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친중국 마르코스 필리핀 집권 확실…미국 포위망 흔들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후보가 9일 그의 정치적 고향인 일로코스노르테주 바탁의 한 투표장에서 투표한 뒤 기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후보가 9일 그의 정치적 고향인 일로코스노르테주 바탁의 한 투표장에서 투표한 뒤 기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36년 전인 1986년 반정부 시위로 권좌에서 쫓겨난 마르코스-이멜다 마르코스 부부의 장남 페르디난드 봉봉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64·봉봉) 전 상원의원의 집권이 현실화했다.

9일 오후 8시(현지시간 오후 7시) 종료된 필리핀 대선 투표에서 마르코스 집권과 사라 두테르테(43·사라) 다바오 시장의 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다. 사라 두테르테는 포퓰리스트로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린 로드리고 두테르테(77·사진) 대통령의 장녀다. 외신은 “필리핀은 두테르테의 철권통치에 이어 권위주의 회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BBC에 따르면 이날 유권자들은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 오전 6시)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투표소를 찾아 길게 줄을 섰다. 마감 뒤에는 코로나19 확진자의 투표가 이어졌다. 7641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 당선인이 확정되려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고 BBC는 전했다. 현지 조사기관인 펄스아시아가 지난달 실시한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를 보면 봉봉의 지지율은 과반인 56%로 2위인 레니 로브레도(57) 현 부통령(23%)의 두 배를 넘는다. 두테르테 시장도 과반인 55%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변이 없다면 필리핀의 정·부통령은 전·현직 스트롱맨의 자녀가 각각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날 투표한 뒤 손가락에 묻은 잉크를 보여주는 부통령 후보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AP=연합뉴스]

이날 투표한 뒤 손가락에 묻은 잉크를 보여주는 부통령 후보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AP=연합뉴스]

가디언과 CNBC 등은 봉봉이 당선한다면 독재자 마르코스 일가의 정치적 부활과 필리핀의 민주주의 전환 실패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날 봉봉의 어머니 이멜다 마르코스(93)는 굵은 진주로 만든 팔찌·귀걸이·반지·브로치를 착용하고 아들과 함께 투표장에 나타나 ‘마르코스 가문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이멜다는 지난 2018년 부패 혐의로 징역 77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멜다는 대통령 관저에서 쏟아져 나온 ‘3000켤레 구두’와 수많은 골드바·보석 등으로 국민 공분을 사고 부정부패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제 58년생인 아들 봉봉이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던 말라카냥 궁(마닐라의 대통령 관저)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로드리고 두테르테

CNN과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봉봉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중 행보를 가속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필리핀이 친중국 정책을 펼칠 경우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중국 해상 포위망’에 구멍이 날 수 있다고 CNN은 전했다. 봉봉이 집권해도 필리핀에서 반중 정서가 커진 만큼 친중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봉봉의 아버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89) 전 대통령은 지난 65년 취임해 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축출될 때까지 21년간 필리핀을 철권통치했다. 72년 계엄령을 선포해 기업·언론을 장악했고, 반체제 인사 수천 명을 체포했다. 집권 당시 마르코스와 이멜다 부부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은 국가 전체 외채 규모와 맞먹는 100억 달러(12조7000억원)로 추정됐다. 선거 조작 의혹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자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숨졌다.

망명 생활 끝에 91년 귀국한 이멜다와 봉봉 모자는 재산과 권력을 되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봉봉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마르코스 일가의 비리를 조사해온 ‘필리핀 바른정부위원회(PCGG)’의 인사권을 쥐고, 반부패 기구인 옴부즈맨·세무서장도 직접 임명할 수 있게 된다. 필리핀 사업가 라파엘 옹핀은 SCMP에 “봉봉은 (과거 재산의) 모든 지분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