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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성가족부 폐지보다 고유 역할 재정비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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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정부에서 정치적 행보로 위기 자초  

폐해 일소하되 기능은 업그레이드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여성가족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신속하게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공약 중 ‘여성가족부 폐지’만큼 많은 논란을 부른 공약도 없을 것이다. 당선인 시절에도 “(여가부) 부처의 역사적 소명이 다하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 당시 이런저런 논의 끝에 5월 국정과제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여가부 존폐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에서도 통일부와 함께 여가부를 폐지하려다 야당의 반발에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절충한 일이 있다.

그 이후 여가부 스스로 존재의 필요성을 입증해 왔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으로만 답할 순 없을 것이다. 영문 이름(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이 내세운 바와 달리 양성평등보다 남성을 비하해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미향의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선 마치 여성단체인 양 행동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민주당 소속 최고 권력층의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 여성들보다 집권 여당 측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약 개발에 참여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 여가부 폐지론은 ‘문재인 여가부’의 자업자득인 면이 있다. 오죽하면 이재명 민주당 의원도 대선 때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여가부는 여성 정책 외에도 청소년 정책, 위기 청소년 보호·지원, 가족·다문화 정책, 성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 등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남녀평등 문제는 최근 젠더 이슈로 더 복잡해졌다. 부처로서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더는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비록 ‘여성가족부’란 이름이 사라져도 고유의 기능은 재조정, 상황에 따라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여가부 폐지’ 언급 자체가 합리적 논의를 막을 정도의 반발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설령 폐지 로드맵을 신속하게 마련한들 신속하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될 게 뻔하다.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내지 양해 혹은 묵인 없이 정부조직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전제가 ‘여가부 폐지’라면 민주당이 협조할 리 만무하다. 여가부 폐지가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당초 설립 취지를 살리고, 고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소모적 논쟁이나 젠더 갈등을 피할 수 있고, 진정으로 국민에게 환영받는 부처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