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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길을 잃다]OECD 꼴찌 한국 신재생에너지, 확장 막는 두 장벽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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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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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공사의 충남 보령댐 태양광 발전설비. 2016년 완공한 이 시설에선 연간 7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2781MWh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수자원공사의 충남 보령댐 태양광 발전설비. 2016년 완공한 이 시설에선 연간 7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2781MWh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한국수자원공사]

삼성전자가 최근 재생에너지 사용을 대폭 늘렸다고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달 초 삼성전자가 낸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된 기사는 이렇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전 세계 각 사업장에서 사용한 재생에너지는 전년보다 31% 증가한 5278GWh(기가와트시)였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유럽 사업장에서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RE100(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캠페인)을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해외에서 RE100을 달성한 삼성전자의 국내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극히 저조하다는 사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에 웃돈(프리미엄)을 주고 태양광·풍력 등으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녹색 프리미엄’ 제도로 490GWh를 구매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삼성전자는 기흥·화성·평택·온양 등 국내 주요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태양광 발전과 지열 발전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체 발전량은 10GWh가 채 안 된다. 삼성전자의 한국형 RE100(K-RE100) 성적은 왜 이렇게 저조한 걸까.

태양광·풍력 발전 여건 유럽보다 열악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국내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9일, 국회에서 의결된 제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기후대응 예산은 본예산 대비 대폭 삭감됐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핵심인 기술·개발(R&D) 예산은 2972억원에서 2653억원으로 11% 삭감됐다. 이러한 삭감은 지난 정부에서 ‘2050 탄소중립(탄소 배출 제로)’과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를 무리하게 수립했다는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나온 조치라 재생에너지의 장래에 대한 우려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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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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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망적인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국가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양수발전 제외)’은 노르웨이 98.6%, 덴마크 81.6%, 캐나다 67.9%, 스웨덴 67.5%, 미국 19.7%, 일본 19%다. 우리나라는 5.8%로 OECD 37개 국가 중 37위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 이행 수단으로 우리나라도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다. 문재인 정부도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수준은 세계 최하위 수준일까.

우리나라의 자연 조건을 고려하면 그나마 유의미하게 키울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이다. 그런데, 이 마저도 사실 유럽 등지에 비하면 결코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정격용량 대비 이용률’은 하루 3.6시간(15%)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20.1%, 프랑스는 20%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초당 6.2m인데 독일은 초당 7.6m다. 유럽에 비해 자연 조건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에 부적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제로 인해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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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를 얻으려면 태양광·풍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땅이 필요한데 ‘이격거리’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지자체 조례에 따라 태양광·풍력발전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 생활시설과 일정 거리를 둬야 한다. 2018년 보성군은 태양광 설치를 위해 주택과 도로의 이격거리를 500m에서 200m로 완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한 바 있다. 그 해 주민들은 토사 유출, 자연경관 훼손, 환경 파괴 등을 이유로 인근 야산에 들어설 10MW(메가와트)급 태양광발전 시설의 설치를 강력 반대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태양광 발전설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고흥군은 태양광 설치를 위한 도로와 주택과의 이격거리를 100m에서 500m로 강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규제나 주민 반대로 태양광·풍력발전소를 짓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를 짓는 데 직접 참여하는 주민참여형 사업도 일부 있지만 극히 드물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태양광·풍력발전소를 지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신재생에너지 운영 시스템이 복잡해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기가, 기업과 같은 전기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신재생에너지 의무량(RPS)이라는 게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민간이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사들인다. 이를 ‘신재생에너지인증서’(REC, 1REC=1MWh)라고 하는데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은 이 REC를 구입해 RPS를 맞춘다.

값 적정해야 생산·소비 모두 유인 가능

문제는 이 REC 가격이 정부에 의해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2017년 12만8585원이었던 REC 가격은 정부 정책으로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늘면서 지난해 11월 3만8846원으로 70% 하락했다. 이에 기존 민간 사업자들의 수익이 확 줄어들자, 문재인 정부는 RPS 비율을 대폭 상향해 가격을 급등시켰다. 당시 정부는 2021년 9%이던 RPS 비율을 올해 12.5%로, 이후 매년 2.5%씩 늘려 2026년 26%로 설정했다. 그 결과 올해 2월 기준 신재생에너지 구입비용(수력 제외)은 4561억원으로 원자력(9048억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 기간 신재생에너지 구입량은 2243GWh로 원자력(1만3307GWh)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KWh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신재생에너지는 106.88원, 원자력은 56.28원이다. 가격이 올랐지만 민간 재생에너지 사업자를 늘리지도 못했다.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일정해야 신규투자나 재투자를 하는데, 가격이 정부에 의해 왜곡되면서 수익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때문이다. 또 대규모 발전사업자의 REC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져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커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기업의 RE100을 위한 제도인 전력구매계약(PPA)도 되레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다. PPA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와 기업 전기 소비자와의 거래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인데, 한국전력이 국내 전력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전기 소비자가 한전을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구입할 때 한전은 전력망 사용료(KWh당 8원~24원) 등을 포함한 부대비용을 받아간다. 이 때문에 전기 소비자가 한전을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구입하면 비용 부담이 일반 전기요금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은 없다(지난해 11월 기준).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 조건이 열악할수록 기술 개발과 시장 운영 시스템은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현실을 무시한 RPS·PPA정책 등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탄소중립의 길을 요원하게 만든다. 특히 RPS, PPA 모두 계약단가가 실시간 전력도매가격(SMP)에 각종 부대비용이 추가되는 관계로 변동성이 심하고, 실제 원가보다 많이 비싸지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보니 시장 참여자들은 경쟁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보다는 잿밥(제도 이용)에 주목하게 되고, 한전 독점 하에서 모든 비용을 보장해주는 ‘총괄원가주의’는 두부(전기요금)값보다 싼 콩(원료)을 구할 동기 부여가 없다. 새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실현가능한 탄소중립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에너지시장 구조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이율배반적인 현재의 전력시장 운영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서 기술 개발과 열악한 자연조건 극복으로 연결되도록 할지 그 방안이 궁금하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한국ESG학회 부회장(현대제철 전 기획실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기업 오너를 보좌하면서 배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그들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ESG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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