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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손가락 부러뜨린지도 모르는 체스선수…커지는 로봇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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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9일(현지시간) 국제 체스포럼 모스크바 오픈 경기장. 체스 로봇이 상대편 7세 선수 크리스토퍼의 기물(己物·체스판의 말)을 잡고, 자신의 기물을 그 자리로 옮긴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룩’(직선 이동이 가능한 기물)을 옮겨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이 두 가지 기물의 이동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면서 로봇이 소년의 검지를 잡았다. 주변에서 급히 로봇을 멈추려 했지만 실패하고, 고통에 발버둥 치던 소년은 결국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지난주 러시아의 한 체스 경기장에서 발생한 7세 선수의 손가락 골절 사고가 ‘로봇에 의한 인명 피해’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간과 거의 동등하게 사고·행동하는 듯한 로봇이 실제론 설계된 방식으로만 움직이며, 이에 따라 예기치 않은 사고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로봇은 상대의 기물을 제거하고, 자신의 기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크리스토퍼가 기물을 움직이자 ‘오작동’을 일으킨다. 로봇의 구체적인 프로그래밍 방법 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체스연맹 김진수 부회장은 2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세계체스연맹의 기본 규칙에 따르면 경기에서 양 선수가 한 번씩 번갈아 두게 되어 있다”며 “로봇이 이에 따라 자동 반응하는 과정에서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 체스 연맹도 7세 선수의 부주의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24일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세르게이 스마긴 러시아 체스 연맹 부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분명한 안전수칙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그것을 위반했다. 로봇의 움직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과 인터뷰에선 “이는 우연히 발생한 일이며, 로봇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에서 한 참가자가 로봇과 체스를 두고 있다. [신화=뉴시스]

지난 201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에서 한 참가자가 로봇과 체스를 두고 있다. [신화=뉴시스]

그러나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어린아이가 충분히 숙지하지 못할 수 있는데 로봇은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고 반발했다. 어린 선수들과 경기를 하는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러시아 체스 그랜드마스터인 세르게이 카르야킨은 “(이번 사건이) 일종의 소프트웨어 오류와 같은 문제로 발생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 가디언은 “크리스토퍼가 오히려 운이 좋았던 것일 수 있다”며 “최근의 로봇은 더 정교해지고 있고 인간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로봇이) 인간을 신경 쓰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첨단 로봇이 산업 현장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이로 인한 인명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979년 미국 미시간주(州)의 자동차 공장에서 로버트 윌리엄스가 부품 운반 로봇팔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최초의 사례 이후 미국에선 산업용 로봇에 의한 사망 사고가 다수 발생했다. 지난 2015년 발표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선 매년 산업용 로봇에 의한 사망자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에서 2000년 이후 발생한 로봇 관련 산업재해가 대부분 사망 사건일 정도로 한 번 사고가 나면 그 피해도 크다.

지난 2016년 중국에서 인공지능(AI) 기술 등이 활용돼 제작된 로봇이 한 전시회에서 오작동으로 난동을 부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스1

지난 2016년 중국에서 인공지능(AI) 기술 등이 활용돼 제작된 로봇이 한 전시회에서 오작동으로 난동을 부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스1

가디언에 따르면 이런 사고의 대부분은 인간의 실수이거나 인간이 로봇의 행동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로봇 자체의 소프트웨어나 센서 오류 등의 근본 문제도 있다. 지난 2016년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선 ‘샤오팡’(小胖·작은 뚱보)이라는 이름의 로봇이 통제 불능이 되면서 물건을 파손하고 사람을 위협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활용된 이 로봇은 4-12세 어린이의 교육을 목적으로 스스로 움직이게 개발됐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 얼러트는 “AI의 발달로 로봇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이를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우려가 있고 이번 사건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하지만, 기계의 오작동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로봇의 반란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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