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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길을 잃다]‘탄중위’ 민간위원장 없고 회의도 안 열어, 전문가 11명 중 10명 “2030년 NDC 40% 달성 불가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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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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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날씨가 서늘한 영국은 최근 한낮 최고 기온이 37℃에 이르면서 학교 200여 곳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등 혼란에 빠졌다. 식당과 술집도 영업을 중단하는 곳이 늘고 있고, 직장인 상당수는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야외 작업이 기본인 건설 근로자는 일찍 귀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지구촌이 이상 기온에 시달리는 건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소나 철강을 만드는 제철소, 내연기관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지구가 발산하는 열을 흡수·반사하는 기체)가 지구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열이 빠져 나가지 못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폭우와 같은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더 잦아졌고, 더 심해졌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서둘러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17일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 영상메시지에서 “우리는 (온실가스 저감을 통한 기후변화에) 공동대응하느냐 아니면 집단 자살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며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잘 지키면서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에서 9번째(2019년 기준)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한국도 감축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10월 ‘2050년 탄소중립(탄소배출 제로)’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한 과정으로 정부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2018년 대비 40% 감축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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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야 달성 가능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CO2eq·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 6억7960만t이다. 2030 NDC의 기준인 2018년 7억2700만t보다는 줄었지만, 이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보다는 코로나19에 따른 생산활동 감소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당장 ‘위드 코로나’ 속에 생산활동이 증가하자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에 비해 3.5% 증가했다. 민동준 연세대 명예교수는 “2030 NDC는 목표만 있지 8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없다”며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온실가스를 줄여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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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중앙SUNDAY가 에너지·환경 전문가 11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10명이 2030 NDC 40%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반도체·철강·자동차가 주력 산업”이라며 “2030 NDC를 달성하려면 이 같은 산업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정책 즉, 40%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응답했다. 1명만이 ‘가능’이라고 응답했지만, 단서가 붙었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목표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이를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규제 완화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2030 NDC 40%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목표치 자체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2030 NDC를 달성하려면 우리나라는 매년 4.17%씩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이는 유럽연합(EU) 1.98%, 미국·영국 2.81%, 일본 3.56%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 연구본부장은 “현재 모든 부문에서 설정된 목표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최대치”라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목표만 있지 구체적인 이행 방안은 여전히 ‘마련 중’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중위)가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발전(전환) 부문에서만 1억2000만t(2018년 대비 44.4% 저감)을 줄여야 하는데, 저감 계획은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 전면 중단’ ‘재생에너지 비중 60~70%로 확대’ 정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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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력발전을 어떻게 줄이겠다는 것인지, 재생에너지를 어디에 설치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방안은 없다. 석탄화력발전소는 현재 전국에서 35기가 가동 중인데,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30%가 넘는다.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신할 재생에너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태양광 발전설비를 집중적으로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 비중은 수년째 6%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2030 NDC상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려면 서울 면적의 10배가 넘는 땅이 필요한데 그런 땅도 없을뿐더러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없다”며 “실행 방안이 없는데 온실가스를 어디서 어떻게 줄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정부의 2030 NDC, 2050 탄소중립 공언이 ‘준비 안 된 탄소중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2030 NDC 세부안 언제 나올지 몰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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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방향과 세부 계획 등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대통령 직속으로 탄중위를 설치했다. 탄중위는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민관 합동 거버넌스’로 탄소중립 정책의 ‘컨트롤타워’다. 하지만 탄중위는 현재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윤순진 민간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민간위원장 자리는 공석이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정부 들어 탄중위 전체회의가 열린 적이 없다. 협의체별로 진행하는 실무 성격의 회의도 대부분 중단됐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 의지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탄중위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2030 NDC는 목표치만 제시한 부분이 있어서 (현재는) 세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간위원장이 공석인 상태여서 세부안이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탄중위 2기가 꾸려지면 (세부안에 대해) 거기서 심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030년까지 발전 부문 다음으로 많은 4000만t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산업계는 발만 구르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탄소중립과 관련이 있는 기업 744개 회사를 조사했더니 10곳 중 9곳 가까이(87.8%)가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들 기업 중 절반가량(48.3%)은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답했다. 정만기 회장은 “우리나라처럼 석탄 등 화석연료 효율이 높은 나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신기술이 필수인데 기술 개발은 요원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구 염색산업단지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를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이른바 탄소국경세)와 같은 무역 장벽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은 필수가 됐다. 최근 EU는 CBAM 대상에 플라스틱·알루미늄·암모니아 등을 추가했다. 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CBAM 확대는 국내 수출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 NDC 40%는 차치하더라도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려면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탄소중립 컨트롤타워인 탄중위를 재정비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금이라도 탄중위를 빨리 구성해 연말까지는 실현 가능한 것은 그대로, 불가한 것은 수정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계획 기간이 2036년까지인 ‘10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이 12월 확정되기 때문에 그 전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중위 정비와 관련해서 문주현 교수는 “1기 탄중위에는 원전 전문가나 기업, 운수·해운 전문가가 별로 없었는데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탄중위를 정비한 뒤에는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재설정해야 한다. 다만, 국제사회와의 약속인 만큼 2030 NDC 40% 자체를 수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기간에는 NDC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는 ‘40% 준수’로 입장을 바꿨다. NDC 40%를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 건 아니지만, 한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훈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이라 유럽과 미국도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며 “현명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린산업 맞춤형 금융 지원 필요

따라서 전문가들은 NDC 40%는 그대로 두고 부문별 감축 목표를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자고 제안한다. 예컨대 산업 부문 14.5%, 발전 부문 44.4%인 것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이다. 김정인 교수는 “산업 부문 감축 목표가 14.5%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이걸 무리하게 추진하면 국내 생산이 줄고, 일자리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가는 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송·건물 부문 등 목표 자체가 높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부문을 조금씩 상향하는 식으로 조정해 볼만 하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환경부도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30 NDC 목표치는 유지하면서 부문별 감축 목표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방향과 연계해 원전 역할을 늘리고 발전 부문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인다는 복안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 전 브리핑에서 “원전 확대로 발전 부문에 발생하는 배출 여유분을 산업·건물·폐기물 부문에 안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유분’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가 2030 NDC(원전 24%·재생에너지 30%)보다 원전 비중을 6%포인트 이상 높이기로 했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NDC 부문별 감축 목표를 재설계한 후 내년 3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EU나 일본처럼 온실가스 저감·포집 등 신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만기 회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는 친환경 기술을 적극 개발해 상용화해야 한다”며 “온실가스 저감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목록을 만들고 이를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지원,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나가는 것도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당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에너지 시장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유통 시장을 경쟁 구도로 만들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저감 방안에 맞춘 금융인프라 마련 필요성도 제기된다. 산업구조 자체를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그린산업’으로 전환하려면 이에 맞는 ‘맞춤형 금융지원’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기업들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설비 증설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민동준 명예교수는 “과거 우리나라가 중공업을 전략 산업으로 키울 때 산업은행의 역할이 컸던 것처럼 그린산업에 맞는 금융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인 교수는 “탄소중립은 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만큼 산업계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세금에 대한 인센티브 등 단편적인 지원보다는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주는 것, 제도적 합리화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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