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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유희열 사태가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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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아주 사적인 밤’으로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 표절 의혹에 휘말린 작곡가 유희열 얘기다. 방송 활동을 중단했지만 다른 곡들로까지 표절 의혹이 번졌다. 서울대 작곡과 출신 인기 음악가ㆍ제작자ㆍ방송인의 명성에 돌이키기 힘든 흠집이 났다.
 ‘아주 사적인 밤’에 대해 사카모토 측은 “음악은 유사해 보이지만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문을 냈고, 유희열은 “무의식중에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고 사과했다. 양측이 다 메인 테마의 유사성은 인정했지만, 표절로 못 박거나 법정 공방으로 나가지는 않은 것이다. 문제는 대중 반응. ‘도둑질한 노래를 좋아했다’는 배신감, ‘남의 곡으로 배 불린 파렴치’라는 도덕적 질타가 쏟아졌다. 유희열의 다른 곡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이적·이무진 등 다른 가수로도 불똥이 튀었다(이적과 이무진은 표절을 부인했다). 유튜브에는 노래의 일부분을 짜 맞춰 비교하는 ‘표절 고발 영상’이 연일 올라온다. 조회 수 장사를 하는 사이버 렉카들에 새 시장이 열렸다. 표절을 충분히 의심할 만한 곡과 억지 케이스와 대중의 비분강개가 뒤섞였다.

진행자 유희열(왼쪽)의 표절 의혹으로 13년 만에 막을 내린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한 장면. [사진 KBS]

진행자 유희열(왼쪽)의 표절 의혹으로 13년 만에 막을 내린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한 장면. [사진 KBS]

이제는 인터넷으로 해외 곳곳의 음원을 누구나 듣게 돼, 대중 감시가 전면화된 시대다. 전문가(주의)에 대한 반감은 극대화됐다. 소비자인 내 판단이 가장 중요하며, “막귀인 내가 들어도 표절 같으면 표절”이고, 침묵하는 이들은 ‘기득권 카르텔’로 여긴다(전문가 뺨치는 대중도 많다). 사실 음악의 표절을 판정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고, 저작권법 위반은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민사 문제인데, 대중이 최종 심판자를 자처한 셈이다. 음악 논쟁이 정의와 도덕 여론 심판이 돼버렸다.
물론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창작자들의 흔한 변명이 표절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들키지 않게 요령껏’이라는 고질적 표절 문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머니코드(히트곡 진행방식)ㆍ레퍼런스(참조)ㆍ오마주ㆍ샘플링ㆍ패러디ㆍ인용 등이 창작 영역 안에 들어와 있고, “편집은 지금 이 시대의 작곡 방식을 관통하는 본질 중 하나”(김봉현)다. 음악평론가 김봉현은 작금의 사태에서 “순수창작론, (창작에 대한) 근본주의적 태도”를 읽기도 한다. “창작은 엄숙하고 신성한 것이며 모든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히 해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 말이다. 그러나 “작곡에 영향을 받을까 봐 다른 음악은 아예 듣지 않는다”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처럼 결벽증에 가까운 고전적 창작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받은 영향ㆍ영감을 드러내며 그 재해석에 올인해 온 유희열 같은 스타일도 있다. 사카모토 역시 입장문에서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의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 5~10%를 가미한다면 훌륭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밝혔다. 인용이되 자기 언어로 각색했는지 여부, 유사해도 오리지널리티를 가르는 결정적 부분인지, 관습적 표현인지에 따라 최종 판단은 달라진다.
 유희열이 레퍼런스와 모방의 경계를 아슬아슬 오가다 어느 순간 단순 참조를 넘어 그대로 갖다 썼다면 그건 명백한 잘못이고, 합당한 비판과 도의적·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청자가 느끼는 실질적 유사성’이 표절 판정의 한 근거인 건 맞지만, 온라인 효능감에 기초한 '묻지마' 여론재판, 전인격적 비난은 문제다.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SNS에 “유희열이 표절했다고 의심받는 곡들과 원곡들을 모두 자세히 들어보고 비난하는 사람은 5% 미만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틀스,롤링스톤스 같은 거장들도 피해 가지 못한 게 표절 시비다. 표절은 양심과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저작권 비즈니스의 하나다.  피해자가 문제가 없다면 끝이고, 법정까지 가기 전에 공동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려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대중 감시 시대, 전문가 불신 세태 # 표절 의혹 가요계 전반으로 확산 # 정의나 도덕 재판 변질은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