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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시각각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했건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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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에디터

최민우 정치에디터

지지율 30%가 깨져도 집권여당엔 여전히 '윤심'(尹心)이 서슬퍼렇다. 지난 주말 대통령실에서 '권성동 불가론'이 흘러나오자 국민의힘은 일제히 동조했고, 버티던 권 원내대표도 대통령 의중을 확인하곤 그대로 순응했다. "내부 총질"이라고 한 건 대통령이지만 모든 책임은 이를 노출한 이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젠 원내대표 자리마저 온전하지 않은 모양새다. 실수가 컸다 해도 '윤핵관' 중에 맏형인 권 원내대표마저 이렇게 내쳐지는 게 여당의 현주소다.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들 모든 촉수는 '윤심'을 헤아리는 데 쏟을 게 뻔하다. 이러니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에 엄지척을 날린 것일까.

지지율 20%대 추락 근본 원인은 #'윤석열 정의로움'에 대한 실망감 #법치의 엄격함, 자신에게 향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의 신임장을 받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서울신문 박지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의 신임장을 받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서울신문 박지환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은 현재 지지율을 납득할 수 없을 듯싶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엄청난 악재도 없지 않았나. 말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언론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바로 0.73%포인트 차 25만 표 신승(辛勝). "윤석열 무조건 싫어"가 국민의 절반이라는 게 기본 '세팅값'이라는 얘기다. 정반대의 경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무려 530만 표 차로 당선됐다. 당시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득표(356만 표)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우파의 압승이었다. 그토록 우호적인 여건에서 정권을 시작해도 좌파의 '광우병 선동' 등으로 반년 만에 20%대 초반으로 곤두박질쳤다. 살짝만 삐끗해도 와장창 깨지는 살얼음판이 대통령 지지율이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도 추이 [자료제공=한국갤럽]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도 추이 [자료제공=한국갤럽]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이라는, 역대 대통령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그것도 집권하기 전 당선인 신분에서다. 야당은 물론 우파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특유의 추진력으로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현재 보이는 것과 같은, 출근길 기자와 스스럼없이 질의응답하는 '용산 대통령 시대'의 개막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 같은 파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6·1 지방선거의 완승도 자신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 승승장구가 오판을 잉태했을까.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은 경찰을 향해 "중대한 국기 문란"이라는 초강경 표현을 두 차례나 했다. 인사 문제가 불거지면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로 도배하지 않았느냐"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눙치기 일쑤였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직접 나선 건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의 언어로서는 거칠다.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정의로운 윤석열'에 대한 실망감이다. 검찰총장 사퇴 1년,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그를 대통령 당선으로 이끈 건 두 가지였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과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는 행동이었다. 특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철학은 출세를 위해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서 사적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지금 모습이 과연 그런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김건희 여사의 변호사였다. 금감원장인 이복현 전 부장검사는 '윤석열 라인'의 막내였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 인사비서관, 총무비서관, 부속실장도 대통령과 끈끈했던 검사였다. 인사비서관 부인이 나토행에 동승해 김 여사를 수행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한다. 시중에 "대통령과의 친분이 최고 스펙"이라는 말이 떠도는 이유다.

2013년 당시 윤석열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중앙포토]

2013년 당시 윤석열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중앙포토]

 지난 10년간 국민이 분노한 건 권력자의 '자의적 통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을 방치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기 편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무력화했다. 그러지 말라고 '법치'를 내세운 윤석열을 뽑지 않았나. 법치란 단지 법조문을 지키는 게 아니다. 법의 정신을, 그것도 자신에게 엄격히 적용할 때 온전히 살아날 수 있다. 하여 윤 대통령이 직면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나야말로 정작 원한 건 누군가의 충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