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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장 가세한 경란…이상민은 쿠데타 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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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경란(警亂)’을 넘어 정국을 흔들고 있다.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가 옛 군 내부 사조직인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야당의 공세에 ‘받아치기’를 넘어선 강공으로 대응했다. 경찰 중간 간부인 팀장·파출소장들까지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나섰지만,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휘둘리지 않겠다”며 총경회의 참석자에 대한 징계 등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 서울청사 출근길에 “특정 출신들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며 “군으로 치면 각자의 위수지역을 비워 놓고 모임을 한 건데 거의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으로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경찰 안팎에선 이 장관이 사실상 ‘경찰대 출신’을 특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회는 육사 11기가 주축이던 군내 사조직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23일 충남 아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총경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울산중부경찰서장이 경찰대 4기 출신이다. 오는 30일 같은 장소에서 초급(경위)·중급(경감) 간부가 참석하는 전국 현장팀장회의를 제안한 김성종 광진경찰서 경감도 경찰대 14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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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독점에 비판적 입장이었다. 순경 출신 20%를 경무관 등 고위직에 발탁하는 건 윤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 장관도 지난달 28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수뇌부의 95%가 경찰대 출신이다. 고위직에서 대통령실과 인사를 협의하면 경찰대 위주로 인사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이날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경찰국 신설과 관련한 야당의 공세에 ‘받아치기’를 넘어선 강공 대응에 나섰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위기에 처한 경찰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정식 절차를 거쳐 회의한 것이 어떻게 집단행동이냐”고 질문하자, 이 장관은 거듭 12·12 쿠데타 얘기를 꺼냈다. 그는 “회의 주체가 군이라고 생각해 보라. 군인이 지역을 이탈해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면 어떻겠냐”며 “이런 것이 모여 국가와 정부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쿠데타에 이를 수 있다고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민 “특정출신이 주도” … 경찰대 출신 2인이 회의 제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이 장관은 대기 발령된 류삼영 총경의 징계 여부를 묻자 “제 직무 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이 장관은 대기 발령된 류삼영 총경의 징계 여부를 묻자 “제 직무 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자존심 하나로 꿋꿋하게 버티는 일선 경찰관을, 장관이라는 분이 염장을 지른다. 올바른 행정인가”고 질문했을 때도, 이 장관은 “모든 경찰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이 사태에 연루된 경찰관들이 그렇다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분명한 것은 그분(총경)들은 상사의 명령에 불복한 것”이라며 “상명하복에 의해서 국가로부터 공권력을 부여받은 그러한 분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우리 국가의 유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이상민 장관이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사항’이라고 얘기했는데 너무나 부적절한 언급이고 국민 정서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유”라고 지적하자 나온 답변이었다.

정치권은 이 장관의 ‘쿠데타’ 발언이 전해지자 오전부터 들썩였다. 특히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장관에 대해 “말을 심하게 한다”며 “경찰 중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서장들을 쿠데타에 비교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우 위원장은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나서서 이 문제에 올라탔다. 김대기 실장이 올라탔다는 것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의원 역시 이날 한국거래소 일정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장관의 ‘쿠데타’ 발언에 대해 웃으며 “적반하장 같다”고 짤막한 입장을 냈다.

여당도 물러서지 않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찰 반발은) 직무유기이자, 국민 혈세로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이들의 배부른 밥투정”이라며 “형해화된 행안부 장관의 인사권을 바로잡아 투명하고 객관적 인사 검증을 하자는 것이 경찰국 신설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경찰 출신 의원들(윤재옥·김석기·이철규·이만희·김용판·서범수)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경급 경찰관들의 집단행동은 참으로 우려되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대통령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청와대 비서실의 통제나 지휘를 받으면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이고, 행안부 장관의 통제나 지휘를 받으면 침해된다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평검사·검사장회의는 되는데 왜 경찰서장 회의는 안 되느냐’라는 지적에 대해 “검사란 각자가 헌법기관으로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만, 경찰서장은 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는 사령관”이라며 “개인 소신 때문에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것은 국민에 대해 항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장관과 경찰 수뇌부의 입장에 대해 일선서 초·중급 간부들까지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유근창(경감) 경남 마산동부서 양덕지구대장은 25일 경찰 내부망에 “30일 전국팀장회의에 전국 지구대장과 파출소장 참석을 제안한다. 저부터 참석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경찰청은 총경 회의 주도자에 대한 대기발령 등 징계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음 달 4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이날 퇴근길에 “더는 국민께 우려를 끼칠 일이 없어야 하겠다”며 “빠른 시간 내에 조직을 안정시키고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자는 총경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에 대한 대기발령 철회 의사가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모임을 주도한 책임뿐 아니라 청장 후보자의 정당한 직무명령을 본인 스스로 판단해서 거부하고 다수의 참가자에게 전달도 하지 않은 정도가 중하다고 생각한다”며 “대기명령을 철회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윤 후보자는 또 30일로 예고된 전국 현장팀장회의에 대해 “더는 집단 의사표시 행위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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