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일본 지인들이 묻는 세가지 질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지지율 위해선 고집 꺾는 게 지도자
국민 원하는 대통령상에 맞춰 가야
낮은 지지율, 외교에도 영향 불가피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 일본에서 내각 지지율이 30%대는 노란불, 20%대는 위험수역, 10%대는 즉각 퇴진이란 불문율이 있다. 실제 후쿠다 내각(19%), 아소 내각(18%), 하토야마 내각(17%), 간 내각(14%) 모두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정권을 내놓았다. 더 이상 버티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모두 1년 이하 단명 정권이 됐다. 지지율이 곧 정권의 생명선이다. 최근 아베 전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실시한 조사에서 '아베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은 "총리직을 오래(8년8개월) 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국제회의 때마다 다른 일본 사람이 나타나 '제가 새로운 총리입니다'라 하면서 명함을 준다"는 국제사회의 비아냥을 아베가 극복해 줬다고 본다. 관점을 바꿔 한국이 내각제였다면 어땠을까. 얼마에 한 번씩 지도자가 바뀌었을까. 하여간 대통령제라서 참으로 다행이다.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지지율에 민감한 일본은 윤석열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일 관계 개선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최근의 한국 정국은 "아, 한국과 일본은 생각도, 시스템도 이렇게 다르구나. 한·일 관계 풀기가 쉽지 않겠구나"란 생각을 재확인시키는 계기도 됐다.

최근 일본 지인들이 던져 온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한다. ① "대통령이 원래 집권당 대표대행에게 사적 문자를 보내고 하나요?"(내각제인 일본은 총리가 집권당 총재를 겸임한다. 하지만 디지털에 뒤처져서인지 사적 문자를 보내진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대행과 이런저런 문자 소통을 하는 걸 신기해 했다.) ②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 문자를 읽고 보내도 되나요?"(일본 참의원은 1995년부터 휴대전화 반입 자체를 금지한다. 중의원은 96년부터 '사용'을 금지 중이다.) ③ "집권당이 비대위를 구성한다며 '현 당헌·당규보다 정무적 판단이 우선'이라 했다는데, 원래 한국은 그런가요?"(일본은 법과 절차에 집착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유연함과 속도감을 중시한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지인을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해외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돼버린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놓고 여러 원인이 지적된다. 야당은 김·제·동(김건희·장제원·권성동)을 거론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인사, 집권당 내부 총질 등을 지적한다.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보통 일반 국민의 관점은 좀 다르다고 본다. 먼저 윤 대통령의 언어. 취지는 좋았지만 '매일 도어스테핑'이 문제였다. 불과 3분가량의 문답이라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뛰어난 언변으로 늘 좌중을 압도했다. 그런 그가 한 말이다. "난 세 시간 스피치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30분 스피치에는 세 시간, 3분 스피치에는 하룻밤의 준비가 필요하다." 짧게, 핵심적 메시지로 국민을 움직이려면 보통 준비, 내공을 갖곤 되지 않는 법이다. 잘못하다간 '오럴 해저드'가 돼버린다. 줄일 필요가 있다. 1주일에 한 번 한다고 뭐라 할 국민은 별로 없다.

또 하나는 '대통령다움'. 국민은 변한다.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을 구분한다. 후보 때는 어퍼컷의 호쾌함이 멋져 보이지만, 대통령이 된 순간 국민은 '대통령다움'을 요구한다. 국민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최고 지도자상이란 게 분명 있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 할 게 아니라 그에 맞춰 가야 한다. 많이 말하기보다 많이 듣고, 때로는 야당에 고개를 숙이고, 국민이 불신하는 측근은 주저하지 말고 잘라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선 걷는 모습, 제스처, 말투, 의상 모두 바꿔야 한다. 이러다 가랑비에 속옷이 다 젖게 생겼다. 지지율은 민심이다.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지탱해야 외교도 가능하다. 지지율을 위해 고집을 꺾어야 하는 건 모든 나라, 모든 대통령의 숙명이다. 휴가 뒤, 반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