 기관차. 연합뉴스

2013년 착공식에서 케냐타 대통령은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새 철도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케냐를 산업화한 중진국 반열에 올려놓는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현재 SGR은 “케냐의 경제·사회·재정 파탄의 주범”으로 불린다. 경제학자 토니 와티마는 “SGR이 케냐 경제에 미친 혼란은 최소 몇 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SGR은 개통 첫해인 2017년, 1억 달러(약 1300억원)의 운영 적자를 기록했다. 케냐 의회는 SGR을 통한 물류 운송이 도로 운송보다 두 배의 비용이 든다고 결론 냈다. 아프리카 여론조사기관인 아프로바로미터가 2019~20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케냐인의 87%는 “정부가 중국에 너무 많은 돈을 빌렸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차입금 상환이 시작된 2019년부터 더 심각해졌다. 중국이 돈줄을 죄자, 케냐 정부는 가뭄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국민을 상대로 세금 인상과 긴축 재정을 도입해 원성을 샀다. 또 철도 사용량을 늘리기 위해 수입 물품을 철도로 운송하도록 강제해, 트럭 운전사들의 대규모 실직을 초래했다.

NYT는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몸바사에서만 트럭 운송, 화물 사업 종사자 중 81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전했다. 게다가 당초 몸바사에서 수도 나이로비를 거쳐 이웃 국가인 우간다까지 연결하려던 선로는, 중국 자금이 끊기면서 나이로비 인근 리프트밸리에서 멈췄다.

두 후보는 골칫덩이가 된 SGR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딩가 후보는 중국과의 계약 조건을 재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상환 기간을 연장하고 금리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 철도 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해 적자 폭을 줄이겠다면서 “내가 취임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루토 후보는 중국과 재협상 대신 SGR 건설 계약서를 국민에 공개하고, 시작 단계부터 면밀히 검증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케냐에서 상점과 노점을 운영해 돈을 벌고 있는 중국인을 전부 내쫓겠다며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했다.
그러나 NYT는 “현직 부통령으로 SGR 프로젝트를 결정‧수행한 행정부의 일원인 루토 후보가 자신은 무관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9일(현지시간) 선거 당일 한 유권자가 "먹을 게 없으면 선거도 없다"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선거 당일 한 유권자가 "먹을 게 없으면 선거도 없다"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AP=연합뉴스

여성 부통령 탄생 여부도 관심사

치솟는 물가, 급증하는 부채, 높은 실업률 등 중국발(發) 경제 위기로 인해, 전문가들은 “케냐 유권자의 표심은 경제 정책에서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분석가 가브리엘 무투마는 “경제가 이번 선거의 게임 체인저”라고 말했다.

이에 오딩가 후보는 가난한 가정에 매월 50달러(약 6만원)씩 지원하고, 두 자릿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루토 후보는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물가를 낮추고, 농업 분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와재코야는 “수출용 대마초 재배를 합법화하겠다”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케냐 대선의 유력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오른쪽)와 그의 러닝 메이트 마사 카루아가 지난 6일 마지막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케냐 대선의 유력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오른쪽)와 그의 러닝 메이트 마사 카루아가 지난 6일 마지막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케냐 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 탄생 여부도 관심사다. 당선이 유력시되는 오딩가 후보의 러닝메이트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사 카루아(65) 현 법무장관이다. 케냐는 동아프리카 국가 중 정치·경제적 안정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성 정치인 비중은 가장 낮다. 현지 매체 더 스탠더드는 여성 유권자들이 카루아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 비유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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