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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수교30년 해에 시험대 오른 한중관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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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한중 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달 24일로 수교 3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실제로 양국 관계의 이면에는 그러한 축하행사가 무색하게 살얼음을 걷는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지난달 26일과 27일 이틀 연속으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에서 나온 한국 관련 언급은 한중 간 제2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라도 터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한국 새 정부가 ‘3불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한국 새 정부가 ‘3불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으로 일컬어지는 ‘칩4(미국, 한국, 대만, 일본)’에 가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해 중한 무역이 한미, 한일, 한·유럽의 합에 가깝다”며 “칩 무역만 놓고 보면 한국이 지난해 수출한 칩의 60%가 중국 시장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국이 자신의 장기적인 이익과 공평하며 개방적인 시장 원칙에서 출발해 세계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에 유리한 일을 많이 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사실상 한국의 칩4 동맹 참여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이튿날인 27일엔 한중 간 악재인 사드 문제를 꺼냈다. 중국은 2017년 10월 31일 한국의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 들어가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협력이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게 한다)’ 입장 표명 이후 사드 단어 자체의 사용을 자제해왔다. 중국이 사드를 언급할수록 한국 내 반중 감정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날 자오리젠 대변인은 작심한 듯 사드 발언을 쏟아냈다. 형식은 최근 박진 외교부 장관이 “3불 정책은 우리가 중국과 약속하거나 합의한 게 아니고 우리 입장을 설명한 거로 안다”고 한 데 대해 중국의 입장을 밝히는 모양새를 취했다.

한국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중국은 강력한 보복에 나섰다. 사진은 2017년 중국 베이징시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롯데마트 주센차오점 등의 발전기와 변압기 설비를 에너지 과도 사용을 문제 삼아 몰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중국은 강력한 보복에 나섰다. 사진은 2017년 중국 베이징시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롯데마트 주센차오점 등의 발전기와 변압기 설비를 에너지 과도 사용을 문제 삼아 몰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오 대변인은 “한국이 2017년 사드 문제에 대해 했던 정중한 태도 표명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며 “새로운 관리는 과거의 부채를 묵살할 수 없다(新官不能不理舊賬)”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이웃나라 안전의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와 관련된 일에 대해 계속 신중하게 행동해 근본적인 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오는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人而無信 不知其可也)”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 있어 어느 당이 집권하든 대외정책에서 기본적인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건 역사를 존중하고 자기를 존중하며 이웃 간 소통에 있어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말했다.
자오 대변인의 말은 결국 한국 새 정부에게 사드 3불 입장을 계속 지키라는 것인데 거의 훈계에 가깝다. 문재인 정권이 2017년 3불 입장을 표명한 이후 근 5년 만에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이처럼 강경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중국의 신경이 예민하다는 걸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렇게 민감해졌나. 중국은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과연 어느 수위, 어느 속도일까를 일단 지켜본 뒤 대응에 나서려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우선 상대의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본다(聽其言 觀其行)’는 작전이다.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로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로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처음엔 다소 안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후보 시절 말한 ‘사드 추가 배치’ 발언을 거둬들인 까닭이다. 한데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갔다 온 뒤 중국의 태도가 변했다. 나토가 중국을 ‘구조적 도전’이라고 낙인을 찍어 분노한 측면도 있지만, 윤 대통령을 수행했던 최상목 경제수석이 ‘중국의 대안 시장’을 언급해 중국의 의심을 키웠다. 최 수석은 “중국 성장이 둔화하고 내수 중심의 전략을 전환해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며 “중국의 대안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시장이 예전 같지 않으니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은 이를 한국의 탈중국 행보로 받아들인 것 같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꾀하는 미국에 한국이 쏠리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이나 한반도를 보는 중국의 시선은 늘 그 배후에 어른거리는 미국을 쫓고 있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한국과 관련된 문제를 언제나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연관 지어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면 그게 미국의 유혹에 넘어간 결과인가, 또는 미국에 도움이 되는 행보인가로 계산해 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초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초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고구려 역사를 빼앗아가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나 한복과 김치를 자신의 문화라고 말하는 중국에 흥분한다. 한중 양자 차원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한데 중국은 이 같은 양자 차원 문제에 있어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대신 미국과 결부 지을 수 있는 문제에 흥분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달 26일과 27일 반도체와 사드 문제를 잇따라 언급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 이익과 안보 이익이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됐고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봤기에 중국 외교부가 나선 것이다.
반도체와 사드 문제 중 시급한 건 반도체 문제다. 미국은 8월 말까지 한국에 칩4 가입 여부를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온갖 중국 매체와 학자, 그리고 이젠 관리까지 동원해 한국에 칩4 동맹 가입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달 25일 국민의힘 반도체 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양항자 의원까지 찾아간 것을 보면 다급한 중국의 모습이 읽힌다. 그런데도 한국이 칩4에 참여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으로부터 제2의 사드 보복이 없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5월 한국 방문 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로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5월 한국 방문 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로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중 모두의 마음을 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새 정부에 주어진 것이다. 우리 정부 일각에선 현재 칩4 “가입 시한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단 시간 벌기에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언제까지 결정을 미룰 수는 없을 것이다. 사드 문제도 처음엔 미국의 ‘요청도, 검토도, 결정도 없다’며 시간을 끌다가 당하지 않았나. 특히 앞으로도 이와 같은 미·중 갈등에 따른 문제가 계속 한중 관계를 위협할 것이다. 그때마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우리 나름의 원칙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 그 원칙은 당연히 우리의 국익이 잣대가 돼야 할 터인데 무엇이 우리의 국익인가와 관련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미·중 갈등에 흔들리지 않은 미래 30년의 한중 관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칩4 동맹’ 가입에 결사 반대하는 중국 #사드 관련 3불 입장 지켜야 한다 한국 압박도 #한국 칩4 참여 결정하면 제2 사드 사태 터질까 # 미중 갈등 심화 따라 매번 흔들리는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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