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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펠로시가 연 시진핑 4연임 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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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지난 한 주 내내 동아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던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가장 큰 득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펠로시 의장으로부터 굳건한 지지를 약속받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인가. 아닐 것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펠로시 대만 방문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왜? 펠로시가 시진핑의 4연임 가도를 열었기 때문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 주석은 오는 가을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세 번째 총서기 자리에 도전한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치며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5년 임기 두 번, 즉 10년만 집권하는 것으로 굳어졌던 불문율을 깨고 세 번째 5년 집권의 길에 나서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내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왜 시 주석은 그래야 하나.
이를 위해 일찌감치 집권 1기 때 ‘중국몽(中國夢)’이란 비전을 제시했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방점은 ‘부흥(復興)’에 찍힌다. 중국을 ‘다시 흥하게 한다’는 것인데 함의는 청(淸)의 국력이 세계 1위였던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시기로의 회귀다. 간단하게 말해 세계 최강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이다.
세계 1위가 되기 위해선 당연히 미국을 넘어야 한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 특히 장쩌민 시대 중국의 과제는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적인 제재를 받게 되자 어떻게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두어졌다. 되도록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다. 1999년 미 공군에 의해 유고슬라비아주재 중국대사관이 오폭(誤爆)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해도 분을 삼켜야만 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에 ‘대만 해방’의 열망을 일깨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연임 가도를 여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신화사=뉴시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에 ‘대만 해방’의 열망을 일깨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연임 가도를 여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신화사=뉴시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대미 관계는 시진핑 시대 들어 180도 달라졌다. 중국몽을 이루기 위해 미국은 넘어야 할 상대가 됐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미국과의 갈등은 중국이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 언젠가는 겪어야 할 진통 정도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시진핑 정부가 사사건건 미국과 각을 세우는 이유다. 2018년 터진 미·중무역전쟁 때 여러 차례의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깨지곤 한데는 시 주석의 강경한 대미 입장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내치(內治)가 신통치 않을 때 반미(反美)는 더욱 효과적이다. 미국이란 강력한 적수와 싸워 이겨야 하기에 시진핑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번 가을 시 주석이 무난히 3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데 시 주석의 장기 집권 플랜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다. 또 다른 5년, 즉 4연임의 구실이 필요하다.
여기에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불쏘시개가 됐다. 중국몽 달성을 위해선 반드시 미국을 넘어서야 하지만 그에 앞서 할 일이 있다. 바로 대만을 해방해 ‘중국 통일’이라는 대업부터 이뤄야 하는 것이다. 중국군의 이름이 ‘인민해방군’이다. 인민을 해방하는 군대라는 뜻인데 마지막으로 해방을 해야 하는 곳이 대만이라서 ‘해방군’ 이름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일 일본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일본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에 인민해방군의 역할을 다시 일깨워준 게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다. 권좌에서 특별히 내려올 생각이 없는 시 주석은 오는 가을 3연임 성공 이후 바로 4연임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준비는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兩岸) 위기가 앞으로 본격화하는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의 4연임이 결정되는 해는 2027년 가을의 제21차 당 대회 때다.
이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해방군 창설 100년을 기념하기 위한 타깃으로 대만보다 매력적인 곳은 없을 것이다. 시 주석 입장에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중국 전역을 통일한 지도자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새기게 된다.
미국을 넘어서는 건 가능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런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인식을 인민에 심어주는 것이다. 대신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중국은 대만 통일 시간표를 앞당기는 노력에 나설 게 자명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대업 달성을 위해선 시 주석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의 계속적인 집권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중국을 지배할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4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응해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4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응해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로선 시 주석이 이끄는 ‘다음 5년의 중국’이 아니라 ‘다음 10년의 중국’을 생각하며 대중 전략을 구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음 5년간 양안 간에 일 거센 풍랑이 한반도에는 어떤 비바람을 부르게 될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자칫 양안 사이에 무력 충돌이라도 벌어진다면 우리 또한 화약 냄새를 맡지 않게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당초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부정적이었던 건 비단 조 바이든 미 대통령만은 아니었다. 대만 또한 양안 위기 격화를 걱정하며 꺼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펠로시는 모든 반대를 뿌리치고 대만 방문을 성사시켰다. 중국은 이를 대만 해방의 중요한 소재로 활용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시 주석의 4연임 가능성 또한 커졌다.

펠로시 대만 방문의 가장 큰 수혜자는 시진핑 #‘대만 해방’에 대한 중국 애국주의 불 지펴 #2027년 당 대회 때 4연임 도전 구실 삼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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