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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이래서 드라마...천재 자폐인 있어도 인정 못받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변호사로 나오는 우영우(박은빈 분). 사진 ENA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변호사로 나오는 우영우(박은빈 분). 사진 ENA채널

상대의 눈을 딱 보는 게, 자폐인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자폐증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의 대사다. 작중 우영우는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 어려워하거나, 소음이나 옷에 달린 라벨 등에 극도로 불편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우영우는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읊고, 법조문과 판례를 통째로 외우는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우영우의 모습은 현실 속 자폐인과 얼마나 비슷할까. 김붕년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했다. “천재인 자폐인은 자폐 환자 중에서도 극소수”라면서다. 높은 지능을 보이는 ‘고기능 자폐는 전체의 약 20%, 그중에서도 우 변호사와 같은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자폐증 등 환자 일부가 뛰어난 기억력 등을 보이는 상태) 환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고기능 자폐’도 일반인보다 뛰어난 것이 아닌,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언어 및 학습,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라며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능력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자폐 환자 중에서도 시·지각 능력이 뛰어나 세밀화를 잘 그리는 분이 있지만, 예술성을 인정받는 건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 사진 ENA 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 사진 ENA 채널

고기능 자폐는 가족이나 본인도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교수는 “고기능 자폐는 언어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의사소통이 잘 되며 인지 기능이 좋다. 알파벳을 외우거나 연산을 빨리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고기능 자폐인들은 사회에서 오히려 더 훌륭한 업적을 낼 수 있다”며 “본인이 대인관계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면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자폐증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회적 관계의 손상’과 ‘반복적이고 제한된 관심과 행동’이다. 김 교수는 “어렸을 때 눈 맞춤부터 시작해, 생후 6~12개월에 정서적인 표현, 놀이 발달에 있어서 또래에 대한 관심 등이 단계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게 없다면 자폐를 의심해야 한다”며 “또 제한된 영역에만 반복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 범주를 벗어나는 걸 힘들어하며 특정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늘어나는 자폐증 환자…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 사진 ENA 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 사진 ENA 채널

자폐증 환자는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 등록장애인 수는 2017년 1만 7000명에서 지난해 3만 4000명으로 늘었다. 김 교수는 “지원을 받기 위한 장애인 등록 절차가 활성화됐고 진단 영역이 넓어진 것도 있지만, 실제로 자폐 환자도 증가했다”며 “출산 연령이 높아져 유전적 결손이 생길 가능성과 조산 위험성이 높아졌다. 또 임신기에 플라스틱이나 중금속 등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발병 위험이 커졌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이 결합했을 때, 자폐증 발병 확률이 커진다고 본다. 자폐 환자들은 공통으로 사회적 뇌(social brain)와 같은 영역의 발달이 지연되는데, 이례적으로 기억이나 인지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과잉 활성화돼 나타나는 게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것이 현재 일반적인 설명이다.

“치료·교육 확대해야…주변인들 도움 중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인 김붕년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사진 서울대병원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인 김붕년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사진 서울대병원

자폐 치료는 '일찍부터' '꾸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조기 진단이나 조기 치료가 잘 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1~2년 치료·교육으로 좋아진 경우도 있지만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선 자폐 치료·교육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전문가를 양성하고 발달장애인 거점 병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학교·가정 내 자폐증 치료 및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장난감, 모바일 게임 등 '디지털 치료제'를 2024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는 "자폐 환자는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외계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폐적인 특성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다"며 "자폐인들은 일반인보다 특정 기능이 더 많이 발달해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폐증 환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향해 "중증 자폐인의 경우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사회생활을 하는 고기능 자폐인은 이들의 취약성을 이해해주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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