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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어떤 경우에도 정부·경찰 정면 대결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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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마친 서장(총경)들이 회의장에서 논의하고 있다. 뉴스1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마친 서장(총경)들이 회의장에서 논의하고 있다. 뉴스1

경찰국 반발, 총경급 집단행동은 하극상

경찰 선 지키고, 정부는 의견 더 들어줘야

전국 경찰서장들이 수뇌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제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회의를 강행해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총경급 지휘관으로 치안의 핵심인 서장 190여 명(온라인 참석자 포함)이 단체로 행동에 나선 건 초유의 일이다.

정부가 지난달 행안부 내에 경찰 인사 등을 관리하는 경찰국을 설치하겠다고 밝히자 일선 경찰관들은 독재정권 시절 ‘내무부 치안본부’의 부활이라며 반발해 왔다. 경찰관이 릴레이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에 나서면서 전례 없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급기야 경찰서장들이 집단 반발에 가세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경찰국 신설이 민주화 역사에 역행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간부들이 정부와 정면 대결을 불사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는 ‘법 위에 떼법’이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토론과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 세를 동원한 물리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병폐가 만연해 있다. 여기에 맞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임무가 경찰에 부여됐다. 그런데 정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찰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누가 이를 막는다는 말인가.  더욱이 문재인 정부 시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폭주로 경찰 권력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해지고 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부적절한 행위”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경찰은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하나 결과는 어떤가. 어제도 “경찰 내 일부가 삭발과 단식, 하극상을 보이며 반발하고 있는데 정말 기가 찰 노릇”(김기현 의원)이라는 여당과 “윤석열 정권이 검찰공화국 소릴 듣더니 이젠 경찰을 장악하려 한다”(서영교 의원)는 야당 사이에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국가공무원법 57조가 규정한 ‘복종의 의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이 힘으로 목적을 달성하려고 집단행동에 나서선 안 되며,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과 절차에 따라 정당한 방법으로 의견을 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경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행안부의 책임도 크다. 경찰은 물론, 법학계와 경찰위원회, 심지어 여당에서도 반대 의견이 표출되는 사안을 단기간에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였다. 그제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중부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한 조치가 전형적이다. 벌써 경찰 내부망에 ‘저도 대기발령시켜 달라’는 항의 글이 쏟아지지 않는가.

총경들을 설득해 집단행동을 막지 못한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책임을 통감하고 행안부와 경찰의 갈등이 더는 악화하지 않도록 지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극한 대립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경찰도, 정부도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